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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신도들과 소통하지 않은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

명진스님은 14일 일요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명진스님은 14일 일요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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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의 대형사찰인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한 데 대해, 봉은사 주지인 명진스님이 처음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의 결정을 둘러싸고 정권 차원의 압력설이 제기됐지만, 명진스님은 그동안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명진스님이 공개적으로 총무원의 결정을 거부하고 나섬에 따라, 논란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명진스님은 14일 봉은사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이 같이 밝히고, "다음 주까지 (총무원에서) 무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이 없을 시에는 전국 사찰과 신도를 대상으로 한 '봉은사 직영 폐지를 위한 1000만인 불자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명진스님은 또 "만약 섣불리 옛날과 같은 못된 방법, 폭력적인 방법으로 봉은사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겠다"며 "(무리한 결정을 하게 된) 말 못할 사정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이 혹시 권력이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농단이라면 용서치 않고 징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법회에 참석한 1100여명의 신도들은 명진스님의 법문(발언) 도중 여러 차례 박수를 치며 큰 호응을 보였고, 일부 신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현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봉은사, 특별분담금사찰→직영사찰로... 왜?

명진스님은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이날 법회를 시작했다. 특히 명진스님은 법정스님이 번역한 서산대사의 <선가구감>의 한 대목을 옮겨왔다. 정도를 걷지 않는 출가 수행자들을 힐책한 대목이다.

"중도 아니오, 속인도 아닌 체 하는 자를 '박쥐중'이라고 하고, 혀를 가지고도 설법하지 못하는 자를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며, 중의 겉모양에 속인의 마음을 쓰는 자를 '머리 깎은 거사'라 하고,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옴짝할 수 없는 자를 '지옥 찌꺼기'라 하며 부처를 팔아 살아가는 자를 '가사 입은 도둑'이라 한다."

명진스님은 500여 년 전 서산대사가 했던 '뼈아픈 가르침'을 인용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요즘 제가 혹시 '박쥐중'이 아닌가, '머리 깎은 거사'는 아닌가, '가사 입은 도둑'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1일 조계종 총무원이 종단 안팎의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한 결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종단에 올리는 재정분담금이 일반 사찰에 비해 더 많은 특별분담금사찰은 4년의 주지 임기가 보장된다. 반면 직영사찰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를 맡아 인사와 재정, 포교 등을 직접 관장하고, 기존 주지는 '재산관리인'이 되면서 총무원장이 임면권을 가진다. 종법상 명진스님은 오는 11월까지 임기가 보장돼있다. 하지만 직영사찰이 되는 순간, 명진스님은 임기를 보장 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총무원에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한 명분은 "수도권 포교 강화"다. 그러나 봉은사측은 "아무런 의견수렴 절차 없이 포교 등을 잘해오고 있는 사찰을 총무원장이 주지가 되는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다.

명진스님은 봉은사 주지로 취임한 지난 2006년부터 1000일 기도를 시작으로, 사찰 예산·재정 투명화 등 개혁을 주도하면서 신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실제 2006년 당시 86억 원이던 봉은사의 연 예산이 올해는 130여억 원으로 증가했고, 등록신도도 급증해 20여만 명에 이른다.

"'신도들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14일 봉은사 일요법회에 참석한 1100여명의 신도들이 명진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
 14일 봉은사 일요법회에 참석한 1100여명의 신도들이 명진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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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 배경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했다. 명진스님은 그동안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게 자비"라면서 4대강 사업과 용산참사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정치권의 '명진스님 사퇴압력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이유다.

명진스님은 "갑자기 여러분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면서 "저도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는가, 내가 참 부덕하구나'라는 자괴감과 함께 봉은사 신도들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말했다.

"이제 좀 절이 되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아, 이제 내가 낸 시줏돈을 자기들 맘대로 쓰지는 않는구나' 생각하게 됐는데……. 봉은사 같이 신도들이 많은 절을 맡으면(주지스님이 되면) 어떻게든 개인 돈을 만들어 나간 뒤, 자기 절을 지으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정말 봉은사를 아름다운 절로, 여러분들이 신심 있게 기도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그런 절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부처님 전에 부끄럽지 않은, 신도들에게 사랑과 존경받는 주지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오고가면서 바라보는 여러 신도님들의 눈빛을 보면서, 오늘날 이 사태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 또 신도들에게 이런 상처를 남겨줘야 되는가, 또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가, 그 생각을 하면…. "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명진스님의 목소리가 울먹이듯 떨리자, 법당 곳곳에서도 신도들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도와 소통하지 않은 결정, 수용할 수 없다"


잠시 숨을 고른 명진스님은 날선 목소리로 "(자승) 총무원장이 취임하면서 '소통과 화합을 통해서 종단을 운영하겠다'고 했다"며 "봉은사의 주인은 여러 신도들이다,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하든지, 특별분담금사찰로 하든지, 봉은사 신도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통을 쳤다.

"직영사찰에서는 총무원장이 주지가 되어 직접 운영을 하고, 파견 나가 있는 사람은 '재산 관리인'이 된다. 총무원장은 기분이 나쁘면, 아니면 쓸 돈을 안올리면, 언제든 재산관리인을 쫓아낸다. 몇 개월만에도 바꾸고, 1년만에도 바꾼다. 말 잘 듣고, 용돈 잘 갖다 주면 2년도 하고 3년도 하고, 이게 직영사찰이다. 그동안 사찰 주지 임면 과정에 바깥으로 내 보일 수 없는 검은 거래가 있었다. 그런데 봉은사 같이 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면 그런 거래는 끊어진다. 그게 불교가 사는 길이다."

명진스님은 총무원이 중앙종회(조계종 입법기구)를 통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기 전날,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얘기도 소개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소통과 화합을 한다더니, 누구와 소통을 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총무원장이)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죽을 죄를 졌다. 참회한다'고 하더라."

명진스님은 이어 "이 자리에 제가 오늘 무슨 얘기 하는가 알아보기 위해서 나와 있는 총무원측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가서 전해주기 바란다"며 "봉은사 신도와 소통되지 않은 결정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총무원의 결정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참석한 신도들은 큰 박수로 명진스님의 결정에 동의를 표했다.

"직영폐지 철회 안 하면, 1천만 불자 서명운동 돌입"

14일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법문을 하고 있는 명진스님
 14일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법문을 하고 있는 명진스님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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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은 다시 "강남과 강북을 잇는 포교벨트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게 어떤 벨트인지, 가죽벨트인지, 아니면 헝겊벨트인지, 얘기해 보라"며 "150명 나오던 사찰을, 많으면 1300명에서 적을 때도 800명이 나오게 법회를 하면서 포교를 했는데, 어떤 것이 진짜 포교인지, 명확한 대답을 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특히 명진스님은 다음 주까지 총무원에서 자신의 질문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전국 사찰과 신도를 대상으로 한 '봉은사 직영 폐지를 위한 1000만인 불자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신도들은 큰 박수와 함께 환호성까지 지르면서 명진스님의 결정을 환영했다.

명진스님은 "만약 저 혼자라면 '이런 집단 속에서 중노릇을 해야 되나, 그냥 비속으로 들어가 살지'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신도들을 생각하면서, 부처님과 불법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내 한 몸을 던지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밝혔다.

명진스님은 특히 신도들에게 "다음 법회에는 한 사람씩 더 데리고 오라"며 "이 도량에 신도들이 꽉 차서 총무원장이 겁에 질려서 직영사찰을 포기하도록 만들자"고 당부했고, 신도들도 박수를 치며 흔쾌히 동의했다.


태그:#명진스님, #봉은사,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직영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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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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