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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에서 전시된 홍보포스터. 워홀이 20대 디자인한 구두 '토니(Tony)' 33×51cm 1957(아래)
 워홀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에서 전시된 홍보포스터. 워홀이 20대 디자인한 구두 '토니(Tony)' 33×51cm 1957(아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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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본명 Andrew Warhola)의 위대한 세계'展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오는 4월 4일까지 열린다. 마릴린 먼로 등 세계명사 110여 점을 비롯하여 캠벨수프 등 102점과 사진, 기록물 283점 등 총 385점 그리고 워홀이 수집한 580개의 상자 중 2개 분량도 공개된다.

성공한 디자이너에서 팝아트의 제왕이 된 앤디 워홀, 그는 1928년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이주노동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카네기칼리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야심차게 20대에 스타가 될 꿈으로 뉴욕에 입성한다.

1952년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데뷔, 하이힐 등 여성신발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는 이에 만족치 않고 정식 작가가 되고파 1962년 LA에서 첫 전시를 연다. 마른 체구에 피부가 하얗게 되는 백반증을 앓았고 탈모로 가발도 애용한다. 1987년 담낭수술 후 급사한 그는 생존에 많은 일화를 뿌렸고 현대미술에서 부동의 1인자가 된다.

손이 아니라 기계로 찍어내는 시대

서울시립미술관입구 표 파는 곳 '캠벨수프(1968)'와 '꽃(1970)'그림이 인상적이다. 미술관 아트숍 2층 모조품들. '마오', '자화상', '먼로'가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입구 표 파는 곳 '캠벨수프(1968)'와 '꽃(1970)'그림이 인상적이다. 미술관 아트숍 2층 모조품들. '마오', '자화상', '먼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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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은 후기산업시대를 맞아 손이 아니라 실크스크린으로 작품을 찍어낸다. 작업실도 스튜디오가 아니라 '공장(factory)'이라 부른다. 현대미술은 손재주가 아니라 기계로 하는 시대임을 예고한다. 요즘 사진이 회화보다 더 부각되는 건 이런 맥락이다. 그는 이렇게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180도 바꾼다.

워홀은 뒤샹의 후손이다. 뒤샹이 변기를 들고 나오니까 워홀은 깡통을 들고 나온다. 손으로 그리는 피카소, 머리로 그리는 뒤샹, 이제는 기계로 그리는 워홀시대가 온 것이다. 요즘 일부 미술대학입시에서 실기를 생략하는 것도 뒤샹과 워홀의 영향이리라.

화가, 편집자, 영화감독, 수집가로 활약한 '시대의 증인'

앤드 워홀이 창간한 <인터뷰(Interview)>표지들(전체와 부분) 영화배우 제임스 딘과 잭 니콜슨이 보인다. 수집광 워홀이 보관해 온 클라크게이블 구두
 앤드 워홀이 창간한 <인터뷰(Interview)>표지들(전체와 부분) 영화배우 제임스 딘과 잭 니콜슨이 보인다. 수집광 워홀이 보관해 온 클라크게이블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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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은 디자이너, 화가뿐만 아니라 대안잡지 '인터뷰'의 편집자로,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프로듀서로, 280여 편을 찍은 영화제작자로 활약한다. 창조성이 돋보이는 25시간짜리 플롯 없는 영화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광고와 포장, 사진가와 수집가로 활동한다.

워홀은 일본의 오타쿠(특정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처럼 한 시대를 꼼꼼히 기록한다. 어디든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4천 개의 전화인터뷰도 녹음한다. 죽었을 때 받은 편지, 초대장, 신문과 잡지사진 등 날짜별로 600여 개의 상자에 보관한다. 게다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록한 두꺼운 분량의 일기도 남긴다.

문화의 고급·저급을 없애고, 일상을 예술로 바꾸다
 
'캠벨 누들 수프상자' 리넨에 실크스크린 51×51cm 1986. '브릴로 비누상자' 1964. '코카콜라(2)' 1961. 슈퍼마켓에서 파는 상자와 차이가 없다
 '캠벨 누들 수프상자' 리넨에 실크스크린 51×51cm 1986. '브릴로 비누상자' 1964. '코카콜라(2)' 1961. 슈퍼마켓에서 파는 상자와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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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즐겨 먹고 마시는 걸 그린다. '코카콜라', '하인즈 케첩', '브릴로 수프'를 그의 작업에 도입하여 기존예술을 해체시킨다. 그의 예술은 가장 평범한 일상에서 나온다. 하여간 예술이 결코 특정계층의 독점물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미술의 역사가 그랬지만 그는 미술의 범위를 넓혀간다. 존 케이지가 소음과 침묵도 음악에 도입하듯 워홀은 돈, 기계, 깡통, 광고도 미술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후 마오 같은 지도자나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 등도 맘껏 그린다.

"왜 사람들은 예술가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술가란 또 다른 종류의 직업일 뿐"이라며 요셉 보이스처럼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술관을 백화점처럼 친근하게 만들고 미술을 민주화한다. 미술 감상에서 감동 이상으로 재미를 중시한다.

미국전성기에 잉태된 '슈퍼스타 아이콘'

 
아인슈타인, 리즈 테일러, 마릴린 먼로, 재키, 리히텐슈타인, 마이클 잭슨, 존 웨인, 잉그리드 버그먼, 제인 폰다, 마오 102×81cm 1967.(시계방향)
 아인슈타인, 리즈 테일러, 마릴린 먼로, 재키, 리히텐슈타인, 마이클 잭슨, 존 웨인, 잉그리드 버그먼, 제인 폰다, 마오 102×81cm 1967.(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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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미국은 히피, 반전, 흑인, 여성, 인권운동 등이 일어났고 나라는 이상과 열정, 에너지로 넘친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자 미국인은 크게 고무되어 자부심을 되찾으며 전성기를 맞는다. 이런 시기에 워홀이 나타난 것 우연이 아니라 할 수 있다.

당시 미국대중문화는 전 세계를 강타한다. 소비맛에 빠진 미국인들은 쇼핑할 때 주는 즐거움 같은 '슈퍼스타 아이콘'을 원한다. 워홀은 이에 부응하여 대중적 소재로 대중적 예술을 만든다. '마릴린 먼로'는 그런 상황 속에서 탄생된 '20세기 비너스'다. 그밖에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들이 위에서 보듯 화폭에 대거 등장한다. 

인물연작 중 20세기 인류에게 기여한 유태인 10명을 선정한 전시가 흥미롭다. 여기엔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카프카 등도 포함된다. 워홀은 10명의 명사를 뽑다 힘들어 그냥 유태인박물관장에게 맡겨버린다. 이는 미국사회에 유태인 영향력이 큼을 짐작케 한다.   

나는 돈벌이에 성공하는 기계가 되고 싶다

'달러 사인(Dollar Sign)'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229×178㎝ 1981. '산화(Oxidation Painting)' 아크릴과 소변 36×25㎝ 1978
 '달러 사인(Dollar Sign)'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229×178㎝ 1981. '산화(Oxidation Painting)' 아크릴과 소변 36×25㎝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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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은 예술가이면서도 사업가였다. "사업을 잘 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고 뉴욕에서는 돈을 버는 것이 하나의 직업이다"라고 털어놓는다. 그에게 광고와 예술은 구별이 없다. 소비생활도 미술의 소재가 된다. 그런 면에서 그는 가장 미국적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TV 등 기계를 너무 좋아한다. "나는 10년 동안 녹음기라는 아내와 결혼했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렇게 기술과 예술을 하나로 만든다. 그뿐 아니라 '산화(酸化)'에서는 물감 대신 오줌을 써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찰한다. 워홀의 이런 엽기적 실험은 오줌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워홀의 빛과 그림자,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

 
'자화상'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8×20㎝ 1978. '두개골(Skull)'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82.9×203.5㎝ 1976
 '자화상'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8×20㎝ 1978. '두개골(Skull)'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82.9×203.5㎝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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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화상'에서 보듯 워홀은 실제로 정신분열적이다. 가톨릭신자면서 동성애자였고 민주당원이면서도 레이건을 지지한다. 어떤 인터뷰에선 '예'와 '아니오'로만 대답한다. 자신의 이미지로만 보여주고 사적 영역은 철저히 숨긴다. 그는 또한 매일 밤 외출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파티 광이었다.

1968년에는 여배우 발레리 솔라나스로부터 총격을 받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난다. 다행히 워홀은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후에 그녀에게 왜 총을 쐈냐고 물으니 "워홀이 자기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당시 그의 영향력이 어떤지 알 듯하다.

워홀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그런지 삶의 덧없음(Vanitas)'과 '죽음의 기억(Memento Mori)'같은 주제를 마다하지 않는다. '두개골'이 그런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피카소나 백남준처럼 21세기 유희적 인간의 전형이다. 이 세상에서 와 자신이 하고픈 것 원 없이 다 하고 간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세 사람은 동급이다.

재난, 인권, 인종갈등 등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
 
'앰뷸런스사고(Ambulance Disaster)' 실크스크린 1963. '인종폭동(Red Race Riot)' 1963. '전기의자(Electric Chair)' 1971
 '앰뷸런스사고(Ambulance Disaster)' 실크스크린 1963. '인종폭동(Red Race Riot)' 1963. '전기의자(Electric Chair)' 1971
ⓒ Andy Warhol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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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은 팝아트작가답게 추상에서 중시하는 '숭고한 정신'보다는 '평범한 일상'에 더 초점을 둔다. 그래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재난, 사고, 시위 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이를 독창적으로 조정하고 이미지로 재편하여 시각효과를 극대화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앰뷸런스사고'는 60년대 흔해진 차 사고에 관한 것으로 자유와 여가를 상징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죽음과 파괴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당시 미국사회에서 큰 이슈였던 인종갈등도 다룬다. '전자의자'에서는 50년대 뉴욕교도소에서 참혹하게 사형당한 2명의 죄수를 부각시키며 인권문제도 제기한다.

20세기 미술의 두 거장, 앤디 워홀과 백남준

'회상(시대정신연작)' 캔버스에 실크스크린과 아크릴 208×1071×5cm 1982. '그림자(추상화)' 1979(뒷면). '요셉 보이스' 린네에 실크스크린과 아크릴 254×203cm 1986. 워홀이 말년에 좋아한 위장무늬로 되어 있다
 '회상(시대정신연작)' 캔버스에 실크스크린과 아크릴 208×1071×5cm 1982. '그림자(추상화)' 1979(뒷면). '요셉 보이스' 린네에 실크스크린과 아크릴 254×203cm 1986. 워홀이 말년에 좋아한 위장무늬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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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은 워홀이 1982년 베를린에서 열리는 '시대정신'전에 참가하려고 만든 것이다. 빛의 스펙터클을 모티프로 어둠을 통과한 빨강, 파랑, 녹색이 주는 색의 효과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남준의 랜덤액서스(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은 실험)정신을 풍긴다.

이제 워홀과 백남준의 간단한 비교로 글을 맺고자 한다.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워홀이 요셉 보이스는 그렸지만 백남준은 안 그렸다. 하긴 백남준이 60년대 "팝아트를 죽여라"라고 객쩍은 소리를 했는데 워홀이 들은 것인가.

워홀은 고급예술의 대중화와 기계화로, 백남준은 첨단과학의 인간화와 예술화로 세계미술사에 가장 큰 공적을 남겼다. 그리고 둘은 똑같이 대중과 소통을 중시했다. 그런데 백남준이 만약 미국사람이었다면 누가 더 우위였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앤디 워홀이 남긴 유명한 말들
카터대통령과 앤디 워홀 1977
 카터대통령과 앤디 워홀 1977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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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나를 매혹시킨다.
- 나는 뼛속까지 천박한 사람이다.
-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 예술은 당신이 벗어날 수 있는 신세계다.
- 생각해 보면 백화점은 미술관과 비슷하다
- 뉴욕에선 돈을 버는 것이 하나의 직업이다.
- 나는 읽지 않는다. 다만 그림을 볼 뿐이다

- 나는 현실과 가상의 시종을 모르겠다.
- 유명인사에 초점을 맞출 때 작품이 된다.
- 내가 어떤 대지를 소유해도 그걸 황폐화시키지 않은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예술가는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 왜 사람들은 예술가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술가란 또 다른 종류의 직업일 뿐이다.
- 예술가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다.
- 나는 사회적 질병에 걸려있다. 나는 밤이 되면 어딘가로 외출해야 한다. 만약 내가 어느 날 집에 머문다면 날 싫어하는 사람은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할 것이다.
- 섹스는 환상이다. 가장 흥분되는 것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은 그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않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 공상적 사랑이 현실적 사랑보다 훨씬 더 좋다.
-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림만 그린다. 다만 최대한 많은 양의 그림을 생산하려고 노력한다.
- 나는 상업미술가로 출발했으며 사업예술가로 마치기를 기대한다.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 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
- 미래의 모든 사람들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미래에는 아주 빠르게 유명해질 수도 있고 아주 짧은 시간에 그 명성을 잃을 수도 있다'나 '변화는 순식간에 온다'로 해석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앤디워홀전 공식 홈페이지 www.warhol.co.kr
앤디워홀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http://www.warhol.org



태그:#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팝아트, #요셉 보이스,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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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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