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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상점들 간의 가격할인 경쟁이 치열하다. 그중에서도 삼겹살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10원이라도 더 싸게 가격파괴를 하다 보니 삼겹살(100g)이 라면보다 더 싸다고까지 한다.

일주일 전 가격경쟁을 촉발한 인근의 대형상점에 갔었다. 정육 매점에는 대여섯 명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미국 쇠고기 처음 판매하던 날을 보는 것 같았다. 100g에 860원, 1인당 2Kg 한정이라는 팻말이 보였지만 부부로 보이는 고객은 각자 2kg를 외쳤다. 맞은편 정육 매점에는 평소가격(100g 1600원대)대로 팔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할인매점은 직영으로 보였고, 맞은편 두 곳의 정육 매점은 입주업체로 보였다. 평소에는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호객을 하던 판매원은 매대에 놓인 고기를 쳐다보고 있어도 말없이 서 있거나 마늘 먹인 돼지라며 차별화를 강조하려고 하지만 두 배 차이의 가격에 판매 의욕을 잃어 버린 것처럼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매장을 한 바퀴 돌면서 필요한 물품을 카트에 담고 다시 정육 매점으로 돌아왔을 때 삼겹살은 준비된 수량이 품절되었다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개장한 지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항의하는 고객들에게 판매원은 일찍 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때를 기다렸는지 맞은편 정육 매점의 판매원이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고객들은 동난 삼겹살을 아쉬워할 뿐이다. 어쩌면 그들은 내일 개장 시간에 맞춰서 출입문 앞에 줄을 설지도 모른다.

공룡 마트들이 동네 구멍가게까지 먹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면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공룡 마트들이 동네 구멍가게까지 먹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면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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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상점의 삼겹살 가격파괴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이 같은 매장에 입점한 정육업체들이 아닐까. 그동안은 서로 비슷한 가격대에서 각자의 상표나 특징으로 공정한 경쟁을 했었다면 지금은 직영정육점의 가격파괴에 대책이 없을 것이다. 분통이 터지더라도 퇴점을 각오하지 않고는 본사에 항의도 못해 볼 것이다.

그것은 전투다. 그 싸움에서 어떤 노동자도 이기지 못한다. 매일 지기만 한다. 마트는 석 달에 한 번씩 여러 돼지고기 업체들의 매출액을 정산한다. 꼴찌가 되면 물건을 빼야 한다. 대신 다른 돼지고기 업체가 제 상품을 진열할 것이다. 승리는 항상 마트의 차지다.
- 한겨레21 제789호 노동OTL 현장보고 중에서. -

새해에는 대형상점 이용을 줄이면서 나름대로 윤리적인 소비를 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동네슈퍼나 재래시장에서 사기 어려운 품목 정도만 대형상점을 이용하자는 다짐은 매서운 한파를 핑계로 작심삼일이었다. 그나마 최소한의 소비를 했다는 위안은 있었지만 대형상점의 가격파괴와 SSM(슈퍼슈퍼마켓) 진출로 지역상권까지 장악하려는 그들을 비판하면서 지역 상인들만의  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고 소비자도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을 가지는 나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자괴가 들었다.

'결심을 했으면 바로 실천을 해야지 뭐 하는 거냐.' 마음속으로 꾸짖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부대끼는 곳이 시장이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부대끼는 곳이 시장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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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배낭을 메고 걸어서 20분 거리의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이르거나 쌀쌀한 날씨 탓인지 시장 안은 한산했다. 이제 막 장사 준비로 물건을 내리거나 정리를 하는 점포들이 눈에 띈다. 서너 곳의 생선가게를 죽 둘러보며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고 구매결정을 내린 점포에서 흥정했다.

"저녁 때쯤이 가격이 좀 싼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날그날 달라요. 안 팔리면 떨이도 하는데 요새는 뭐..."
"동태 제일 큰 것으로 두마리 토막 내지 말고 주세요. 갈치도 살건데 좀 싸게..."
"동태 6천원씩 받는데 두 마리 사니까 5천원에 줄게요."

한쪽 팔 길이쯤 되는 큰 동태 두 마리와 중 갈치 3마리를 1만5천원에 샀다. 마트에서는 어림도 없는 가격이다.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즉석 두부와 채소 등을 사 들고 집 근처 슈퍼에 들렀다. 동네슈퍼 치고는 큰 편인데 얼마 전부터 계산대의 점원 한 명이 안보이고 주인이 직접 계산을 하고 있다.

슈퍼 안의 정육점에는 주인 부부가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삼겹살의 품질이 괜찮은 곳으로 가끔 이용을 한다. 국내산 삼겹살로 주문하면서 대형상점의 가격파괴에 대한 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당연한 답변이 돌아 올 것이기도 했지만, 속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텐데 한번 더 속을 태우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인 남자는 고기를 조금 더 준다며 저울눈금을 가리켰다. 부인은 파채를 덤으로 담았고, 돈을 건네자 서비스 쿠폰과 드링크 한 병을 건네준다. 쿠폰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피로 회복 드링크는 처음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지역상권이 살려면 대형상점이 망하거나 축소되어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공룡 마트들이 동네 구멍가게까지 먹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면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함께 가야 해 함께 가야 해 함께 가야 해 함께 가야 해 살기 힘이 든다고 모두들 기죽으면 안돼. 어차피 우린 이미 함께 같은 배를 탔어 앞을 향해서 나가야 해 함께 가야 해...'
                         사랑과 평화 - 함께 가야해' 중에서.


태그:#대형마트, #삼겹살, #SSM, #슈퍼마켓,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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