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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예쁜 상자 안엔 사탕을 가득 넣어 주었고 오른쪽 사진은 예술(?)적인 아이들의 필기 내용과 필자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써준 편지
▲ 아이들이 준 선물 왼쪽의 예쁜 상자 안엔 사탕을 가득 넣어 주었고 오른쪽 사진은 예술(?)적인 아이들의 필기 내용과 필자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써준 편지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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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범상치 않은 아이들과의 만남

한 학년을 마치고 종업식 하는 날, 동료들이 같이 마지막 점심을 먹자며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떨어지질 않는다. 교무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예쁜 상자, 깔끔하게 코팅된 롤링 페이퍼 2장, 자그만하게 정성을 가득 들여 써넣은 편지책까지 손에 들려준다. 예쁜 상자 안엔 아이들 마음만큼이나 고운 사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운동장이 떠나갈 정도로 사랑한다고 외치는 소리에 민망할 정도였다.

유별나게 이번 아이들은 잘 따라주었다. 담임과는 거리가 있는게 보통인데 이번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옮기는 학교로 자기들도 따라가고 싶단다. 기특한 것들! 아부까지? 세상 사는 방법을 너무 잘 아는 거겠지.

지난 1년을 떠올렸다. 얘네들을 첫날부터 달랐다. 입학식날  O.T(1박2일)를 떠났는데 그날 10여명 정도나 들어갈 만한 방 하나에 반 전체(39명)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소개를 했단다. 보통은 자기 방 아이들끼리만 소개하는 정도인데. 첫날부터 심상치 않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통 3, 4월은 탐색전을 펴느라 교실이 조용하건만 우리반 아이들은 4월이 오기도 전에 소문이 자자했다. 수업 끝내고 나오는 쌤들마다 한 마디. "그 반은 너무 시끄러워" "아이들이 드세"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담임으로서 미안하다고 얘기할 밖에. 그 후론 복도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하면 제일 먼저 나가보곤 했다. 우리반 아이들이 아닌지 확인했다.

"학교규율은 스스로 지키는 거다. 머리 길이나 교복치마 줄이기 등은 규율에 맞춰서 해라. 교칙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로만 해라. 무모하게 했다가 학생부의 지적을 받거나 소환되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

한마디 덧붙였다.

"걸렸을 땐 절대로 10반이라고 하지 말아라. 담임이 OOO이라고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

이 정도로만 하고 잔소리로 들릴만한 말들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학과 선생님들께 지적을 받았을 땐 바로 용서를 구하라고 했다. 지각을 했을 때도 체크는 하지만 지각비를 물리거나 벌을 세우는 등의 벌칙은 가하지 않았다. 단지 자습시간이 끝날 때까지만 복도에 서 있다가 아침 자습 시간이 끝나면 들어가도록 했다.

책임감과 신뢰로 간격을 좁히다

부모에게 사후지도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전화걸어서 아이의 잘못을 일일이 알리지 않았다. 고등학생 정도면 자신의 행위에는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하면 아이들과의 일은 학교안에서 끝내고자 했다.

착한 일을 했거나, 잘한 일이 있을 때는 안아주거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처음엔 어설프게 했으나 아이들은 의외로 좋아했다. 멀리서 달려와 먼저 안기기까지 했다. 한 아이만 포옹을 해주면 옆에 있는 아이가 질투하며 매말리기까지 했다.

고등학생들이 어른의 포옹을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반 수업태도가 좋아졌단 소리를 들을 땐 행복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이 10여명 이상은 되는데 우리반 아이들은 훨씬 적었다. 지쳐서 집중이 떨어질 만한 7교시에도 초롱초롱했다. 대답도 잘했다. 못하는 아이들도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종종 틀린 대답도 있었지만. 사랑스러웠다. 스킨십은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그만이었다.

학년 말에 갑자기 지각이 잦은 아이가 있었다. 물어본즉 집안이 어려워지자 만사가 귀찮아지고 의욕이 없어진거였다. 불러서 다독거렸다.

"경제적인 거야 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공부는 해야잖니? 그래야 부모님도 힘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실 수 있지 않겠니? 지금 네가 나가서 돈 벌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다행히 그후론 잘 나왔다.

10년 후에도 기억되는 쌤으로 남고 싶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 작지만 여러 개의 추억이 모여서 아이들에게 하나의 그리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토요일날 모둠 짜서 요리경연한 거, 교실 뒷벽에 낙서했다가 다른 쌤한테 엄청 혼나고 페인트를 칠했는데, 흰벽이 베이지색의 벽으로 변한 거, 내게 케이크를 선물하곤 자기들끼리 토핑을 다 긁어먹은 것 등 공부에 찌들려 있었지만 나름 추억할 것들이 제법 있었다. 1년 동안 찍었던 사진을 모아서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요즘은 학급문집보단 동영상이 더 효과가 컸다. 방학 동안 CD로 구워서 모두에게 1장씩 나눠 주었다. 인기가 좋았다. 별 거 아닌 일에 아이들이 기뻐해주니 덩달아 기뻤다. 이번 아이들은 다른 학교에 가도 오랬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웃음이 예뻐 보는 사람 맘까지 환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Y, J, 장난기가 많고 적극적이며 축제때 우리반을 빛낸 활달하고 유쾌한 악동(?) 12인방을 비롯해 38명의 아이들이 하나의 하모니를 이뤘다.

너희들은 어디에 있어도 보석처럼 반짝 거릴 거야

지나고 보니 내가 사랑을 줬다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들한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아이들을 기다려줬을 뿐인데. 규칙을 지킬 때까지 기다려주고, 답답하다고 먼저 다그치지 않은 건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일 같다. 아이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 주고자 한 것이 서로 통한 것 같다. 세대차를 극복했다고나 할까.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준 것이 오히려 아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 계기가 된 것같다.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려 했고 아이들의 장점을 먼저 보고자 했고 단점을 들추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을 아이들이 느낀 것이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행동발달 상황도 아이들에게 기록되고 싶은 내용을 적어보라 했더니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장점을 찾아 썼다.

내가 아이들의 장점을 찾기 위해 몇날 며칠 고민한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물론 자신의 장점을 좀 더 부풀린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록된 내용대로 살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그대로 수용해주었다. 진로지도 사항을 기록할 때도 본인의 장점과 노력이 필요한 점을 찾아 고민하는 모습은 진지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내게는 일을 수월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개콘같은 요즘 세상에 우리반 아이들은 성적이 낮아도 기죽지 않고 학교생활을 즐거워했다. 이 아이들이 잘 자라서 10년 후에는 어느 위치에서든 자기의 고유한 빛을 발산할 것이라고 믿어본다.


태그:#학년말,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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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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