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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희망근로 2010 포스터
 희망근로 2010 포스터
ⓒ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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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겨울. 취재를 위해 열두 분의 독거노인을 만났다. 대부분 먹고 사는 것조차 해결이 어려운 절대빈곤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호적상 부양할 수 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나 차상위 계층에서 제외되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노인들이었다.

정부로부터 지원되는 8만4000원의 노령연금이 수입의 전부인 이들 노인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식료품비는 물론 의료비, 주거비, 난방비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주거환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 '돈이 무서워'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추워도 난방을  할 수 없다. 복지단체에서 매달 지원하는 쌀과 김치가 아니라면 연명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독거노인의 생명줄 '희망근로'... 경쟁률 높아진 이유는

이런 노인들에게 일 년에 몇 개월이지만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희망근로'나 '노인일자리사업'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동절기엔 비수기라는 이유로 그나마 일자리도 없어서 쉬어야 한다.

"쓰레기 줍는 일도 하고, 학교 가서 초등학교 어린이들 급식도우미도 해보고... 겨울철이라 일이 없어서 그렇지 일만 있으면 뭐든 다 하지. 겨울엔 사고 나기 쉽고 감기 걸리면 치료비 들고 그런다고 일을 안 준다나 뭐라나. 그런데 생활비는 겨울에 더 들거든. 추우니까 불도 때야 하고..."

지난해에도 희망근로나 공공근로,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일정한 수입을 얻어 본 경험이 있는 노인들은 새해(2010년)에도 일자리 사업 지원 공고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보수가 높은 희망근로는 노인들이 가장 바라는 일자리다.

희망근로의 경우 시행 첫해인 지난해의 경우 홍보가 부족한 탓에 미달되는 인원을 충당하느라 애를 쓴 지자체도 있었다는 후문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대부분의 창구가 신청 첫날부터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전국평균 4.7대1/경기도 평균 4.6대1/성남시 6.9대1).

이처럼 높아진 경쟁률은 경제난과 취업난으로 희망근로 지원자는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지난해에 비해 예산이 67%나 삭감된 탓에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때문이기도 하다. 경쟁률이 높을 경우 노동수행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 노인들은 불리한 위치일 수밖에 없다. 결국 대부분의 노인들이 희망근로 선발에서 탈락되어 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희망근로는 넉달간만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90만 원 정도 돈을 받으니 사는 데 보탬이 크게 됐지. 하지만 노인일자리사업은 하루 4시간, 그것도 일주일에 세 번 일하고 20만원 받는데 7개월간 일을 해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 해. 그래도 집에서 놀고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는데... 매일 일을 하더라도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도록 50만 원쯤 주면 걱정이 없겠어."

"일해서 좋긴 한데... 한달에 20만원은 좀"

노인들에게 일 년에 몇 개월이지만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희망근로'나 '노인일자리사업'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노인들에게 일 년에 몇 개월이지만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희망근로'나 '노인일자리사업'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 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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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통계청의 '고령자통계'에 의하면 고령층(55~79세) 인구 중 57%가 향후 취업을 희망한다고 조사됐다. 취업희망 이유로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어서'가 32.6%로 가장 많았으며 '일하는 즐거움 때문'이라는 응답이 19.3%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노인들도 일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일자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수적으로 적은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일거리가 거리청소 등 단순 노동이다 보니 노동만족도가 떨어진다.

또 희망근로에 비해 보수 수준이 낮아서 오히려 배려는커녕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희망근로'나 '노인일자리사업'이나 똑같이 거리에서 쓰레기 줍는 일을 하는데 희망근로를 통해 하면 90만원 가까운 보수를 받지만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하면 하루 4시간, 월 3일 근무라 할지라도 20만원의 보수밖에는 받지 못한다.

쓰레기 치우기뿐 아니라 대부분의 노인 일자리의 경우 젊은 사람들과 비교해 노동의 질이 떨어지지 않음에도 보수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이 노인들 대부분의 불만이다. 이것은 노인일자리사업의 취지 즉,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보충적 소득보장을 통해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던 계획과도 동떨어져 보인다.

이처럼 낮은 임금과 적은 일자리는 공공분야 노인일자리사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일자리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민간분야의 시니어클럽이나 시니어협동조합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거노인 홍 할머니는 강서시니어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의공동작업장에서 몇 달간 일을 한 경험이 있다. 할머니는 노인들끼리 모여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적은 보수 때문에 먼 거리까지 출퇴근하는 데 드는 교통비와 점심값 등이 부담스러워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고 있다고 했다.

"노인들끼리 모여 일을 하니 일하면서 신세한탄도 하고 서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좋은데 20만원 받아서 오가는 차비며 점심값을 제하고 나면 뭐 남는 게 있어야지. 일을 더 하고 임금을 더 달라고 해도 그건 규정상 안 되는 일이래."

문제는 한 가지 일만으로 받는 임금으로는 생활이 어렵기에 나머지 시간에 봉투 접기를 하거나 폐지 줍기를 하거나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수가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선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시니어클럽이나 시니어 협동조합담당자들도 이 같은 어르신들의 안타까움을 직접 들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나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하는 구조 탓에 늘 예산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 눈치 그만보고 지자체 계획 내와야

지자체의 다양한 일자리 개발 노력을 통해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다양화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소수 모집에 그치고 있다. 임금 역시 20만원에 고정, 만족할 만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 어르신들께 늘 죄송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시니어클럽의 경우 지자체로부터 노인 1인당 130만원의 지원금을 받습니다. 지원금 안에는 운영비와 교육비, 산재비용 등이 포함되는데 그러다보니 노인 한분에게 돌아가는 순수보조금은 10만원에서 12만원이 최대입니다. 거기에 사업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포함해 지급해 드리는데 아직 사업자체가 소규모라 그런지 수익이 높지 않아 저희 역시 20만원의 보수를 드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지원되는 보조금이 조금 높아진다면 더욱 많은 일자리와 만족할 만한 보수가 지급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공동작업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 판매하거나 카페 운영 등을 통해 이미지를 높이고 수익을 창출하는 등 바람직한 노인일자리사업의 모델이 되는 사업장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기대할 만하다. 노인일자리 사업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지자체의 노력이 하나, 둘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의 노력으로 노인일자리사업을 위해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들이나 관공서, 공공기관들이 늘어가는 것도 고무적이다. 이 분야는 지금은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문가출신 고학력 노령인구를 대비 정책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노인 일자리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

지자체는 더 이상 중앙 정부의 정책에 얽매이지 말고 자체적으로 시혜의 수준을 넘어서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노인들도 당당한 근로능력자로서, 경제활동인구로서 우리 사회 안에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가좌동의 김 할머니도 화곡동의 홍 할머니도, 성남의 정할아버지도 흥이 나서 일하고 일한 만큼의 임금을 받아 당당하게 자신의 노년을 책임지길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노인일자리사업 관련 정책과 공약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는 우리부모님들의 문제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태그:#지방선거, #10대 어젠다,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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