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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신제주'는 내게 '5.16도로(1131번 도로)'와 더불어 '개발'이라는 낱말을 떠오르게 하는 곳으로 기억된다. 1970년대에 시작한 공사에 힘입어 바둑판처럼 깔끔하게 교차하는 도로와 그와 어울리게 네모지고 큰 건물들이 늘어서게 되었고 여러 관공서, 방송국 따위도 한 자리씩 차지하면서 이름 그대로 '새로운 제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또한 으리으리한 호텔, 유흥업소들도 자리잡아 밤문화와 관광객을 함께(?) 이끄는 효자 동네이기도 하였지만 요새 그 힘은 조금 시들한 듯도 보인다. 신제주는 개발이 끝난지 오래이고 '노형동'으로 바통을 넘겨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남'을 바라보는 '강북'사람의 시선이라고나 할까? 그런 심정으로 젊은날을 보내었다. 어리고 젊은날-걷던 시절, 신제주의 길은 넓고도, 멀고도, 험하고도 재미없었다. 고부라진 골목도, 걸려 넘어질 흙묻은 돌뿌리도 없었고, 그저 칼바람만 휑하니 긁어지나갈 뿐이었다.

저 열매 없이 커다랗기만 한 워싱턴야자는 '구제주' 길에 놓인 종려나무의 왕고조하르방쯤 되는 듯 위압적이었다. 그러다 나이먹어 자동차를 타게 되니 곱지않던 시선이 누그러든다. 걷는 일은 '우리 동네 한 바퀴'이거나 목적지에 다다른 다음의 일이니 신제주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그저 스쳐 지나는 몇 초짜리 인연인 것이다.

그런데 2~3일 전 쯤에 이 동네를 걸을 일이 생겼다. 신제주 로터리를 중심으로 사방에 건물들이 즐비한데 그 사이에 녹색지대가 있다. 잘 자라난 나무들이 정연하게 들어서 있고 벤치들도 놓여 있어 가볍게 산책할 만한 곳이다. 그 곁을 걷다가 제주도 민속을 모티브로 삼은 여러 석물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찬찬히 구경도 하고 몇몇은 사진도 찍고 길을 가는데 '삼다공원'이라는 큰 표석이 보였다.
그제서야 이곳이 '공원'의 기능을 하며, '삼다공원'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신제주로터리에 인접한 공원이다
▲ 삼다공원과 전시 석물들 신제주로터리에 인접한 공원이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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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는 제주도에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것이고 '삼무'는반대로  제주도에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 둘은 빛과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는 존재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럽게 신제주의 또다른 녹색지대인 '삼무공원'이 떠올랐다.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 도심 속 삼무공원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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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22일) 오후에 이곳에 올랐다. '올랐다'고 하는 것은 이 공원이 원래는 '오름'이기 때문이다. '구제주'의 '사라봉공원'처럼 말이다. 이 오름에도 이름이 있어서 '베두리오름'이라 불렀다. '베두리오름공원'이 길어서 어려우면 줄여서 '베두리공원'이라 해도 좋았을텐데, '삼무'가 도대체 왜 '베두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인가?

오름에는 공원을 조성할 때 심은 듯한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아왜나무, 협죽도와 벚나무(추정) 따위가 잘 자라나 숨쉬기 기쁘게 하고, 여러 운동기구와 체육시설이 놓여 있어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었다. 작고 야트막한 베두리오름은 번화한 도심과 지역사람들에게 샘물같은 존재인 것이다.  

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삼무공원 안 체육시설 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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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라고 하기엔 무안해 할 곳에 2층으로 된 팔각정이 놓여 있는데 올라가서 봐도 나무들에 가려서 시원한 조망을 기대할 수 없다. 정자의 이름은 '삼무정'이라 되어 있고, 가까운 곳 표석에서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제주인의 한 단체에서 이 정자를 세웠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때가 1978년 8월이다.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기차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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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서쪽에는 검은 빛의 기차가 놓여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석탄을 때서 달렸던 증기기관차이다. 뒤에 연결된 객차 부분은 1963년산 비둘기호의 것이다. 근대문화유산에 해당되어 2008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역시 1978년 5월 말에 제주도에 가져왔다고 전한다. 검색을 해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기차를 볼 수 없는 도서 지방의 어린이를 위해 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제주도와 '자산어보'의 고장 흑산도가 그 대상이 되었는데 오늘날엔 이곳에만 남은 모양이다. 삼무공원에다 놓고 보게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같은 해에 이 오름이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알고 보면, 시기가 적절히 맞아 떨어져서 이곳으로 옮겨놓았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어디가 입구일까 하는 괜한 고민이 생길 정도로 공원에는 길이 여러 곳으로 나 있다. 이는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구실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삼무공원'이라 새겨진 표석이 있는 이 옆 계단이 입구이다. 1986년에 세워진 표석 아래에 새겨진 글귀가 눈여겨볼 만 하다.

1986년에 한 단체에서 세웠다.
▲ 삼무공원 표석 1986년에 한 단체에서 세웠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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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는 '삼무'의 뜻을 밝히고 밑바탕으로 깔리는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여 보면 '도둑이 없음은 정직·순박함을 말하고 거지가 없음은 근검·절약·자조·자립하는 정신이 강함이요 대문이 없음은 신뢰하고 협동하는 정신이 강함을 말한다'고 하였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승하기 위하여 삼무공원을 세웠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른바 '삼무정신'을 위해 한낱 오름이 삼무공원이란 이름으로 환골탈태한 셈이다. 이 정신은 '정직, 순박, 근검, 절약, 자조, 자립, 신뢰, 협동'이라는 단어가 주인인데 전국적으로 이끌리던 새마을운동의 새마을 정신, 곧 '근면·자조·협동'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우연인가?

그 곁에 상대적으로 작은 표석이 있는데, 그것은 이 오름의 이름과 말밑을 밝히는 글귀이다. 2009년에 세워졌으니 제 이름을 되찾는데에 30년이 걸린 셈이다.

오름의 어원과 옛 한자 표기에 대해 풀이하고 있다.
▲ 베두리오름 표석 오름의 어원과 옛 한자 표기에 대해 풀이하고 있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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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올라 팔각정 주변을 맴돌았다. 아까도 있던 중년의 사내가 팔각정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게 보인다. 바람이 차고 손이 시리다. 쌀쌀한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걸 깨닫자,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돌계단을 '까르르' 소리내며  밟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돌계단을 오르는 모습, 멀리 팔각정이 보인다.
▲ 오름 산책로 돌계단을 오르는 모습, 멀리 팔각정이 보인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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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무공원이자 베두리오름인 이 빛과 그림자는 그렇게 사람을 감싸안고 있었다.


태그:#베두리오름, #삼무공원, #제주도여행, #신제주, #삼다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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