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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설계사, 재무주치의, 자산관리사, Financial Planner, Financial Advisor.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재무상담사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표현도 다양하고, 의미도 다양하고, 해석도 다양하다. 가장 그럴듯하게 보이는 말로 '명함'을 파고, 또 그렇게 포장된 명함으로 고객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객관적 평가 기준도, 변별력도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언어의 '남용'이라고 할까?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가지 것들이 잡탕으로 섞여, 혼탁한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라. 많은 고객들이 '단지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또 후회하면서 가입과 해지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우연히 은행에 들렀다가 창구 직원의 좋은(?) 말만 듣고 내용도 모르는 채 해외펀드를 구매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행위들이 재무설계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통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재무설계란 무엇인가?

재무설계는 사람 혹은 가정의 재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tool)다. 개인 및 가정경제의 행복이 목적이고 재무설계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재무설계는 개인 재무관리를 위한 기본 '운영체제(OS)'라고 할 수 있다. 40년 전 미국에서 태동했고 이후 하나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고정화된 체계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방법론이란 얼마든지 새로운 기준으로 재해석하고 또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재무설계 시장은 어떨까?

수요,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이론을 들출 필요도 없이, 현 한국 재무설계 시장은 수요도, 공급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미성숙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보면 된다. 금융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짜맞추기 수단으로 재무설계를 역이용하는 사례들이 시장을 뒤덮고 있고, 그로 인해 재무설계의 가치가 훼손되는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창궐하고 있다. 믿고 조언을 구할 재무설계 전문가, 중립적 위치에서 재무조언을 해줄 수 있는 상담 인력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재무상담사를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상담인력들의 다수가 특정한 금융회사에 소속되어 있음으로 인해 중립적인 재무상담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매우 양심적인(?) 재무상담사라 하더라도 자사 금융상품의 유통대리인으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상품 판매가 목적이고 재무설계는 판매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격하되어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이렇듯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한국 재무설계 산업은 채 피어보기도 전에 고사(枯死)될 지 모른다.

고객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업무수수료를 받는 것을 지식 기반형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한다. 전문가 집단이 제공하는 서비스(의료, 법률, 세무, 회계, 금융)는 모두 이 모델에 근거한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고, 수요 대비 공급이 적을수록 고부가가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재무설계 영역은 전형적인 지식 기반산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중개 서비스 시장을 생각해 보자.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중개시장에서 정해진 '수수료율표'에 의해 거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거래의 표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억짜리 매물을 팔면 80만원, 임대차하면 60만원 이런 식으로 정해진 과표에 따라 수수료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재무상담사와 부동산중개인 중 고객에게 누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누구의 일이 더 고객 관여도가 높을까? 재무상담사다. 업무수행의 완성도를 떠나 수행하는 직무의 성격과 내용만을 놓고 볼 때, 재무상담사가 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해야 하고 업무 관여도도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현재 미국에는 전국적으로 약 4만 명의 CFP 인증자와 20만 명이 넘는 자칭 재무상담사들이 존재하며, 매우 다양한 수입 모델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미국 재무설계 업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체의 금융상품을 중개하지 않고 순수 업무수수료(fee only) 방식으로 일하는 재무상담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재무설계 선진국인 호주 역시 상품판매 수수료를 기반으로 한 상담인력들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미국 재무상담사들의 유형별 보수체계표
 미국 재무상담사들의 유형별 보수체계표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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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고객들에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언을 해주는 재무상담사들의 존재가 시장 안에서 올바로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상품 중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수입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지만, 금융상품 판매로 인한 이해상충을 뛰어넘어 고객과 '건강한' 관계 정립을 이룩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재무설계 혹은 재정 컨설팅을 제공해 줌으로써 개별 가정경제의 '재무주치의' 역할을 해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일뿐만 아니라 시장에 그 수요가 흘러 넘치고 있다. 문제는 고객이 믿고 상담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전문 인력이 있는가' 라는 점이다. 하루빨리 재무설계업법(法)과 공인 재무상담사 자격증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거래의 표준을 정하고 전문인력을 양산하기 위한 제도적 기준이 존재해야만 정당한 거래 및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층, 다양한 니즈(Needs)를 가진 사람들에게 맞춤형 재무설계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양심적이고 전문성을 가진 독립형 재무상담사 조직이 지금보다 많이 생겨야 한다.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적용 가능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재무지침(Action plan)을 제시해줄 수 있는 '풀뿌리' 재무 전문가들이 절실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금융 리터러시(Financing literacy : 금융자산 운용능력)은 고사하고 금융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착한 재무주치의'를 꿈꾸는 이유다.



태그:#재무설계, #재무상담사, #재무주치의, #파이낸셜 플래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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