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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골위 45도방향으로 형성된 계곡을 따라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계단이 있다.
▲ 물골 전경(원표시) 물골위 45도방향으로 형성된 계곡을 따라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계단이 있다.
ⓒ 김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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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에서 어업인숙소까지 연결되는 길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 물골위치도 물골에서 어업인숙소까지 연결되는 길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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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 샘이 있다. 독도에 생명을 불어넣은 샘, 유일하게 민물을 구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물골이다. 물골은 가까이는 울릉도에서 멀리는 강원도에서 찾아온 어민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했다.

1954년에 독도의용수비대가 첫 주둔지로 삼았고, 1955년부터 상주경비를 시작한 독도경비대원에게 생명수를 제공했다. 1963년에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1987년 사망)씨가 터를 잡은 곳도 물골이었다.독도에 담수화시설이 설치된 이후 샘으로서 기능은 하지 않고 있다.

물골의 역사는 독도침략의 역사이다. 독도를 지켜낸 민초들의 역사이다. 그러나 물골이 겪어낸 오랜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오히려 수백년의 역사가 50여년의 짧은 역사로 둔갑되고 있다.

독도에서 민물을 구할 수 있다는 기록은 일본 군함 신고호(新高號)가 러일전쟁 중인 1904년 9월 25일에 작성한 행동일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동일지는 독도의 한자표기인 '獨島'가 기록된 최초의 문헌이기도 하다. 신고호는 일본 해군이 동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에 망루를 세우기 위해 파견하였다.

'獨島'가 기록된 최초의 문헌으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한인(韓人)이 그를 獨島라 쓰며” “서도의 서쪽 C지점에도 또한 맑은 물이 있다”
▲ 신고호 행동일지 '獨島'가 기록된 최초의 문헌으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한인(韓人)이 그를 獨島라 쓰며” “서도의 서쪽 C지점에도 또한 맑은 물이 있다”
ⓒ 김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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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2월 22일,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편입하였고, 어업가 나카이요오사부로는 독도에서 강치(바다사자)잡이를 하며 물골을 이용하였다. 1910년에 강제로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었고,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인에 의해 이용될 수밖에 없었다.

해방 그리고 625전쟁으로 국내정세는 어수선 했고, 일본은 독도에 영토표식을 설치하고 한국 어부들을 조사하는 등 독도침략을 계속했다. 1953년 6월에 일본 정부는 독도에 무단 상륙하여 나무표식을 설치하고, 일본 정부의 허락없이 출입할 수 없다는 경고판을 세웠다.

울릉경찰서는 독도순라반을 파견하여 철거하였다.
▲ 1953년 6월에 일본이 세운 나무표식(출처 : '오키의 100년' 사진집) 울릉경찰서는 독도순라반을 파견하여 철거하였다.
ⓒ Kyodoshuppan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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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4월, 울릉도 주민들이 일본의 독도침탈을 방어하기 위한 '독도자위대'를 결성하면서 물골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독도의용수비대의 시작이다. 첫 주둔지는 물골이었다. 절해고도인 독도에 비바람을 피하고 식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물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골이 해안가에 있어서 파도를 피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북쪽일부로 시야가 제한되어 일본 어선과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관측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물골에서 수일을 지낸 독도의용수비대는 동도 정상으로 주둔지를 이동하였고, 식수공급원으로 계속 이용하였다.

물골에서 관측이 가능한 지역은 북쪽 일부에 불과하다.
▲ 물골에서 관측 범위 물골에서 관측이 가능한 지역은 북쪽 일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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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2월 31일, 독도의용수비대원 9명이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원으로 특채되면서 독도의용수비대는 해산되었고, 경비임무는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에 이관되었다.

1963년, 물골에 민간인이 살기 시작했다.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씨가 주인공이다(최종덕씨 가족은 1977년에 독도 주민으로 등록을 했다). 최종덕씨는 물골에 터를 잡고 주거시설과 샘솟는 물을 저장하기 위한 급수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울릉도에서 자재를 실어 와야 하는 어려움으로 공사는 원만치 못했고, 1966년 10월부터 경상북도가 지원하여 11월 22일에 '독도어민보호시설'이 준공되었다.

계단을 통해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방으로 쓰였던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독도어민보호시설 준공 표지 계단을 통해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방으로 쓰였던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 김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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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어민보호시설기념
1. 시 설 물 : 어민보호소 6평,  선치장 7m, 급수조 1개소 2. 총공사비 : 1,200,000원
3. 공사기간 : 1966.10.5 ~ 1966.11.22

이 시설물은 독도 근해에 출어하는 대한민국 어민의 안전보호와 독도 수산자원 개발을 위하여 시설함

경상북도지사  김 인

그러나 1967년 8월 30일자 서울신문에 물골 발견과 급수조 공사를 홍순칠(1986년 사망)씨가 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눈길을 끈다. 기사에 따르면 홍순칠씨가 수년간의 탐색 끝에 1965년 11월 23일에 발견, TNT로 굴바닥을 터뜨려 물이 솟게 하고 급수장 시설을 설치했다고 한다.

1967년 8월 30일, 서울신문
"식수 한 방울이 피 한방울에 비겨왔던 독도에 샘이 생겼다. .....홍순칠씨가 수년간의 탐색 끝에 발견, 청동같은 바위틈에서 샘솟는 우물로 개발한 것이다. .....이 샘이 발견된 것은 65년 11월 23일쯤 그해 여름 전국적인 한발때에도 굴속에 물기가 있는 것을 발견한 홍씨(홍순칠)가 시멘트등으로 1개월 동안 시험한 끝에 TNT로 굴바닥을 터뜨려 물이 솟게 된것이다. 홍씨는 지난해 11월 경북지사에게 진정, 이 샘가에 아담한 「어민의 집」까지 세웠다. ....."

그러나 최종덕씨의 딸 최경숙(경기 광주)씨는 "울릉도 주민치고 물골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가 독도에 갈 수 있었던 것도 물골에 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3년에 아버지가 독도에 살기 시작하면서 주거시설과 급수시설공사를 했다"며 홍순칠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홍순칠씨의 주장은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 1950년대 독도경비대 근무 경찰관, 울릉주민의 증언과 관련기록에 의해 허구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은 "1966년 9월 서도(西島) 몰골에 급수장 시설을 설치"라는 홍순칠씨의 주장을 <사이버독도역사관/홍순칠>편에 그대로 재인용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홍성근 연구원은 홍순칠씨의 수기와 관련 자료를 참고하였다고 밝혔다.

동도의 오른쪽 구조물이 접안시설이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망양대, 성화대, 독도우체통, 독도등대를 만날 수 있다.
▲ 서도에서 바라본 동도 동도의 오른쪽 구조물이 접안시설이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망양대, 성화대, 독도우체통, 독도등대를 만날 수 있다.
ⓒ 김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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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 역사는 현재 독도에 있는 독도경비대 막사, 헬기장, 접안시설, 독도등대, 어업인숙소 등 어떤 시설물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외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독도와 같은 영토문제에서 주권국의 영유의사와 자국민의 자유로운 왕래, 거주 그리고 영유권 행사를 위한 입법·행정·사법적인 조치는 국제사법법원(ICJ),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등 에서 결정적 증거로 원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골은 식수공급원, 어민보호소라는 의미를 떠나 역사적, 국제법적 차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950년대부터 독도의 주권국 대한민국에 의해 관리 운용되었던 물골의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물골의 물은 먹을 수 있을까?
독도수호대는 2004년에 물골 원수를 채취하여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에 수질검사를 의뢰하였다. 최초로 실시된 수질검사 결과 먹는샘물 기준 46개 항목가운데 6개 항목이 기준치를 초과하였다. 2차(2008년)검사에서는 4항목이 기준치를 초과하였다. 기준치 초과는 해수유입과 동식물 부패 등 외부요인이었으며, 오염원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재 울릉군은 급수조에 뚜껑을 설치하고 갈매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망을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프레시안 키워드가이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점구 기자는 독도수호대 대표와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사무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독도, #물골, #홍순칠, #독도수호대, #김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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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수호대 대표, 문화유산 해설 기획과 문화유산 보존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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