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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에 나올 정도로 서울시 중구의 남산은 소나무를 비롯한 크고 작은 각종 수목들로 울창한 산입니다. 262m의 높이의 남산은 산꼭대기에 서면 사방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서울 시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수림도 잘 보호되어 대도시 도심의 한가운데인데도 꿩을 비롯한 각종 산새·다람쥐 등 산짐승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고마운 산입니다.

 

남산은 사람에게 베푸는 길도 많아서 남대문·퇴계로3가·장충공원·이태원동·후암동 등 여러 곳으로부터 산꼭대기에 이르는 산책로가 있습니다. 더욱 남산이 고마운 건 자전거도 오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많이 애용하는 코스는 장충공원에서 국립극장으로 들어가면서 남산을 오르는 길인데, 저는 남대문 시장을 들리는 걸 좋아해서 남대문 시장에서 남산을 오르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더구나 이 코스는 촘촘하게 붙어있는 집들이 언덕 위에 펼쳐진 이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고 끈덕진 삶의 모습도 만날 수 있는 길이랍니다.

 

남대문 시장이 있는 4호선 전철 회현역에 내립니다. 외국인들이 많아져 이젠 국제시장이 다 된 시장통을 따라 남산길을 찾아갑니다. 양 옆 상가의 상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일본말이나 중국말 혹은 영어로 말을 붙이는데 생계형 회화지만 발음이나 태도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네요. 외국어는 어려서부터 일찍 시작해야 잘된다는 말은 역시 학원들의 상술인가 봅니다. 

 

끈끈하고 애잔한 삶의 모습을 품은 남산  

 

시끌벅적한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니 드디어 본격적인 업힐(언덕길)의 시작입니다. 언덕길을 자전거로 오르다 보면 점점 주변의 세상이 조용해집니다. 왼편으로 큰 소음을 내며 언덕을 오르는 자동차 소리들이 어느샌가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저 귀에 들리는 건 저의 거친 숨소리와 자전거 체인소리. 자동차의 커다란 소음은 안 들리고 자전거 체인 돌아가는 미세한 소리가 다 들리니 신기합니다. 그래서 길고 긴 남산 오르막을 자전거 타고 오르는 것은 도시의 편리함과 안온함을 버리고 길을 나선 고독한 순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남산 오르막길은 자전거도로는 없지만 다행히 인도가 나있어서 차도를 달리다가 힘에 부치면 무리하지 말고 인도의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쉬어가면 됩니다. 폭설과 강추위로 자전거를 거의 못타고 다녔더니 페달을 밟는 느낌이 몹시 무겁습니다. 역시 몸은 거짓말을 안하네요.

 

오르막길이 힘들기만 한 게 아닌 것은 오른편으로 크게 펼쳐지고 있는 산자락의 풍경 때문입니다. 남산이 도심속 한가운데에 있다보니 최고급 호텔들도 보이지만 무엇보다 촘촘하고 층층이 붙어있는 언덕 위의 집들이 인상적입니다. 고급 호텔들과 아파트들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삶의 모습이 언덕위의 집들에서는 끈끈하고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서민적인 삶의 풍경을 내치지 않고 가만히 품고 있는 남산이 왠지 고맙기도 하고 백두산 못지않은 큰 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남산에는 철갑을 두른 소나무가 있다 

 

산중턱에 있는 중간 정도의 기착지인 용산 도서관에 도착합니다. 가까이에 남산 도서관도 있지만 용산 도서관은 남산자락 동네에 이웃한 아담하고 편안한 도서관이라 남산을 갈 때면 꼭 찾게 되는 곳입니다. 배고프면 매점에서 도서관표 백반도 먹고 야외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내려다 보이는 동네를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잠시 쉬어갑니다.

 

묵묵히 앞만 보던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저 앞에 높다란 남산타워와 옆에 잘 어울리진 않는 철탑이 드디어 보입니다. 언제 이 언덕길을 다 올라가냐 싶었는데 다시 기력이 생기는 순간이지요. 유니폼을 화려하게 차려 입은 자전거 동호인들이 단체로 지나가며 '파이팅' 하고 외쳐주니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은 듯 힘이 불끈 솟아납니다. 

 

남산 도서관 앞에서 서울 타워가 있는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길은 자전거인들의 인내와 체력을 시험하려는 듯이 구불구불 길고 가파릅니다. 길은 1차선 편도지만 오른편에 넓은 인도를 만들어 놓아서 차량과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위험한 상황은 없어서 좋네요.

 

남산 꼭대기의 명물 서울 타워와 전망좋은 팔각정, 봉수대도 좋지만 저는 애국가에 나오는 그 철갑을 두른 소나무를 만나는 일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온 거북이 등껍질 같기도 하고, 수많은 전투를 치른 노장군의 세월이 묻은 갑옷 같기도 한 키 큰 소나무들을 가까이 마주하다 보면 그만 상념을 잊고 가만히 나무에 빠지게 됩니다.        

  

나이를 짐작도 못할 소나무의 그 묵직한 느낌은 천년고찰의 절에 온 듯하고, 태초의 벽화를 마주한 것 같은 원초적인 예술성마저 느껴집니다. 제가 더 능력있는 작가였다면 이 철갑을 두른 소나무에서 어떤 모티브를 얻어 뭔가를 만들어내도 냈을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오랜만에 언덕을 오르느라 굳은 다리도 풀겸 남산 하얏트 호텔앞의 넓은 야외식물원을 산책하면서 오늘의 남산 라이딩을 정리합니다. 어느 해 보다도 거칠고 추운 겨울이지만 남산은 소나무가 강추위를 막아주는지 포근합니다. 그런 듬직한 소나무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겨울향기도 좋고, 남산자락의 어느 동네에서 들려오는 두부장수의 종소리도 정겹네요.

 


태그:#남산, #소나무 ,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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