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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4대강 사업'이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한반도 대운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일의 운하(運河)를 보고 하릴없이 반했을지 모르지만, 이 독일의 운하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웅크리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일부러 문제점을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독일에서 일하는 건축학자 임혜지 박사가 전해주는 말들은 본인의 말마따나 '이 땅에서 길이 살아갈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게 될 것임을 그는 토로(吐露)한다. 우리는 이를 잊고 있거나, 이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벌이는 현란한 홍보잔치에 매몰(埋沒)돼 이 사태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

 

대운하를 접고 4대강을 정비한다는 사업의 규모가 예산 등의 면면을 볼 때 대운하의 그것과 흡사하거나 더 크다는 사실, 운하를 하지 않겠다면 굳이 엄청난 돈을 들여 하지 않아도 될 사업,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실은 패륜적(悖倫的)인 속임수다. 강끼리 연결한다는 부분만 뺀 '대운하'다. 꼼수다.

 

이런 허튼 수에 속는 척, 바쁜 척 하며 방관하는 '알 만한 사람들'의 모습은 이 땅의 주인이 될 후손들의 얼굴까지 생각한다면 부끄럽다. 알면서도 권력의 곁불 쬐기에 탐닉하여 박수갈채를 날리는 이들은 아예 범죄적(犯罪的)이다. 임 박사는 이런 점을 차분히, 부드럽게 가르쳐준다. 그러나 절실하여 아프기까지 하다.

 

임 박사의 글(강연원고) 전문은 다음 웹주소(www.yejiseowon.com/41)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열정과 선량한 걱정이 스며 있다는 점 말고도, 그 글이 지닌 가치는 독일 현지의 사정을 꿰뚫고 있다는데 있다. 부럽기까지 했던 효율적인 물류와 관광자원으로서의 독일 운하의 '그늘진 오늘'과 과거의 논란을 가감(加減)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걱정을 거둘 수 없는 이유다.

 

경제성이 확인되지 않는 사업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대운하와 관련한 '경제성 논의'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경제성이 없다면 대운하가 아닌 환경과 관광의 이득을 겨냥하는 4대강 정비를 하겠다는데, 이것이 앞서 말한 대로, 또 임 박사가 통찰(洞察)하는 바와 같이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대운하다. 아니라고 할 사람은 토론을 하자. 이것은 상식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멀쩡한 척추(脊椎)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다. 몇몇에게 이득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이득을 위한 희생이 워낙 클 것임을 생각 가진 이들 모두가 황급히 경고한다. 그래도 모르는 채 이 정부는 흔전만전 강바닥에 고래심줄같은 국민의 혈세(血稅)를 쏟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배가 다니게 하는 공사가 있다. 수로 운송 즉 수운(水運)이 경제성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되니 환경과 관광의 이득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강에 배를 띄우는데 어떻게 환경이 좋아지랴? 또 관광객이 외국에까지 몰려온다고?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제 정신인가? 16개의 수중 보(洑)를 막는 것이 중점이라고 한다. 환경장관이 나서서 보 막는 것의 공덕(功德)을 자랑한다. 우리 국민은 바보 천치인가?

 

한강 등 우리나라 강은 가뭄 때인 갈수기(渴水期)와 홍수철의 흐르는 물의 양(量)이 차이가 크다. 그래서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수중보를 세워야 한다. 배가 보(洑)를 지나기 위해서는 보의 한 편에 갑문(閘門)을 세워야 한다.

 

갑문은 쉽게 말해 욕조(浴槽)다. 그 안에 배를 넣은 다음, 보내고자 하는 쪽의 수면(水面)에 맞춰 물을 넣거나 빼고 배를 통과시키는 것이다.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이집트 나일강의 유람선 관광을 다녀오신 문들은 이 과정을 잘 안다.

 

관광도시인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나일강 300여 km를 유람선으로 여행하는 3박4일 또는 4박5일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그 도중에 수중보와 갑문이 있다. 아스완 상류는 거대한 아스완댐이 있어 수로(水路)는 아스완에서 일단 막힌다. 갑문 통과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30분 남짓인데 일방통행인지라 상하행 대기하는 배들이 줄을 서면 보통 5~8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관계자 말을 들으니 사소한 고장이라도 나면 하루 이틀 기다리는 것도 예사라고 한다.

수위(水位)의 차(差)가 2~3m에 불과한 나일강의 수중보를 지나는 것이 이럴진대, 이 수위 차의 2~3배는 너끈히 될 우리 강에 설치될 보의 갑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까? 올 겨울에 겪었던 것처럼 강이 얼면 이런 상황은 또 어떻게 전개될까?

 

이런 갑문이 16개가 설치되어야 한다고? 운하를 이용한 물류? 수상 관광? 환경 개선? 과연 책임 있는 이들의 사고(思考)의 틀을 거친 것인지 묻고 싶다. '되게 하라'는 구(舊)시대적 발상(發想)에 어거지로 맞춘 '4대강 정비'와 그 뒤에 도사린 '한반도 대운하'가 국토의 척추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도 모두 '내 책임은 아니다'며 외면할 것인가?

 

임 박사는 이 대통령이 가진 맹목적인 독일운하 신화(神話)와 그에 따른 잘못된 정책을 비판한다. 그의 논리는 상식(常識)이고, 독일 사람들이 내내 논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되돌리는 과정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운하를 만들기 위해 정비한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재자연화(再自然化) 사업을 거친 강이 정비 이후 거듭됐던 홍수를 낙낙히 막아 줬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원래 범람(氾濫)하던 지형은 더 잘 범람하도록 해 주어야 하고, 구불어진 곳은 구불어진 (자연의) 뜻을 살펴 그 뜻이 더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동양 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의미는 이런 분야에서 새롭게 해석되어도 훌륭하다. 덕(德)인 것이다.

 

이 대통령이 보고 반한, 운하가 있는 독일의 강처럼 우리 강이 사철 비슷한 수량(水量)이 흐르는 것이 아님은 다 자연의 이치다. 수 억 년 스스로(自) 그러함(然)의 힘이 빚은 우주의 법칙인 것이다. 왜 섭리(攝理)를 등지고 재앙(災殃)을 부르려 하는가? 후손들이 겪을 일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라인강과 한강이 같지 않은 것이 틀린(wrong) 것인가, 다른(different) 것인가? 임 박사는 이렇게 썼다.

 

뮌헨에 사는 분들은 근래에 재자연화공사를 마친 이자강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실 것입니다. 둑을 헐고 범람지와 습지를 다시 재생시켜 150년 전의 모습을 되찾은 이자강변은 주민의 사랑을 받는 휴식공간이기도 하지만 완공되자마자 들이닥친 역사적인 대홍수를 훌륭하게 막아냈습니다.

 

이런 공사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기는 하지만 홍수와 지하수 감소의 피해를 돈으로 환산한 액수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독일에선 자연으로의 복구를 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홍수와 지하수 고갈의 원인이 과거에 강바닥을 파고 둑을 쌓은 공사에 있다는 것을 독일에선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칩니다.

 

독일에서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이러한 '문명(文明)의 겸허(謙虛)한 반성'를 인내천(人乃天) 곧 사람이 하늘이라는 어진 진리와 함께 살아온 우리가 배워야 하는 상황의 반전(反轉)이 아이러니컬하다.

 

'기왕지사 여기까지 와버렸는데 그냥 가자'는 식의 논리를 펴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는 '독일 사람들이 백년이나 걸려 꼼꼼히 만들고도 지금 반성하고 되돌리고 있는 상황을 바로 보라'고 한다. 지금 바로 잡아도 싸게 먹힌다는 것이다. 2년 안에 4대강 사업을 완성하겠다는 호언(豪言)과 장담(壯談)은 차라리 공포다. '이 시간에도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을 중장비를 생각하면 몸에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한 그는 이렇게 글(강연)의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4대강 사업을 지지하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라인강 같은 후유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논증(論證)을 먼저 마친 후에 공사를 계속하라고 정부에 꼭 건의해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어느 나라에 살고 있건 그 정도의 수고를 바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독일 사회에서 '대운하와 4대강' 바로보기 운동을 펼치는 임 박사에게 필자는 빚을 많이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까놓고 말해 부끄럽다. 힘없는 서생(書生)의 생각을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더 부끄러울 것 같다. 길이 후손들에게 낯이 안 설 것 같다. 이러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가? 부끄러움과 예의를 다시 찾고 싶다. 귀하의 생각은 어떠신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과 한자교육원 예지서원(www.yejiseo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시민사회신문 논설주간으로, 한자교육원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태그:#한반도대운하, #4대강개발, #임혜지, #라인강,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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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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