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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레착저레착 제주마을다니기>
저는 제주에 삽니다. 제주의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길을 무작정 걷기보다는, 제주마을을 테마로 걷는건 어떨까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을을 다니면서 사람도 만나고 문화와 전통, 역사를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레착저레착은 여기저기 다닌다는 말입니다.

[이레착저레착 제주마을 다니기 - 서귀포 강정마을]

하룻밤 사이에도 평화는…



사거리시장 벽화
▲ 강정마을 사거리시장 벽화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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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 저는 다른 때와 달리 아주 긴 호흡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이상 걸렸습니다. 우연치 않게 (이 마을에서는 아주 일상적일지 모르겠지만) 마을을 다녀온 다음날 사건이 터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평화는 깨질 수 있다는 사실에 일주일 동안 몸서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죽였습니다.

강정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해군기지 착공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어서, 꼭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벼르다 다녀온 것이지요. 부끄럽지만 강정에 처음 갔습니다. 신문방송에서, 영화에서, 강정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도청 앞에서 주민들과 몇 번 마주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무 내색 안하고, 그저 마음속으로, 어떻게 보면 아주 소심하게 응원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달 기공식이라기에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새해 첫 마을로 강정에 다녀온 이유입니다.

(참고 : 제주해군기지 기공식은 2월 5일 예정입니다. 주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천막을 치고 농성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18일 새벽 경찰이 투입돼, 일부 주민이 연행되는 등 경찰과 주민이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1월 17일, 아주 날이 좋은 날 강정에 다녀온 것입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평화가 깨질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사거리시장
▲ 강정마을 사거리시장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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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강정까지는 1시간 이상 걸립니다. 버스터미널에서 중문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월드컵경기장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곤 택시를 이용해서 강정마을 입구에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택시아저씨는 너무나 무뚝뚝했는데, 입구가 어딘지 포구가 어딘지 설명도 안해주시고 강정마을 사거리에 세워주셨습니다. 아마 저를 올레꾼으로 보셨을 겁니다. 강정마을은 올레꾼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이니까요.

내리자마자 <PD수첩>에서 봤던, 배가 들어올 때마다 생선을 파는 장이 열리는 사거리시장입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북적북적 거리는 분주함에, 재밌게 떠들어 대는 수다들에 해군기지는커녕 도무지 사건이라고는 일어나지 않는 마을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저조차도 그런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옆에서 한참 지켜봤는데, 주민간에는 그저 정다운 덕담만 오갈뿐이었습니다. 날이 맑아 그럴지도 모릅니다. 정말 끝내주게 하늘이 맑았으니까요. 벽화만 봐도 평화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에선 찬성과 반대 주민들이 따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찬성하는 사람끼리, 반대하는 사람끼리 거래를 하는 것이지요.

이 사거리 시장은 평화가 싹트는 곳입니다. 이방인인 저도 그 분위기에 취할 정도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벽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한순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기운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계속 얼굴을 비비면서 보다 보면 옛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해봤습니다.

사거리시장에 나온 날치
▲ 강정마을 사거리시장에 나온 날치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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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물오른 솔래기(옥돔)와 날치가 가득했습니다. 옥돔은 그런대로 한 번에 알아봤는데, 날치란 녀석은 무섭게 생긴 게 꼭 아귀 같아 몰라봤습니다. 그래서 물었지요. 아저씨, 이 거 뭐마씸? 요거? 날치. 못생겨도 막 좋은 거라. 싱싱행. 회로도 먹을 수이서. 아저씨는 분명 손님이셨는데, 날치를 사라고 부추겼습니다. 옥돔은 이미 다 임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생선 꾸러미를 들고 다닐 처지가 아니라 죄송하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올레꾼들이 십시일반 하나씩 사주진 않을까 싶었지만, 생선 들고 걷는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해군기지 반대깃발
▲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깃발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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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재촉해 초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집집마다 해군기지 반대 깃발이 걸려있습니다. 이건 영화 <섬의 하루>에서 숱하게 봤습니다. 유난히 파란 하늘 아래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물론 강정마을 주민 모두가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부모님들은 모두 찬성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강정초등학교
▲ 강정마을 강정초등학교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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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화단이 꾸며져 있고, 한라산 백록담에 쌓인 눈이 학교 뒤편으로 올려다 보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운동장에서 3~5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한 아이를 에워싸고 여럿이 때리고 있었습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강정마을 주민들의 시련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들도 더 이상 때리지 않고 물러섰습니다. 이럴 땐 제가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정을 듣고보니 좀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A라는 아이는 평소에 주변 아이들을 때려왔습니다. 툭하면 시비를 걸고 툭하면 욕하고 때리기 일쑤인 아이입니다. 그래서 참다참다 못해 네 명의 아이들이 주말아침 학교 운동장에 모여 A를 때린 것입니다. A는 울고 있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내게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정말, 그래도 때리면 되겠느냐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무 조언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A는 내가 가져다준 신발도 픽 던져버렸습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입니다. 평소에도 말 안 듣는 사고뭉치라고 나머지 아이들이 오히려 날 위로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나머지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A는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해군기지 반대깃발
▲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깃발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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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머지 아이들이 축구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궁금했습니다. 혹시, 혹시, 혹시. 해군기지 찬반팀으로 나눠서 싸우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물었습니다. 강정에 해군기지 들어오는 거 알지? 그러니 아이들은 다 아는 걸 왜 물어보느냐는 얼굴을 했습니다. 하긴. 그럼 혹시 너희들 아까 싸운 게 해군기지 때문은 아니지? 지레 겁먹은 얼굴로 내가 물으니, 아이들이 웃습니다.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러자 한 아이가 쟤네 집은 찬성, 쟤네 집도 찬성, 쟤네 집은 반대한다고 설명합니다. 넷은 친해보였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기우였는지. 아이들은 오히려 내가 궁금한 모양입니다. 절보고, 자꾸 몇 살이냐고, 20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전, 거리낌 없이 맞다고 했지요. 몇 번 말대꾸를 해주곤 아이들 장난에 빠져들 것 같아 운동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다신 싸우진 말라고 당부하긴 했는데, 뭐, 내 말을 들을 아이들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진 찍은 거 가지고 선생님한테 이른다고 유치하게 으름장을 줬는데, 이것도 먹힐지 모르겠습니다.

올레길 땅바닥지도
▲ 강정마을 올레길 땅바닥지도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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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바다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올레 덕분에 친절한 땅바닥지도를 따라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강정은 축복받은 땅입니다. 감귤과 한라봉은 물론 밭작물과 딸기 등의 하우스작물까지, 게다가 화훼까지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밭도둑처럼 기웃거렸습니다.

딸기재배 하우스
▲ 강정마을 딸기재배 하우스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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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덕 해안가에 이르니 사진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범섬이 보이는 바다에는 텐트가 쳐있고, 솟대가 여럿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곳은 가히 예술작품 전시회 같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최병수 작가의 설치작품은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마라도에서 우연치 않게 최병수 작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해군기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으셨는데, 별로 긍정적인 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해군기지 꼭 지켜봐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전, 참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중덕에서 사진전시
▲ 강정마을 중덕에서 사진전시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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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덕에서도 예술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강정마을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기록하고 계시는 강방수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때도 범섬을 찍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전문적인 사진작가가 아니라, 이웃마을 주민이라고 하십니다. 주말에 시간내서 사진을 찍는데, 다큐사진을 작업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시민단체에서도 하지 못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셈입니다. 이보다 리얼할 수 없는 사진을, 주민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오롯이 혼자서 꿋꿋하게 작업하고 계셨습니다. 해군기지로 몸싸움이 일 때마다 언론기자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사진을 찍지만 자신은 두려워하지 않고 그 한 가운데에서 찍는다고 하셨습니다. 주민들도 다른 카메라는 어색해하시는데, 자기 카메라는 피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러고보니 해군기지가 주민들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실감이 갑니다. 농사만 짓던 분들을 운동가로, 사진작가로, 평화지킴이로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강정바다
▲ 강정마을 강정바다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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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덕에는 올레꾼들이 정말 많이 지나갔습니다. 놀랐습니다. 강정마을 코스가 올레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라군요. 그래도 한 가지 아쉬웠습니다. 사진전시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가버리셨습니다. 주민들한테 해군기지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도 없으십니다. 강정에 좀더 관심을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중덕바다 설치작품
▲ 강정마을 중덕바다 설치작품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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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수 선생님이 주민들이 있는 강정천으로 선뜻 데려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십여일 전부터 공터에 천막을 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강정천 옆 공휴지에서 기공식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공터 입구에는 포크레인 두 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풍림리조트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강정천은 그 말로만 듣던 은어가 팔딱팔딱 뛰어오를 것처럼 맑았습니다. 공터에 주민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처음 뵀는데, 다들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구운 감자와 따뜻한 커피 한 잔도 얻어마셨습니다. 빈손으로 온 게, 날치 한 마리 사서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리곤 강정교로 나가 현수막을 쳤습니다. 전 하는 일 없이, 그저 옆에서 성가신 존재였지만요. 

강정천
▲ 강정마을 강정천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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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천앞 중장비들
▲ 강정마을 강정천앞 중장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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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니, 해가 밝기도 전에 공터는 수라장이 됐습니다. 기자회견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50여명이 연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기공식을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뉴스를 통해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영상을 보니, 주민 분들이 감자를 구워먹으며 수다를 떨던, 평화롭기만 한 공터가 아니었습니다. 계속 질문을 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강정마을에 평화를 심을 수 있을까. 자꾸자꾸 질문만 생깁니다.

강정교에
▲ 강정마을 강정교에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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