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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간)를 읽었다. 부산 서면에 있는 큰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란에 꽂혀 있기에, 다른 몇 권의 책과 함께 설날 연휴 때 읽을 요량으로 샀다.

김 변호사는 숨겨져 있던 많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 중 노동조합 관련한 부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기자는 부산․경남지역의 노동현장을 취재해 왔는데, 책에는 삼성SDI(언양)․삼성중공업(거제)과 관련한 부분이 있어 눈 여겨 보았다. 김 변호사의 책을 소개한 몇몇 기사를 살펴보니, 노동조합 관련한 대목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아 별도로 정리해 보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 표지.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 표지.
ⓒ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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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와 관련한 대목은 크게 두 군데 나온다. 2부(그들만의 세상)에 실린 '여긴 실입니다'와 '황제경영의 그림자'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은 구조조정본부 인사팀 안에 '노사담당'을 두고 있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1997~2004년 사이 '삼성 구조본'에서 일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은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노하우가 다양했다"며 "물론 모두 불법적인 행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몇 사례를 들었다.

"삼성 공장 관할 관청 공무원을 매수해서 노조설립신고서를 아예 수리 자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매수된 공무원은 신고서가 들어오면, 신고서 수리를 일단 미루고 바로 삼성에 알려줬다.

그러면 삼성은 재빨리 유령노조 설립 신고를 했다. 이런 작업은 구조본뿐 아니라 계열사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노동조합 설립 기미가 보이면, 관련 주동자를 사실상 납치해서 회유,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각개격파하면, 결국 노조 설립 시도는 불발로 끝나곤 했다."

김 변호사는 구조본 인사팀장(노인식)이 한 이야기라며 삼성SDI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서였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노인식에게 '정말로 위치 추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노인식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인했다"고 전했다. 경찰도 활용했다. 김 변호사가 밝힌 삼성의 경찰 활용 수법은 이랬다.

"누군가에 대해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해야 한다면, 구조본 인사팀과 연줄이 닿는 경찰에게 미리 청탁해 둔다. 경찰서장 명의로 통신회사에 공문을 보내면, 휴대폰 개설 명의자를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 경찰은 청탁받은 조사에 관한 서류를 다른 정상적인 수사에 관한 서류에 끼워서 경찰서장에게 결재를 받는다. 이렇게 경찰서장 도장이 찍힌 공문이 나오면, 이를 휴대폰 위치 추적에 이용하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삼성이 치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동조합 때문에 생기는 비용보다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무노조 경영'은 삼성에서 신앙과 다름 없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글로벌스탠더드'와 관련해 설명하면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그는 "'무노조 경영'은 삼성에서 신앙과 다름없었다"면서 "고위층으로 올라갈 수로고 이런 생각이 견고했다. 이들은 노조라는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을 사례로 들었다. 배를 만드는 이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아닌 '노사협의회'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노사협의회 임원 선거와 관련해 간혹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고, 회사 개입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삼성중공업에 노사협의회가 있었는데, 여름마다 회사에서 노사협의회 간부들에게 영양제까지 챙겨줬다. 일종의 '내부매수'인 셈이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상관없으니, 노조만 아니면 된다는 게 삼성 고위층의 경영신조였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계속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삼성은 더 이상 국내 재벌이 아니다. … 세계 곳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에서도 삼성식 '무노조 경영'을 계속 고집하는 게 가능할까. 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통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 통할까.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게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 가능할 리는 없다. 노조 때문에 생기는 비용보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더 큰 상황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노조 방지 비용은 눈덩이처럼 쌓여간다. 이런 비용을 견딜 수 없는 순산이 머지않아 올 게다."

경쟁 재벌인 현대와 비교하기도 했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강조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노조를 허용하게 될 때 받을 충격도 커진다. 현대와 달리, 삼성 경영진은 '노조와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노조가 생기면, 삼성은 혼란을 감당할 수 없다. 다른 대기업 역시 '노조와 함께 지내는 법'을 거져 배운 것은 아니다. 막대한 수업료를 치른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김 변호사는 "이제 와서 '노조와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기에는, 치러야 할 수업료가 너무 크다. 회사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라며 "청소년기에 겪었어야 할 성장통을 장년기에 겪는다면,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고 밝혔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책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사람(이건희)이 IOC 위원으로 밴쿠버 동계올림픽 1500m 쇼트트랙 수상자들한테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나왔다. 당장 채널을 돌려버렸다.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사회평론(2010)


태그:#김용철 변호사, #노동조합, #무노조 경영, #삼성SDI, #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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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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