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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건만, 문화재에 목숨 걸고 돌아다니는 나.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다니는 것이냐고,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마다 괴롭다. 난 그럴 때마다 같은 질문을 상대방에게 해댄다.

 

"그럼 네가 할래?"

"내가 어떻게 해."

"그럼 내가 하는 것이라도 놓아두면 안 될까?"

"그래도 시간 없애고 힘든데."

"그건 나의 일이지, 나라도 해야지."

 

참 자조적인 이야기다. 왜 그렇게 문화재를 보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문화재를 찾아서 전국을 헤매고 다니는 것일까? 내가 생각을 해보아도 헛웃음 밖에 안 나온다

 

어린아이의 질문이 문화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오래 전 이야기다. 대전에서 방송생활을 하면서 거의 날마다 충남과 대전지역을 돌아다녔다. 10년 이상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우리 소리, 우리 굿, 우리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그래도 늘 부족한 것이, 한 사람이 문화에 대한 전반을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수박 겉핥기'야 되겠지만,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런데 하루는 소리를 채록하러 다니던 중에 한 아이를 만났다.

 

그곳이 아마 신원사였을 것이다. 알다시피 신원사에는 충청남도의 절에서 유일하게 조선왕조가 산신제를 올리는 '중악단'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중악단을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는데, 아이 하나가 질문을 한다.

 

"아저씨 중악단이 머여요?"

"중악단, 그거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지."

"절에서 왜 산신제를 지내요?"

"그것은 계룡산이 명산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산신께 제사를 드린다고 보아야지."

"그럼 계룡산만 명산인가요?"

 

여기서 말이 막혀버렸다. 신원사에는 중악단이 있지만, 사실 상악단은 묘향산에 있고, 하학단은 지리산에 있다. 그런데 당시는 이런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 여기서 대답이 그칠 수밖에. 내가 생각해도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어떻게 피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며칠 동안을, 그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는 했다.

  

 

다시 시작한 문화공부

 

그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문화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끝이 없는 것이 바로 우리 문화에 대한 공부인가 보다. 일 년이면 거의 200일 이상을 현장을 돌아다닌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거의 초보자에 가깝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그 수많은 문화재와 수많은 종류의 문화를 다 알 수가 없다. 또한 그럴만한 자금의 수요도 되지 않는다. 몇 번이고 포기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 또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는 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조금은 눈을 떠가다가 보니, 우리 문화의 현실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지정이 되었는데도 돌보지를 않아 볼썽사납게 변해버린 문화재. 문화재 주변에 가득한 온갖 잡쓰레기. 문화재 주변에 매어 놓은 가축, 보물 안에 가득한 담배꽁초. 이런 것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파온다. 결국 내가 다닐 수 있을 만큼은 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잘못을 시정하는 것을 보며

 

숱하게 돌아다녔다. 아마 대한민국의 땅을 수십 번도 더 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잘못된 것이 보이면, 바로 관계기관에 전화를 해서 시정을 요구하거나, 기사로 써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 다시 그곳을 찾아갔을 때, 잘못된 것을 찬찬히 살펴본다.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히는 것들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리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우리 문화가 온전히 보존이 될 수 있는 날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한 아이가 결국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지금도 문화재를 찾아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어린 아이들이 보이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저 중에 혹 나중에 나와 같은 아이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다. 괜한 욕심이긴 하지만.


태그:#문화재, #답사, #우리문화, #사명감,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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