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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그러니까 12월의 어느 늦은 퇴근길의 일이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영등포역으로 향하던 내 앞을 가로막은 건 '경찰' 명찰을 단 앳된 얼굴 두 명이었다.

 

그 중 옷깃을 세우고 어깨를 잔뜩 움츠린 한 얼굴이 다짜고짜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예매한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종종 걸음 치던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부터 신분증 제시하고 이름과 소속을 밝혀라'라고. 그러자 그는 '경찰 제복 입은 걸 보면 모르냐. 제복 입은 경찰은 신분증이나 소속 안 밝혀도 된다'라고 주장했다. 풋!

 

나는 가볍게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신분증 제시하고 이름과 소속을 밝혀라. 아니라면 갈 길 바쁜 사람이니 시비 걸지 마라'.

 

앳된 얼굴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이름과 소속을 밝히는 대신 '그럼 그냥 가시라'고 했다. 이런 빵꾸똥꾸!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당해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하며, 동행의 경우에는 동행 장소를 밝혀야 한다"라고 돼 있다. 제복 입은 경찰이라고 해서 그걸 생략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불심검문'이라는 것도 바삐 제 갈 길 가는 아무 시민이나 붙잡고 장난치듯 시비를 붙는 것이 아니다.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

 

송경동의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을 읽으면서 불현듯 가장 먼저 그날의 불심검문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내가 기억하는 송경동이라는 이름은 평택 대추리와 용산의 '바로가기' 아이콘이다.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며 "그 길바닥의 시들이" 다름 아닌 "사랑"('가두의 시')이라며 시를 울부짖던 사내가 바로 송경동이다.

 

가장 절박하고 처절한 삶의 기록이 송경동의 시가 재생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단아하게 정제하고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낭만이 그의 시에는 없다. 때문에 그의 시는 시의 생명은 비유와 상징이라는 오래된 문법으로는 읽을 수 없다. 송경동에게 세계는 "모든 은유와 상징을 벗어난 말"이며 "기존의 세계에 포섭된 의미 이전을 지시하는 말"(해설)이기 때문이다.

 

"나이 먹으며 알게 된 것은 / 내가 높은 꿈보다 낮은 똥을 안고 살아온 시간이 / 더 많았다는 것이다 ……중략 …… 이 똥통 같은 세상에서 / 당신이 달콤한 꿈을 꾸는 동안 / 나는 검게 그을린 똥을 구웠다고 할 것이다" ('똥통 같은 세상' 일부)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중략…… 허가 받을 수 없는 인생 // 그런 내 삶처럼 /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 이 세상 전체가 /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무허가' 일부)

 

"높은 꿈보다 낮은 똥을 안고 살아온 시간이 / 더 많았"던 '똥통 같은 세상'에서도 시인은 공존,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한다. 모두가 쫓겨나서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삶도 시도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 이 세상 전체가 / 무허가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그래서 낭만이 아닌 증언이자 절규다.

 

시인의 증언은 이어진다. 끌려간 경찰서에서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 놓고 "문자메시지 내용을 가져온다고"하고 "몇 년치 이메일 기록"을 조사하고 "함께 잡힌 촛불 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 통장 압수수색도 했"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늘어놓는다.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지난 시대의 그림자를 밟고 있을 뿐"('미행자')인 유령 같은 시대를 사는 시인의 절규는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 이게 뭐냐"는 울부짖음으로 이어진다.

 

사랑이라니. 속속들이 감시하고 확인하는 권력시스템 앞에서 시인은 낯설기 짝이 없는 '사랑'이라는 말을 섬긴다. 이는 세상과 삶에 대한 사랑 그 세상과 삶의 주인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말이다. 시인은 이미 사랑으로 충만한데 세상은 아직 사랑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도 거리에서 세상을 향해 구애중인 것인지도 모른다.

 

"처 아버님은 빨치산이었다"로 시작해서 "이젠 장인어른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로 끝나는 시('돈')에서는 '처 아버님'이 '장인어른'으로 사랑의 이름표를 바꿔달고 "벽제 용미리 공동묘지에 / 봉분없이 깨끗이 묻"혀 영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화해의 모습 역시 사랑의 다른 이름인 까닭에 쓸쓸하고도 아름답다.

 

문득 주름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중략……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주름들이

내 삶의 나이테였다 하나하나의 굴곡이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 넓게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들이었다 주름이

참 곱다라는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주름' 일부)

 

시인이기보다는 전사나 투사의 이미지가 먼저 그려지는 시인이지만 그의 속내는 결국 사랑과 성찰임을 알게 하는 시다.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넓게 /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라며 심지어 그것이"참 곱다"는 깨달음과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이라고 혼자 성찰하는 시인의 모습은 슬픈 시대의 자화상들과 거리에서 함께 살았던 시인이 일군 따뜻한 사랑의 감수성일 터이다.

 

송경동의 시는 앞만 보고 직진하는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 불쑥 들이미는 불심검문 같다. 물론 불쾌하지도 않고 불법적이지도 않다. 날 서린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고 시인이 건네는 불심검문에 또박또박 대답해 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송경동 시인은 1967년 전라남도 벌교에서 태어났고, 2001년 계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첫시집 <꿀잠>(2006. 삶이 보이는 창)을 펴낸 바 있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송경동 지음, 창비(2009)


태그:#송경동, #창비, #용산, #대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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