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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단비' 사업이 한창이다. 잠비아와 케냐 등 물을 구하기 힘든 지역에 우물을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사업이 일밤 단비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녹화방송이라는 걸 알면서도 TV 속의 연예인들과 같이 한참을 초조해하며 기다렸다. 기적처럼 솟아나오는 물줄기를 넋놓고 바라보니 참으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런데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당신도 우물을 판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낸 세금으로 누군가 우물을 판 적이 있다.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서 방글라데시, 그것도 웬만한 남성도 단신으로 파견되기는 힘들다는 롱뿔 빌곤즈에 있는 BRDB(Bangladesh Rural Development Board, 농촌개발위원회, 우리나라 농협의 개념)에 2년간 파견되어 화장실 29개, 우물펌프를 25개를 만들고 귀국한 사회복지사 김수진 씨를 만나 본다.

- 방글라데시에서 화장실과 우물펌프 사업을 하게 된 경위와 과정을 듣고 싶어요.
2007년에 한국국제협력단이 방글라데시에 파견될 사회복지사를 모집할 때부터 화장실 공사와 식수사업을 할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당연히 저도 그 사업을 먼저 구상하고 갔죠. 그런데 막상 갔더니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저 외국인한테 얼마정도 쥐어주면 화장실이랑 우물 만들어 준다더라.' 하는 식의 유언비어가 돌고 있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기회를 노리면서 화장실 사업은 언제 시작하느냐고 은근히 물어오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금시초문이라는 식으로 모르는 척 했어요. 바로 그 사업을 시작했다가는 제가 파견된 기관 직원들의 지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처음부터 '퍼주는 사업'은 곤란하다 생각했어요. 현지인들의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사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먼저 봉제훈련센터를 보수하고 지역주민 여성의 자활과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봉제훈련을 실시했어요. 또 극빈층 100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장학사업을 하는 동시에, 각 가정의 형편을 확인하며 식수나 화장실이 꼭 필요한 지역을 눈여겨뒀죠.

"처음부터 '퍼주는 사업'은 곤란하다 생각했어요. 현지인들의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사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먼저 봉제훈련센터를 보수하고 지역주민 여성의 자활과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봉제훈련을 실시했어요."
▲ 봉제기술훈련 "처음부터 '퍼주는 사업'은 곤란하다 생각했어요. 현지인들의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사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먼저 봉제훈련센터를 보수하고 지역주민 여성의 자활과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봉제훈련을 실시했어요."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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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화장실 공사와 우물펌프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 것은 1년 6개월이나 지난 후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시기선정이 적절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저의 일처리 방식이나 사업방향에 대해 현지인들이 꽤 많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우리집에 해달라'는 식으로 조르지 않았거든요.

- 어떤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주신 건가요?

완성된 우물펌프로 동네 아주머니가 물을 긷고 있다. 김수진 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서 2년간 방글라데시 롱뿔 빌곤즈 지역에 파견되어 화장실 29개, 우물펌프를 25개를 만들었다.
▲ 우물펌프로 물을 긷는 아주머니 완성된 우물펌프로 동네 아주머니가 물을 긷고 있다. 김수진 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서 2년간 방글라데시 롱뿔 빌곤즈 지역에 파견되어 화장실 29개, 우물펌프를 25개를 만들었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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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활동기관과의 협의 하에 롱뿔 빌곤즈에 있는 15개 유니온('동'洞의 개념) 중 8개를 추출,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소액대출(Microcredit) 상환율이 좋은 쇼미띠(조합)를 선정해서 지원을 결정합니다. (쇼미띠는 15-20명 정도의 마을 주민의 집단을 말하는데, 대출상환과 신용을 서로 책임지게 하는 역할을 하지요. 만약 쇼미띠 중의 한 명이라도 상환에 소홀하거나 신용이 나빠지면 쇼미띠 전체가 더 이상 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식입니다.) 몇몇 쇼미띠를 선정한 후 쇼미띠 자체 회의를 거쳐서 누구의 집에 화장실과 우물펌프를 설치할 것인지 합의하도록 했습니다. 소액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거의 최빈곤 계층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쇼미띠 자체 회의에서 서로 자기네 집에 시설을 설치하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겠어요.

- 방글라데시의 식수사정은 어떤가요?
방글라데시의 홍수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셨지요? 방글라데시에는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 비해 물이 풍부한 반면, 상하수도가 없어 시골에서는 강과 연못물을 다용도로 씁니다. 밥 지을 물을 떠가는데 옆에서는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는 식이지요. 땅은 좁고 인구가 많다보니 수질이 나빠서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아요.

"밥 지을 물을 떠가는데 옆에서는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는 식이지요. 땅은 좁고 인구가 많다보니 수질이 나빠서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아요."
▲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밥 지을 물을 떠가는데 옆에서는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는 식이지요. 땅은 좁고 인구가 많다보니 수질이 나빠서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아요."
ⓒ 손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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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는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퇴적물들이 쌓여 이뤄진 삼각주 지대인데, 자갈이 없고 온통 진흙이에요. 그래서 보통 흙탕물이지요. 제가 있었던 롱뿔 지역은 북쪽인데다가 지층이 두터워서 그나마 물이 깨끗한 편이었는데도 우물을 파면 녹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쿨나(Khulna)와 같은 남부 지역은 바다와 가까워 물에 소금기가 있고 석회질이 많지요. 게다가 방글라데시는 물에 포함된 비소의 수치가 심각할 정도로 높은데요, 어떤 곳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의 300-400배 이상이라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또 땅은 좁고 인구가 많다보니 우물펌프가 하나 있으면 수십 명이 사용하는데요, 우물펌프에도 러시아워가 있어요. 무슬림들이 하루에 다섯 번 하는 기도 시간대, 식사시간, 세면시간, 모두 작은 공동 펌프 하나로 해결해야 하죠. 우리 나라는 화장실과 주방에 따로따로 수도꼭지가 있지만 거기는 딱 하나밖에 없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전동펌프를 지원할 생각이었는데, 전기세 등을 감당할 유지능력이 부족했을 뿐더러 전기 사정이 최악인 롱뿔에는 적합하지 않았어요.(반나절 정도만 전기가 공급됐으니까요, 그것도 밤에 말이죠) 설치 비용을 고려하니 수동식 우물펌프가 낫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우물펌프를 적당한 곳에 배치하여 세면용 우물과 식수용 우물을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한화로 약 14만원(7000tk) 정도면 우물 하나를 뚫고 필터로 걸러서 깨끗한 물을 주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답니다.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방글라데시에 2년간 파견되었던 김수진 씨가 롱뿔 빌곤즈 지역에 설치한 우물과 그 뒤로 보이는 수세식 화장실. 맑은 물을 길어올리는 아이들의 표정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 완공된 우물펌프와 화장실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방글라데시에 2년간 파견되었던 김수진 씨가 롱뿔 빌곤즈 지역에 설치한 우물과 그 뒤로 보이는 수세식 화장실. 맑은 물을 길어올리는 아이들의 표정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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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화장실을 만드신 거예요? 재래식 아니면 수세식?
현지인들이 보통 화장실을 지을 때는 함석으로 많이들 짓는데 그건 2-3년 뒤면 비바람 때문에 쓰러지거나 청결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서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었어요. 또 세라믹으로 된 수세식 좌변기를 설치하고 청소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어요. 청정세제를 사서 쓰라고 권유도 하고 매번 청소상태 검사도 했지요.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파견한 해외봉사단원으로서 김수진 씨는 지난 여름 화장실 29개, 우물펌프를 25개 만들고 돌아왔다.
▲ 방글라데시에 설치된 화장실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파견한 해외봉사단원으로서 김수진 씨는 지난 여름 화장실 29개, 우물펌프를 25개 만들고 돌아왔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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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링(배설물을 저장하는 원통형의 시멘트 구조)은 여타 NGO의 두 배는 지원해 줬던 것 같네요. 화장실 하나에 링을 14개 정도 사용했으니까요. 깊으면 깊을수록 오래 쓰게 되는데요, 아마 50년에서 100년은 끄덕없을 거예요. 아이러니컬하지만 이제 그 사람들은 시멘트로 만든 튼튼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딸린 볏집에 살고 있어요.

"화장실 하나당 링을 14개 정도 사용했으니까 아마 50년에서 100년은 끄덕없을 거예요." 밴가리(리어커 형의 손수레)를 모는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 주어 운반에는 돈이 거의 안 들었다고 한다.
 "화장실 하나당 링을 14개 정도 사용했으니까 아마 50년에서 100년은 끄덕없을 거예요." 밴가리(리어커 형의 손수레)를 모는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 주어 운반에는 돈이 거의 안 들었다고 한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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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비도 많이 들어왔겠어요?
그랬죠. 자기네 집에 해달라고. 그렇지만 소액대출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로비를 하겠어요. 기껏해야 우유, 과일, 야채 같은 것들을 현지직원들에게 주는 모양이더라고요. 그 정도는 암묵적으로 허용해 줬지요. 그렇지만 저는 뇌물따위를 안 받는 게 소문이 났어요. 기관 사람들에게도 주지를 시켰고요.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고 화장실이랑 우물펌프 명단을 3차에 걸쳐서 받았어요. 현장조사를 다니면서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안 하려고 애썼어요. 그렇게 받기 시작하면 없는 형편의 사람들에게 더욱 부담을 주는 셈이잖아요. 부잣집에 가서만 식사대접을 받곤 했지요.

- 외국인으로서, 단신으로, 수도도 아닌 외곽의 시골 마을에서 사업하시기가 녹록지 않았을텐데요, 사업 중에 사건사고도 많았겠어요.
8개의 동에서 화장실 29개, 우물펌프 25개가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차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CNG(오토릭샤)나 릭샤를 타고 공사진행과정을 잠깐씩 돌아보기만 하는 데도 일주일이 넘게 걸렸죠. 그 와중에도 공사는 진행되니까 웃지 못할 복병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episode 1] 우물펌프와 화장실을 설치하고 있던 어느 집이 알고보니 땅주인 몰래 그냥 볏집을 짓고 살고 있던 거였어요. 그걸 알게 된 땅주인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당장 철수해 달라고 했지요. 외국 NGO에서 그 사람을 위해 시설을 만들어 놓으면 자기 땅까지 실거주자의 소유로 국가에서 인정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더라고요. 당신 소유 토지임이 문서에 명시되어 있으니 두 시설에 대한 실소유권도 결국 땅주인인 당신이 되지 않겠느냐, 하고 설득해 보았지만, 방글라데시 행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나머지 마음을 돌리지 않았어요. 화장실 배설물 통까지 다 놓고 벽돌을 올리고 있는 상태였는데 하는 수 없이 다시 뜯어냈지요 뭐. 공사를 다 끝내놓은 우물을 없애기는 아까워서 헤드만 싼 제품으로 바꿔줬어요. 코이카에서 지원해준 것이 아니라 거주자 자비로 만든 것처럼 위장을 한 거죠.

[episode 2] 어떤 곳은 우물펌프 헤드를 도둑맞았어요. 결국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다시 사기로 했다더군요. 또 어떤 곳은 이런 일을 애초에 방지하려고 밤마다 우물펌프 헤드를 분리해서 보관한다고도 하더라고요.

[episode 3] 어떤 집은 공사가 끝났는데 글쎄 화장실 천장이 없는 거예요.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 보니 정글(대나무 숲을 정글이라고 불렀어요)에서 싸는 버릇이 돼 놔서 천장을 달면 무섭다고, 달지 않겠다고 우기더라고요. 만날 훤하게 트인 곳에서 볼일을 봤는데 사방이 꽉 막힌 곳이 도저히 싫대요. 그래서 여자와 아이들의 위생과 안전을 위해서도 이런 식의 폐쇄형(?) 화장실이 꼭 필요하다고 애써 설명해 가며 설득해야 했어요.

방글라데시 롱뿔 화장실 사업, 화장실 표지판
▲ 방글라데시 롱뿔 화장실 사업, 화장실 표지판 방글라데시 롱뿔 화장실 사업, 화장실 표지판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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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 또 이런 일도 있어요. 볏집에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 댁에 화장실 사업을 했는데 다시 찾아가 보니 버젓이 벽돌집에 살고 있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할머니뻘인 그분께 어떻게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냐고 큰 소리로 따졌어요. 그랬더니 그때까지 제가 모르고 있던 가족사를 구구절절히 풀어 놓으시며 통곡을 하시는 거였어요. 지금껏 자기를 부양해줄 사람이 없었는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운이 좋게 배 다른 아들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품앗이 같은 소일거리로 연명하는 수준이라 수중에 옷 한 벌 살 돈도 없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우시더라고요. 모질게 한 게 미안해서 200따까(한화 4,000원 정도)쯤 쥐여드리고 왔어요.

생각해 보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시설이 가지 않을 때가 제일 속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몸 담고 있는 현지 기관과 조합원들끼리 의견충돌이 생기면 어느 손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떠나는 사람이고 기관은 앞으로도 계속 조합원들과 사업을 진행해야 하니 결국 기관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지요.

- 코이카에서 타 국가로 파견되는 사회복지사들이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도 조금만 소개해 주신다면요?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개도국의 열악한 지방에서는 기초환경 개선사업이 가장 시급하기 때문에 식수나 화장실이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되지요. 아, 도미니카공화국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 성교육 사업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곳 생활은 행복하셨나요?
지나고 나니까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힘들고 어처구니가 없었지요. 그곳 사정은 상식을 초월합니다. 하루 종일 전기가 안 들어오다가 자려고 하면 밤 11시에나 전기가 들어와요. 어둠 속에서 걸어다니고, 요리하고, 빨래하고, 촛불을 켜놓고 마늘 까고. 하하. 전기가 없을 때 더 부지런했던 것 같아요. 전기가 들어오면 오히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게 되더라고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같은 경우에는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롱뿔은 녹음과 푸르름이 보존된 아주 멋진 곳이었어요. 저희 집 마당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소를 한 마리 끌고 와서 배불리 먹인 적도 있어요. 망고와 잭푸르트 나무도 수십 그루가 있었어요. 황토빛 연못에는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물고기가 뛰어놀고. 참, 전기 모기채로 한 번 휘두르면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모기가 많긴 했어요.

나중에는 주민들과 친해져서 심심할 때면 마실을 나갔어요. 마지막 6개월이 가장 행복했어요. 파견되어 1년은 미칠 것 같은 시간이었고, 6개월은 적응해 나갔고, 마지막 6개월은 보상을 받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기에 비가 한창 쏟아지고 나면 하늘이 특히 깨끗해지는데, 호롱불 켜놓고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 아래에서 하는 대화란...

릭샤를 타도 릭샤왈라(인력거꾼)가 저를 알고 있어요. 제가 어두운 집 앞에서 열쇠로 문을 다 따고 들어갈 때까지 뒤에서 호롱불로 비춰주기도 하지요. 그러더니 종국에는 절 외국인 취급도 안 하더라고요. 해외봉사단원으로 지원할 생각이 있다면 방글라데시로 가라고 추천해 주고 싶어요. 최고로 열악하지만 그만큼 인정이 많은 나라예요.

"나눔과 봉사는 우월감을 가지고 적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함께 느끼기에 이루어지는 활동이에요." 그녀의 풍물 실력은 과연 일품인데 방글라데시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꽹과리를 들고 있는 사람이 김수진 씨.
▲ 방글라데시인들에게 사물놀이를 소개하는 코이카 해외봉사단원들 (꽃동네 봉사활동) "나눔과 봉사는 우월감을 가지고 적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함께 느끼기에 이루어지는 활동이에요." 그녀의 풍물 실력은 과연 일품인데 방글라데시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꽹과리를 들고 있는 사람이 김수진 씨.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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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협력사업 및 다양한 NGO 봉사단원들의 활동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죠. 외국인으로서, 봉사단원으로서, 자기 행동의 파급효과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말고, 혈세 낭비, 외화 낭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죠.

- 다시 간다면 가고 싶은 지역과 해 보고 싶은 사업은요?
(다시는 안 나갈 것 같아요. 이제 한국에 정착해야죠. 하하하) 사실 방글라데시에서 관광개발 사업을 하고 싶었었죠.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이미 JICA가 하고 있더군요. 여행자들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니 방글라데시의 슌돌본(늪지대)이나 콕스바잘(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같은 곳이 이미 여행지로 개발되고 있더라고요. 시골 아이들은 외국인을 보면 놀라서 울어버릴 만큼 순박한데, 그런 지역들이 여행지로 개발이 되면, 보통 사람들이 흉악해지고 자연이 훼손되고 오염되더라고요. 그래서 제 소원은 오히려 방글라데시만큼은 부디 보존되었으면 좋겠다는 걸로 바뀌었어요. 아, 사업 질문이었죠?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 다 찔러 봐서 지금은 해보고 싶은 게 없어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는 만성적인 교통체증과 매연에 시달린다.
▲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는 만성적인 교통체증과 매연에 시달린다.
ⓒ 손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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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밤의 '단비'에서 우물 파는 것 보셨지요? (요즘 우물이 대세인 것 같아요.)
네, 참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약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원조에는 그에 동시에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라야 흙탕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뜨앗,하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그들에게는 일상입니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도통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우물 하나 파주고 온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정수의 중요성과 상하수도를 구별해서 수질을 관리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도와주는 교육도 우물을 파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현지인들이 녹물과 흙탕물을 퍼마신다는 등 시청자를 경악시키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면, 자칫하면 수원국을 비하시키고 원조국은 비교 우위에 있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미디어가 우월감을 조성하고 개도국을 미개한 나라로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선진국은 퍼주고, 저개발국가들은 무상으로 원조받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이면에는 이런 것도 있어요. 일본의 원조 구조는 개도국에 무상으로 도로를 깔아주지만 그 조건으로 TOYOTA차가 들어가는 식이에요. 자체 생산력이 없으니까 TOYOTA 부품 수요는 늘어나겠죠. 원조개발사업이 자칫하면 개도국을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장사로 둔갑할 수도 있어요.

나눔과 봉사는 우월감을 가지고 적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함께 느끼기에 이루어지는 활동이에요. 사실 개도국이 겪는 자연재해의 가해자가 따지고 보면 선진국인 경우가 많은 거 아시죠. 방글라데시만 해도 그래요. 선진국이 배출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데 그것의 직접적인 피해는 방글라데시가 매년 홍수로 입는 식이지요. 선진국이 개도국에서 마음껏 벌목하고 뜨거운 지구를 만들어 사막화를 촉진시키면서 사막에 우물을 파준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제는 같이 책임져야 하는 거예요.

이상 방글라데시에서 우물 파고 온 여자, 김수진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에서 해외봉사단을 파견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오늘도 어느 개도국의 여인은, 수년 전에 이름도 없이 다녀간 한 봉사단원이 향수병에 시달려가며 만든 우물에서 깨끗한 물을 길어 저녁밥을 짓는다.

"또 극빈층 100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장학사업을 하는 동시에, 각 가정의 형편을 확인하며 식수나 화장실이 꼭 필요한 지역을 눈여겨뒀죠." 김수진 씨는 2회에 걸쳐 극빈층 100가구에 한 가구당 총 공책 15권, 볼펜 15자루씩을 지원해 주었다.
▲ 방글라데시 학생에게 공책과 볼펜을 전달하는 김수진 씨 "또 극빈층 100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장학사업을 하는 동시에, 각 가정의 형편을 확인하며 식수나 화장실이 꼭 필요한 지역을 눈여겨뒀죠." 김수진 씨는 2회에 걸쳐 극빈층 100가구에 한 가구당 총 공책 15권, 볼펜 15자루씩을 지원해 주었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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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씨는 작년 7월말에 귀국해서 11월부터 다시 3개월간 남미를 떠돌다가 현재 양천구 목동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외교통상부 산하 기관으로서 1990년에 발족되었으며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세계 33개국에 다양한 전문분야로 활약하고 있는 해외봉사단(World Friends Korea) 1,500여명을 파견하고 있다. 2008년까지 총 누적지원 실적은 3천 55억원(약 2억 7천 5백만불)에 달한다.



태그:#일밤 단비, #한국국제협력단, #KOICA, #방글라데시,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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