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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을 지나 이순에 이르게 되면 누구나 추억의 뒤안길에서 서성이게 된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서는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다가가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돌아다보면 살아온 뒤안길에 발길이 머물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리움에 젖어서 반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움. 살아온 날들이 쌓여지면 그리움에 매달리게 된다.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정감이 있고 감미롭다.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가슴에서 배어나는 은은함에 저절로 눈이 감겨진다. 그리움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시집이 있다.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는 고향을 되살리고 청보리의 정감을 되살려주는 고운 시들로 엮어져 있는 시집이다.

 

 

<새만금씨네 나문쟁이>. 항구도시 군산에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옥중 교감 선생님의 두 번째 시집이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일을 자랑으로 알고 평생을 하루같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시인이다. 2009년 12월22일 도서출판 솔 디자인에서 발행된 시집으로 영혼을 울리는 시어들로 가득 차 있다. 열린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선생님의 감성이 독자들에게 진한 향으로 전해지고 잇다.

 

시집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 1부는 청보리라는 소주제로 16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고 제 2부는 흑두기라는 소주제로 23편의 시로 묶어져 있다. 제 3부는 새만금씨네 나문쟁이 라는 소주제로 24편의 시로, 제 4부는 천진이란 소주제로 23편 등 총 76편이 수록되어 있다. 바닷물에서 금방 잡아 올린 것 같은 신선한 시어들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인의 시에는 우리의 피 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민족혼이 담겨져 있다. "여왕의 수모에서 태어난 악몽 타고 나타난 상"(첨성대 6 의 부분, 21 쪽)에는 선덕여왕의 지혜가 배어 있다. 선덕여왕이 누구인가? 우리 민족 최초의 여왕으로서 삼국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신라의 왕이다. 신라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전략)이불 뒤집어 덮다/벌떡 되돌아보니/어젯밤 것은 새가 날지 않았어?('봄잠'의 부분, 41 쪽)

 

하염없이 걸었던 고향 집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시를 음미하게 되면 잊어버리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준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지고 하얀 이 드러내놓고 함께 뛰놀던 다정한 단짝들의 얼굴을 생각나게 한다. 고향집 뒤로 흐르던 냇가에서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이 새로워진다. 사진첩에서 잠자고 있던 영상들이 생명을 얻어 가슴을 뭉클하게 해준다.

 

(전략)해수를 삭인 육질로/거듭나기를 바꿔 대니/달리/소주 마시는 스승/탁주 마시는 제자/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고. ('연꽃과 홍탁 인연하기'의 부분, 51 쪽)

 

시인의 스승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홍탁이 무엇인가? 삭인 홍어를 말한다. 스승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홍탁은 세월을 통해 삭혀야 제 맛이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금방 끓어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즐거움이 아니라 푹 삶게 되면 우러나오는 진국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전략)쫓다/몰다/잉어 깃발 흔드는 수초/그 사람 꼬리 훔치는/물거품.('연못' 부분, 79쪽)

 

보고 싶다고 하여 모두 다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어찌 보면 삶이란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살아갈 수가 없기에 인생은 살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쫓아가기도 하고 몰아붙이기도 하면서 세월을 통해 삶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관조가 독자들의 영혼에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전략)태반 같은/빈 곳 채우고자/차 있는 모든 것 버린다.('태반' 부분, 131쪽)

 

우리의 근원은 태반이다. 누구나 원천적으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근원이요, 뿌리요, 샘물이다. 시인은 그 것을 간파하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채워가는 것은 의미한다.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 비우는 것은 어머니에게로 회귀하는 것을 말한다. 삶에 지친 영혼을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안락을 얻을 수 있다.

 

시인의 시어에는 그리움이 방울진다. 진한 점성으로 뚝뚝 떨어지는 향에 취할 수 있다. 추억의 뒤안길을 산책하면서 걸어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움에 젖어 있노라면 영혼의 울림에 공감하게 된다. 일상에 지친 독자들의 가슴에 편안한 쉼터가 되어준다.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을 포근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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