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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 쉼터에 모여든 자전거들. 오른쪽은 성산대교, 왼쪽은 가양대교 방향. 기자가 서 있는 쪽이 안양천.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 쉼터에 모여든 자전거들. 오른쪽은 성산대교, 왼쪽은 가양대교 방향. 기자가 서 있는 쪽이 안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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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이 입춘이었다. 유난히 눈 많고 추운 겨울, 따뜻한 날이 언제 올까 싶었는데 세월의 변화는 어김없다. 이제 봄이 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6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 손끝은 얼음장이 박히는 것처럼 아프다. 날이 맑아 햇살은 따뜻하지만, 바람은 생각 외로 몹시 차다. 이날 일기예보에, 아침 기온이 영하 8도로 매우 쌀쌀하지만 낮 기온은 영상 1도로 예년 기온을 회복할 거라고 했다.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안양천 한강 합수부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30분. 쌀쌀한 날씨치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사람들은 자전거만 타러 나온 게 아니다. 이런 날, 아침부터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전거를 타러 다니지 않았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세월이 변한 건지 사람들이 변한 건지, 이곳 한강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백운호수다. 안양천을 따라가다, 안양 시내에서 안양천의 지천인 학의천을 따라 올라가면 쉽게 다다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는 여정이라 지극히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백운호수는 저수지로 개발됐다가 훗날 근방에 평촌 신도시가 들어서고 주변 농지가 줄어들면서 호수로 탈바꿈했다. 지역 개발이 저수지 품격까지 높여준 셈이다. 한강 합수부에서 백운호수를 갈 때는 안양천 왼쪽 길로 접어드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굳이 물을 건너지 않고도 호수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장. 안전 펜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국내에서 2번째로 높은 건물인 하이페리온 주상복합 아파트.
 축구장. 안전 펜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국내에서 2번째로 높은 건물인 하이페리온 주상복합 아파트.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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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 체육공원 주변에 안전망이 필요하다

안양천 역시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축구장 두 군데가 공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시끌시끌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아닌 게 아니라, 봄이 가까이 오긴 온 모양이다.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축구장만 그런 게 아니다. 안양천 둔치는 정말 넓다. 야구장, 배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날이 풀렸다고 생각해서인지 온갖 스포츠동호회 회원들이 총 출동한 듯한 인상이다.

야구장 옆을 지나가는데 선수들이 일제히 내 쪽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그 순간 위험을 느끼고 속도를 늦췄더니, 바로 앞쪽 머리 위로 야구공이 날아간다. 아찔하다. 이들 경기장 곁을 지날 때는 특히 주의하는 것이 좋다. 예전에 축구장 곁을 지나던 자전거가 갑자기 자전거도로로 날아든 축구공을 밟고 전복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후로 축구장 외곽에 안전망을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아직 그런 것이 없다. 안전망을 설치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도림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 도림천에서 학의천까지 가는 거리가 꽤 길다. 20여km를 더 내려간다. 중간에 여러 가지 낯선 풍경을 만난다.
 도림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 도림천에서 학의천까지 가는 거리가 꽤 길다. 20여km를 더 내려간다. 중간에 여러 가지 낯선 풍경을 만난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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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 자전거도로는 대부분 평지다. 한두 군데 오르막길이 있지만 그냥 무시를 해도 좋을 정도다. 자전거를 타고 처음 장거리여행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딱 좋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와 만날 일도 없고, 자전거도로가 산책로와 분리가 되어 있어 보행자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도 거의 없다. 틈틈이 쉬어갈 수 있는 곳도 많다. 자전거를 타다 힘들면 갈대밭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 머리 위를 낮게 떠가는 비행기라도 보게 되면 그것도 행운이다.

안양천 변의 갈대밭 탐방로. 철이 지난 탓에 약간 황량한 느낌이 든다.
 안양천 변의 갈대밭 탐방로. 철이 지난 탓에 약간 황량한 느낌이 든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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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천 가는 길 중간 지점에 금천구에서 운영하는 자전거종합 서비스 센터(무료수리 및 자전거 대여)가 있다. 모두 무료다. 이용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자전거 수리의 경우, 겨울(12월부터 2월까지)에는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요즘 한강 곳곳에 자전거 대여소와 함께 수리소가 들어서고 있다. 자전거에 펑크가 나거나 가벼운 고장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만하다.

금천구를 지나면서부터는 자전거 도로 표면이 상당히 거친 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길이 이렇게까지 훼손되어 있지 않았다. 한파에 아스팔트 표면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부분적으로 패여 나간 것으로 보인다. 군데군데 시멘트를 발라 임시방편으로 보수를 해놓았는데, 그것 역시 오래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 비포장 길을 간다고 생각하고 속도를 조금 늦추면 된다.

학의천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학의천이다. 하천도 자전거도로도 폭이 꽤 좁아진다.
 학의천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학의천이다. 하천도 자전거도로도 폭이 꽤 좁아진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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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내려다보며 식사와 차를 즐기기에 좋은 곳

학의천으로 들어서면 하천 유역이 급격히 좁아진다. 그만큼 자전거도로 폭도 좁다. 그 길을 보행자들과 함께 이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 앞서 나가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뒤따라오는 자전거들을 유의해야 한다. 서로 앞서 나가려다 자칫 바퀴라도 엇갈리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길에서는 보행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자전거 진행 방향으로 무심코 걸어 들어올 때도 있다. 보행자 곁을 지날 때는 속도를 낮추고, 내가 먼저 앞으로 지나갈 거라는 걸 조용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뒤에서 다짜고짜 큰 소리로 벨을 울리면, 보행자가 놀란 나머지 의외의 방향으로 몸을 돌릴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위협적인 행동은 금물이다. 보행자 겸용 도로에서는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다.

학의천은 2006년에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고, 2009년에는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됐다. 도시화와 공업화로 병든 하천을 생태적으로 복원한 결과라고 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다소 황량한 감이 없지 않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풀향기 나무향기 물씬한 길로 되살아날 것이다. 이런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것도 내게는 큰 복이다.

백운호수 가까운 거리에 이런 다리가 나오면 바로 건넌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도로는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 국도 너머가 백운호수다.
 백운호수 가까운 거리에 이런 다리가 나오면 바로 건넌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도로는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 국도 너머가 백운호수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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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천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차도 하나를 건너가면 그곳이 바로 백운호수다. 호수 전체가 틈 하나 남기지 않고 꽝꽝 얼어붙어 있다. 물가에 가까이 내려갔다가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제방 위 물가에 철망이 둘러쳐져 있다. 그 철망이 호수 풍경을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된다. 전망이 좋지 않다. 기대를 안고 제방 위로 올라섰는데 실망이 적지 않다.

호숫가를 따라 도로가 빙 돌아간다. 주말이라 자동차가 많다.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라면 인도를 이용하는 게 좋다.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제방에서 바라다보는 것보다 더 시원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얼음이 녹을 무렵에는 사람들이 호수 위에 조각배나 모터보트를 띄워놓고 노는 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백운호수. 파란 하늘이 가을 하늘만큼이나 높다. 그 둘레로 카페,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백운호수. 파란 하늘이 가을 하늘만큼이나 높다. 그 둘레로 카페,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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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따라 라이브 카페나 레스토랑, 한식집 같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차와 식사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도시 변두리 도로치고는 차량이 많은 편이다. 자전거 여행자들 역시 이곳 음식점들을 꽤 많이 찾아온다. 그들이 백운호수를 찾아오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맛집 탐방이다. 전체적으로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그곳 어디에선가 점식 식사를 마친 후에 산책 삼아 호숫가를 빙 둘러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호숫가로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 제방 위에서 왼쪽 길로 돌아 올라가다 보면, 얼마 안 가 호숫가 쉼터가 하나 나온다. 그곳 벤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가는 것이 좋다. 그 후론 내처 걷거나 달리는 수밖에 없다.

안양천 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리들. 한 줄로 서 있는 걸 보고 카메라를 들어 올렸더니, 본능적으로 산개를 시도하고 있다.
 안양천 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리들. 한 줄로 서 있는 걸 보고 카메라를 들어 올렸더니, 본능적으로 산개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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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여행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2시에 끝냈다. 달린 거리는 45km. 한강 합수부에서 백운호수까지의 거리가 32km, 호수 둘레 길이 4km, 그 외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를 모두 더했더니 그 정도 길이가 나왔다. 자전거여행치고는 짧은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를 타고 되돌아올 수도 있다. 이날 여행은 길 한 번 잘못 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맘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이제 백운호수를 떠나 인덕원에서 지하철을 타기만 하면 여행을 무사히 마칠 터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학의천 상류에서 뜻밖의 사고와 마주쳤다.

해빙기 빙판 위, 놀이가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백운산과 바라산 등에서 흘러내린 물이 백운호수를 거쳐 학의천으로 흘러든다. 그래서 그런지 학의천은 수량이 꽤 풍부한 편이다. 천변에 '수심이 깊다'는 주의 표지판이 서 있다. 처음엔 그 표지판을 무심하게 보아 넘겼다. 학의천을 지나갈 때만 해도 그저 물이 맑은 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볼 게 아니었다.

익사 직전의 아이를 만난 곳. 육교 밑 오른쪽 빙판 위에서 놀던 아이가 물에 빠졌다. 백운호수 올라가던 길에 찍은 사진.
 익사 직전의 아이를 만난 곳. 육교 밑 오른쪽 빙판 위에서 놀던 아이가 물에 빠졌다. 백운호수 올라가던 길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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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고는 천변 남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높게 솟아 태양을 완전히 가린 곳에서 발생했다. 그곳 하천 그늘이 짙은 곳에 유난히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었다. 동네 아이들로 보이는 초등학생들 여럿이 그 얼음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내가 그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는 힘에 겨워하며 얼음을 붙잡으려 애를 쓰고 있고, 다른 아이들 중 일부는 그 아이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깔깔대고 있었다. 그 아이가 물에 한 번 잠겼다 나왔을 때, 산책을 나온 한 남자가 빙판 위로 뛰어들었다. 아이는 점점 더 물속으로 잠겨들고 남자는 그 앞으로 좀더 바싹 다가가야 했다. 자칫하면 아이와 남자 모두 물에 빠질 판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와 또 다른 남자가 엉거주춤 빙판 위로 올라섰다. 여차하면 인간 사슬이라도 엮어서 물에 빠진 아이와 남자를 구해 낼 생각이었다.

남자는 다행히 물에 빠지지 않았다. 아이는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데 그 아이가 땅 위로 올라서는 걸 보고 얼음판 위를 걸어 나오던 나와 또 다른 남자가 물에 빠졌다. 내가 빠진 곳은 다행히 물이 허리까지만 잠겼다. 하지만 그 순간, 어찌나 놀랐던지 나도 모르는 새 얼음바닥을 손으로 후려친 모양이다. 물을 뚝뚝 흘리며 땅 위로 올라서 보니 손에서 피가 흘렀다. 상처는 작은데 피가 멈추질 않았다. 간신히 지혈을 하고 나서, 젖은 몸으로 인덕원 사거리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더니 온몸이 후들거렸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몸살을 앓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이를 구한 남자는 매우 침착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빙판 위에 올라서서는 몸을 납작 엎드려 무게 중심을 여러 군데로 분산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는 빙판 위에 곧추 서 있다 채 1분을 견디지 못하고 물에 빠졌다. 자칫 잘못했으면 나까지 구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될 뻔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빙판 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주 양수리에 갔을 때도 그렇고 백운호수에서도 빙판을 보면 꼭 그 위에 올라서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날 사고도 날이 따뜻해지는 한낮에 아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다 일어났다.

이제 점점 더 날이 따뜻해질 텐데, 아이들을 말릴 방법이 없으니 어른들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주위에 물 깊은 하천이 있거나, 설을 맞아 오래간만에 놀러간 고향집 근처에 얼음 잘 어는 곳이 있거든 꼭 한 번 주의를 주는 것이 좋겠다.



태그:#백운호수, #안양천, #학의천, #자전거여행,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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