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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2월23일 일제고사 시행일에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에 나선 아이들의 모습.
 지난해 12월23일 일제고사 시행일에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에 나선 아이들의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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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교육청이 9일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교과학습진단평가(일제고사)를 치르려다 전체 문제가 표절된 것임을 지적당하자 갑자기 취소하는 큰 소동을 빚었다. 2년 전 서울시교육청의 시험문제를 통째로 베낀 것이 들통 난 것.

문제는 대전시교육청의 과잉충성(?)에서 시작됐다. 애초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이날 초등학교 3∼5학년 및 중학교 1∼2학년 만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대전시교육청은 교사 및 학부모 등의 반대여론에도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을 시험에 자체적으로 끼워넣어 일제고사를 치르기로 했다. 따라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시험문제는 대전시교육청이 출제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대전시교육청은 공들여 시험문제를 자체 출제하는 방법 대신 2년 전 서울시교육청의 문제를 베끼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시교육청은 문제를 그대로 베낀 것이 들통 나자 시험당일 오전 7시 급히 시험계획을 취소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전시교육청이 시험계획 취소 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보인 태도다.

대전시교육청은 9일 '초6 진단평가 보류 사유' 제목의 해명자료를 통해 "대전시교육청은 6학년 평가문제가 2008년에 전국 시도교육청 공동으로 시행한 문제로 문항의 타당도나 신뢰도가 높아 활용하기로 했으나 이미 출제가 됐던 것이라 이를 접한 학생이 있을 수 있어서 정확한 진단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시행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2008년 출제된 문제여서 학원 등에서 미리 문제풀이를 한 학생들이 있을 수 있어 '보류'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대전시교육청은 이어 "전교조 대전지부가 주장한 서울시교육청 평가문항 표절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날을 세웠다. 시교육청은 거듭 "이번 평가 문제는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개발(2008년)한 문제로서 진단평가 문제로 사용하는 데는 표절상의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6학년 일제고사 시행 비판 본질을 모르는 '대전교육청'

대전시교육청이 9일 실시하려다가 중단한 초등학교 6학년 일제고사 4교시 과학시험문제(오른쪽). 왼쪽은 2008년 서울시교육청의 문제. 100% 그대로 베꼈고 순서만 바꿨다.
 대전시교육청이 9일 실시하려다가 중단한 초등학교 6학년 일제고사 4교시 과학시험문제(오른쪽). 왼쪽은 2008년 서울시교육청의 문제. 100% 그대로 베꼈고 순서만 바꿨다.
ⓒ 전교조대전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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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교육청의 해명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대전시교육청은 법적 문제가 없는데도 전교조 대전지부가 '표절'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발끈하는데 치중해 있다. 전교조 대전지부 등이 '표절'이라고 지적한 것은 지적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법적소유권만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전교조 대전지부의 지적은 시험문제조차 준비할 여건이 되지 않는데도 왜 하지 않아도 되는 초등학생 6학년 대상 일제고사를 굳이 무리하게 했느냐는 반문이다. 2008년도 출제됐던 문제를 베껴서라도 학생들을 서열화하려 했던 대전시교육청의 교육관을 꼬집은 것이다. 

대전시교육청은 시험당일 오전 급히 시험계획을 취소(보류)하고도 전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글 제목 또한 '사과의 글'아닌 '해명자료'다. '해명자료' 전체에서 찾아낸 사과 글귀는 "학사일정에 차질을 가져온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가 전부다. 유감을 표하는 이유가 '학사일정에 차질을 가져왔기' 때문이란다. 새 학년을 맞은 6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제고사 준비를 위해 휴일까지 반납해야 했던 문제의 본질은 애초부터 사과의 대상이 아니다.

전후맥락을 보면 대전시교육청은 스스로도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판단에 6학년에 대한 일제고사를 실시할 계획이 전혀 없다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평가대상이 아닌 학생들에 대한 일제고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급히 6학년도 끼워 넣는 일제고사 실시를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문제를 출제할 시간마저 없자 2년 전 서울시교육청 진단평가 시험지를 문항 순서만 바꿔 보려했다는 얘기다. 시험지 문항 순서를 바꾸려했다는 점은 '표절' 시비를 예상해 이를 감추려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교육청, 정말 '유감'이라면 제대로된 사과를 해라

전국이 수년째 일제고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느 교사는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도 대전시교육청은 안 봐도 되는 6학년 대상 일제고사를 강제로 시행하기로 했다가 시험 당일 돌연 취소하는 기형적인 교육행정을 하고서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없다. 

대전시교육청이 정말 '학사일정에 차질을 가져온데 대해 유감'을 표하는 게 맞다면 일제고사를 강제 시행해 학교와 학생을 줄 세우려 했던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로 인한 예산낭비에 대해서도 반성이 뒤따라야한다.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전예고도 없이 해직이나 파면을 당한 교사들이 있다. 그렇다면 일제고사를 강제로 시행하고, 시교육청의 문제지 베끼기로 그 마저 갑자기 취소돼 파행을 야기했다면 같은 논리로 그 책임자들에게 응당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점에서 전교조 대전지부가 김신호 대전시교육감과 함께 김덕주 교육국장과 노평래 초등교육과장, 이상수 중등교육과장 등 실무 책임자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태그:#일제고사 , #진단평가 , #시험문제, #대전시교육청,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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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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