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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다."

 

대통령, 정치가, 행정가, 소설가, 운동선수, 유명한 범죄자(도둑), 군인, 경찰, 술 좋아하는 옆집 아저씨, 서울역 대합실에 숙식하는 노숙인 등 나라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후대의 평가에 목을 맨다. 자신의 신념이 후대에 인정받을 거라는 믿음은 그들의 삶에 희망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말하는 당시엔 꽤나 비장하게 말을 해야 그에 우호적인 몇이라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속으로라도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인물의 행실을 평가하는 것은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역사가 평가한다는 것은 '객관화'된 고증에 가깝다. 과거 좋은 평가를 기대했던 많은 인물들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것이 다반사이고, 당대에 인기를 누리지 못했던 인물들 중에는 후세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로 기록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 500년 동안 이 땅 위에 존재했던 조선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대부분 우리가 배우는 조선역사는 귀족계급들의 것이다. 사료라는 것은 '배운자'들의 것이고 특히나 지배계급의 필요로 기술하고 저장해 놓은 것들이라 후세가 당대를 평가할 때엔 사료만으로 공정한 시각을 가지기는 힘들다.

 

수많은 사료들과 사료를 분석한 자료들을 참조하는 이도 나름의 시각으로 편향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는 역사는 온전한 '사실'로 존재하긴 애초에 불가능하다.

 

랑케가 말한 "역사란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는 이상적이지만 '사람에 의해 기록 평가되는 작업'과는 무관한 이야기고 E. H. 카의 "과거와 현재와의 끝없는 대화"가 오히려 현실적이다.

 

<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은 교과서를 통해서 배워온 역사에 살을 더하는 작업이다. 조선역사속의 민중의 삶과 관련한 인물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혁명가와 영웅적 인물들, 지도자들 중에 민중의 삶속에서 존재하는 캐릭터 분석이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은 '의적'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드라마, 소설로 인기를 얻을 만큼 애착의 인물이자 영웅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양반과 귀족을 조롱하고 관아를 습격하거나 부자들의 재물과 곡식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었다. 가난하고 천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도적'이었다. 우리가 아는 그들의 면면의 대부분은 소설을 통해서 얻은 이미지이다. 과거 사료에 언급은 너무나 짧고 미흡하다.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우리가 아는 영웅의 모습인지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체계적인 자료의 비교, 분석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검증하는 작업, 진정성을 들여다본다. '만들어진'의 의미는 바로 그런 작업을 통해서 드러내는 자신감인 것이다.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는 근거는 철저히 사료와 그해석이지만 이미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주류사학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씨왕조인 조선을 타도하고 백성들의 국가가 아닌 정씨 왕조를 세워 권력을 가지려 반란을 도모했던 홍경래. 민생의 안정을 위해 고종 밑에 귀족들만 제거하면 될 것으로 소극적 개혁을 추진했던 전봉준의 낮은 수준의 개혁의식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미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현재를 살아가는 후대들에게 우리 영웅들의 가면을 벗겨서 냉철하고 건조하게 바라보는 시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양반전>으로 양반을 비판했던 박지원 역시 봉건계급의 타파를 주창한 것이 아니라, 노비제도 강화를 주장한 정약용처럼 양반 특권체제의 옹호자이자 소극적 개혁을 주장한 보수라는 시각이다. '실학자들은 만성적인 빈곤상태의 농민이 반란을 일으키면 왕조가 붕괴될 것으로 인식하여 조선 왕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양반층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의 일부를 양보하는 개혁을 추진하고자 제안한 것'이라는 저자의 의견은 우리가 여태 알고 있던 인물평과는 좀 다르다. 보다 적극적이고 신분제조차 봉건적인 개혁대상으로 여겼다는 것이 더 익숙한 내용 아니던가.

 

흥선 대원군은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왕권을 강화하고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에 주력했을 뿐 백성의 안위와 사회전체의 변혁을 꿈꾸는 개혁가는 아니었다. 그의 쇄국정책이 비판받는 시대가 있는가하면 옹호론이 우세한 시기도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시절을 겪고 있느냐와 상관한다.

 

과대평가라 할만한 과거의 인물들의 지나친 미화를 막고 좀더 사실에 가까운 자료로 만드는 것은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이다. 책 읽는 우리는 여러 의견들을 수렴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양식으로 삼으면 되는 것 아닌가.

 

희화화된 영웅들보다 당시 백성을 쥐어짜는 정치를 행하던 지방 행정관들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민중을 이끄는 리더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의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우리 가슴에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조선의 만들어진 영웅들/ 이희근 지음/ 평사리/ 10,000원


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평사리(2010)


태그:#서평, #조선의영웅들,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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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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