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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감사원의 해임요구 등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감사원의 해임요구 등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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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해임 요구'를 한 감사원의 KBS 감사 결과는 2008년 8월 5일 열린 감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되었다. 감사위원회는 감사원 사무처가 짜놓은 목적과 방향, 즉 베이징 올림픽 전에 '해임 요구 의결'을 마무리짓는다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잘 '부응'한 셈이었다.

최종 답변서 제출 하루만에 '해임' 의결

감사원 사무처가 짜놓은 정치 감사의 흔적들은 특히 의결을 위해 그렇게 서두른 행태에서 거듭 확인된다. 매주 목요일에 열리는 감사위원회가 갑작스럽게 화요일(8월 5일)로 앞당겨 개최된 것을 비롯해, KBS의 최종 답변서가 제출된 지 단 하루 뒤에 감사위원회를 열어 감사 결과를 확정지은 점 등은 정치 일정에 따라 쫓기듯 다급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면 달리 설명한 길이 없다. 하루 전날 보낸 KBS의 마지막 답변서는 제대로 검토할 시간조차 없었을 터였다.

앞에서도 증언했지만, 감사원은 감사를 끝낸 뒤 KBS에 32건의 질문서를 보냈는데, 한 질문서는 보통 10개 내지 20개 문항의 질문이 있어, 내용과 범위가 방대했다. 그랬기에 한 질문서에 대해서도 KBS의 여러 부서가 매달려 답변을 해야 했고, 이를 다시 모아 최종 정리를 하고, 경영진의 마지막 검토까지 필요했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든 답변서를 제대로 읽어나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해임 요구' 결정을 내린 하루 전날 보낸 답변서는 더더욱 그렇다. 4년 전의 특별감사와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4년 전 특별감사 때는 최종 답변서 제출 25일 후에 처분 시행이 있었다. 그런데 2008년의 경우 최종 답변서 제출 하루 만에 처분 시행이 있었던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감사위원들의 처참한 모습

그런 면에서 볼 때, 감사원 사무처의 그런 '정치 감사'를 최종 확정지은 감사위원들의 면면은 참으로 서글프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감사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참여 정부 시절에 임명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연주 사장 건, 특히 해임의 가장 큰 사유로 등장한 '배임 혐의' 건은 별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건 더욱 말이 안 된다.

감사원 감사위원회는 6인의 감사위원(차관급)으로 구성되며, 감사원장이 의장이 되어 회의를 주재한다. 감사원 주요 업무에 대해 최종적인 의결권을 가진 막강한 기구다.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 막중한 책임이 있는 자리에 올랐던 이들이 정권이 바뀌자 이명박 정권의 정치목적에 그렇게 '봉사'를 해 버렸으니.

감사위원뿐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 정부 시절에 임명된 고위 인사들이 이명박 정권의 압박에 견디어내지 못하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감사원장이 사표 내버렸지 않습니까? 지켜줘야 할 사람이 안 지켜주고 사표를 내버리니까 감사원에서 정연주씨를 두고 엉뚱한 감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직분에서 그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 보니 뭐 일괄사표 내라니까 줄줄이 내버리고, 그러니까 자유를 지킬 수가 없는 것이죠. 권력기관에 있는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국민이지 않습니까? 두려움에 떨고 눈치보고 꼬리 내리고 그게 지금 행동양식이지 않습니까?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쉽게 무릎을 꿇으니까 그러는 것이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8월 중순, 퇴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인터넷 언론 <서프라이즈>에서 주간지 발간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주간지 발간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 기자회견 내용은 한동안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2009년 8월 10일, 창간 100호 기념으로 입수하여 전문을 공개했다. 위의 발언은 그 당시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다).

'죄목'도 '처분'도 '경미한 경우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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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나의 운명을 결정한 감사원 감사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진 뒤 감사원은 서둘러 이날 저녁, 기자회견을 열어 30쪽 짜리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나의 '죄목'은 11가지였다.

그 '죄목'을 요약하면 "정연주 사장이 취임 전까지 흑자이던 KBS 재정구조를 취임 이후 2004~ 2007년간 1172억 원의 누적 사업손실을 초래하는 등 만성적 적자구조로 고착화시켰고, 이러한 적자 상황에서도... 방만경영을 지속했으며... 인사 전횡으로 조직내 갈등을 유발하였고... 위법하고 타당성 없는 방송시설 투자 사업을 추진하여 사업비를 낭비한 사실이 적발되는 등 그 비위 정도가 현저하다고 인정하여... 감사원법 규정에 따라 KBS 이사회에 해임을 요구하였다"는 것이었다. 

감사원은 이 11가지 '죄목'에 대해 각각의 '처분'을 했다. 감사원 '처분'의 근거는 '감사원법 제31조 - 35조'와 감사원 내부 기준인 '공공감사기준'(감사원 규칙 제137호)의 제29조(감사결과 처분(요구))에 근거하여 '처분'을 하게 되어 있다. 처분의 종류는 '처분'의 중함에 따라 ▲ 변상 판정 또는 변상 명령 ▲ 징계 또는 문책 ▲ 시정 ▲ 주의·경고 또는 훈계 ▲ 개선 ▲ 권고 ▲ 통보 등의 순으로 되어 있으며, 각 '처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1. 변상판정 또는 변상명령 : 회계 관계 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회계 관계 직원 등에 대한 변상책임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2. 징계 또는 문책 : 국가공무원법, 기타 법령 등에 규정된 징계 또는 문책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3. 시정 : 감사결과 위법 또는 부당하여 추징·회수·보전·환급·추급 또는 원상복구 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4. 주의·경고 또는 훈계 : 감사 결과 위법 또는 부당한 행위라고 인정되나 그 정도가 징계 또는 문책사유에 이르지 아니하는 경미한 경우.
5. 개선 : 감사결과 법령상·행정상 또는 제도상의 모순이나 불합리한 사항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6. 권고 : 감사결과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여 감사대상 기관의 장 등으로 하여금 개선방안을 마련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경우.
7. 통보 : 감사결과 특정인 등의 비위사실이나 위법·부당사항 등을 다른 처분(요구)으로는 부적합하나 감사대상기관의 장 등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런데 8월 5일에 나온 '보도자료'와, 이 보다 21일이 지난 8월 26일에 작성된 실지 감사보고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 등에 따르면 11개의 '죄목'에 대한 '처분' 내용은 '뜻밖'이었다. '감악산 중계소 신설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기술본부 직원에 대한 '문책'과 기술본부장 '인사조치 요구' 등 기술본부 직원들의 '징계'를 사장에게 요구한 1 건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주의' '권고' '통보'였던 것이다. '현저한 비리'라고 밝혀 놓고는 '경고' '훈계'와 동급인 '주의', 또는 그 아래 등급인 '권고' '통보'의 처분을 내렸던 것이다. 그 어디에도 '현저한 비리'의 객관적이고 법률적인 내용은 없었다.

심지어 검찰이 '배임 혐의'로 나를 기소한 법인세 등의 법원 조정을 둘러싼 문제와 관련해서도 '주의' 조치를 내렸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혐의 내용'은 검찰 기소장처럼 KBS에 1892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는 '배임'이 아니라, "송무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 명백하고 객관적인 사유 없이 중도에 조정 등으로 종결 처리함으로써 정당한 권리회복의 기회(514억 원의 추가적인 환급 기회)를 일실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촉구하였다"고 밝혔다.

검찰 논리대로라면 감사원은 '배임'으로 몰아서 '변상'을 요구하거나 고발조치했어야 했고, 그 금액도 검찰 주장대로 1892억 원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금액과 표현도 514억 원의 '추가 환급기회의 일실'이라는 모호한 것이었고, '처분' 내용도 '주의'에 그쳤다.

'주의' 처분은 위에서 인용한 '공공감사 기준'에 의하면 "...그 정도가 징계 또는 문책 사유에 이르지 아니하는 경미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경고' '훈계'와 동급이다. '주의'보다 그 아래 수준인 '권고' '통보'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훈계꺼리 몇가지를 모아가지고 감사원은 '해임 요구'를 의결했던 것이다. 훈계꺼리의 '경범죄' 또는 '경미한 범죄' 몇 가지를 저질렀다고 '사형 선고'를 내린 셈이다. '해임'을 요구할 수 있는 '현저한 비리'에 걸 맞는 '죄목'과 '처분'도 없었고, '현저한 비리'는 감사위원회에서 행한 제2사무차장의 발언처럼 "주관적인 평가"임이 분명했다. '정치적 행위'였음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조중동, 감사원 발표자료로 도배

2008년 8월 6일자 조선일보 1면. 한미정상회담이 아닌 감사원의 해임요구가 톱 기사다.
 2008년 8월 6일자 조선일보 1면. 한미정상회담이 아닌 감사원의 해임요구가 톱 기사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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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맨 마지막 페이지인 30쪽에는 또 아래와 같은 내용도 적혀있다.

감사원에서 발부된 질문서에 대하여 정연주 사장이 직접 서면으로 모두 답변하여 주었고, 답변서를 토대로 감사 결과를 처리하는데 큰 지장이 없어 별도 고발은 하지 아니함.

KBS 쪽에서 그렇게 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할 때는 들은 척도 않더니, 그런 이전의 주장과 논리를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뒤집어버렸다. 정치일정에 맞추기 위한 급박한 정치 감사, 표적 감사 이외에 그 어떤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지...이러고도 '영혼 없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있을지.

감사원은 그렇게 나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다음 날 아침, 조중동 등은 감사원 발표로 거의 도배를 하듯 대서특필했다. 아마도 감사원 감사 결과가 그렇게 일반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중동은 이런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해임한 것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서 '해임 취소 처분'의 판결이 나왔을 때도, 해임 사유의 큰 이유 중 하나인 '배임 혐의' 형사소송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도, 아주 조그맣게 보도했을 뿐이었다. 직접 당해 보면 이런 것을 언론이라 할 수가 없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정연주의 증언'10 참조).

감사원 보도자료가 나온 뒤 KBS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KBS의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가 표적성 감사다, 감사 지적사항도 수긍하기 어렵다, 부당한 감사 결과에 대해 재심의 요구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등의 내용과 함께 감사 지적 사항 가운데 거짓과 왜곡, 잘못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설명하는 자료를 발표했다. 그러나 KBS의 그러한 주장과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 날 밤 아주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다음 날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3, 4면 모두에서 감사원의 해임 요구를 다룬 조선일보 2008년 8월 6일자.
 3, 4면 모두에서 감사원의 해임 요구를 다룬 조선일보 2008년 8월 6일자.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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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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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연주, #KBS, #감사원, #정치감사, #사장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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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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