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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있는 '민중의 집'에 갔다. '민중의 집'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미 활발하게 움직임이 있는 민중 문화공간이다. 동네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 동네 사람들과 함께, 거기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가끔은 모여서 밥도 먹는 그런 공간이다.(사실, '민중의 집'을 이렇게 단순히 설명하는 건 안 될 일이다.  여기서 벌이고 있는 일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민중의 집은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서 내려 골목 두 개를 돌면 나온다. 지하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내가 일하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하 '이상북')에서 갈 때는 응암역이 6호선이니까 어림잡아 15분이면 도착한다. 여기서 매주 '화요 밥상'을 한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저녁에 조금 일찍 이상북 문을 닫고 민중의 집으로 향했다. '화요 밥상'은 말 그대로 화요일 저녁에 여럿이 모여 밥을 먹는 모임이다.

망원역 민중의 집은 태어난 것이 벌써 여러 해 됐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이곳에 가보지 못했다. 그저 그런 곳이 있구나 하는 소식만 가끔씩 들었을 뿐이다. 이날 내가 화요 밥상 모임에 가게 된 것도 사실은 민중의 집 때문이 아니다. 얼마 전 이상북에서도 작은 공연을 했던 '바닥소리' 식구들이 화요 밥상 모임 후에 소박한 판소리 공연을 한다기에 간 거다.

판소리는 꼭 <서편제> 같아야 하나요?

민중의 집에서 화요밥상 모임 후 작은 공연을 풀어낸다.
▲ 바닥소리 최용석 님 민중의 집에서 화요밥상 모임 후 작은 공연을 풀어낸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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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소리'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창작 판소리 모임이다. 지금껏 우리는 심청가나 춘향가처럼 예부터 전해진 판소리 듣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창작 판소리를 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좁은 사람이었는가 보다. 작년 겨울 바닥소리의 최용석님 공연을 살짝 맛보기로 본 후에 비로소 이 '창작 판소리'라는 것에 깊은 관심이 생긴 것이다. 이상북 문을 닫고 가느라 정작 저녁 밥상 공동체에 참석하지 못하고 공연만 봤지만 또 다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기에 행복했다.

내가 바닥소리 공연을 일부러 찾아간 이유는 최용석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방을 다 빠져나가고 난 뒤 최용석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는 한 시간 남짓 풀어낸 소리 공연에 많이 지쳤는지 의자에 앉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과연 창작 판소리라는 장르가 뭇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느냐 하는 거였다. 이상한 질문 같지만, 솔직히 이것이 내가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인정'이라는 건 사실 어떤 일을 할 때 별로 필요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등산을 하는 등산가라고 한다면, 나는 '등산가'라는 이름 때문에 등산을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지금 등산가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믿는다. 어느 책에 본 말 그대로, '산이 좋아,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엄홍길 대장이나 동네 산악회에 소속되어 주말에 북한산을 오르는 사람이나 다 똑같은 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창작 판소리를 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았던 적이 있습니까?" 

나는 마치 전문 기자라도 되는 양 그렇게 물었다. 최용석님은 아직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당연히 그런 일이 많았지요." 

최용석님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젊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그것도 전통 판소리가 아니라 창작 판소리를 한다고 하니 일부 전통 판소리 하는 분들에게 질타도 적지 않게 들었다는 얘기다. 판소리라는 건 영화 <서편제>의 그것처럼 한이 서리고 피나는 고통 끝에 얻어지는 산물인 것인데, 이런 길을 가지 않고 판소리를 흥미 위주 공연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는 거다. 이런 말을 듣고 나는 진심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민중의 집에서 멀지 않은 응암동에 작은 공간을 열고 책방을 하고 있다. 이상북이다. 중고책 파는 일을 주로 하고 있지만 나름 철학을 갖고 이 공간을 색다르게 운영하고 있다. 책방에서 노래 공연도 하고 그림 전시회도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독서 토론을 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나는 책방에서 책만 파는 것에 반대한다. 새 책을 파는 가게는 이런 운영 방식이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했고 처음부터 책방을 문화공간으로 겸할 생각에 헌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이제 3년이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동네 사람들이 많은 응원을 해주었다. 동네 골목에 있는 책방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숨 쉬고 살아간다는 데 지금까지 의미를 두고 운영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운영하는 걸 두고 말이 많다. "헌책방이라면 책만 팔아야지, 문화 활동을 겸하면 그건 헌책방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바닥소리 최용석님도 자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며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판소리계는 왜 창작 판소리를 싫어할까

바닥소리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즉 민중의 소리, 보통 사람들의 소리,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소리다.
▲ 바닥소리 최용석 님 바닥소리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즉 민중의 소리, 보통 사람들의 소리,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소리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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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소리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즉 민중의 소리, 보통 사람들의 소리,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소리다. 이 소리를 소리의 본래 주인인 민중들에게 돌려주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판소리로 들려주니 사람들이 좋아했다. 사회 풍자와 해학, 거기에 우리나라 사람들과 늘 함께했던 판소리라는 매체가 만나니 어린이부터 연세가 많은 분들까지 모두 좋아하는 공연이 되었다.

심청가, 춘향가를 좋아하지 않던 어린이들은 창작 판소리로 만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지러지게 웃는다. 무서운 이야기 '내 다리 내놔'를 판소리로 만든 걸 들으면서 무서워서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병든 부모님과 효자청년 이야기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오랫동안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해 온 바닥소리는 이제는 여러 곳에서 초청을 받아 다니며 공연도 하고 작년부터는 대학로 소극장을 빌려 소리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판소리'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고 한다. 그들은 '판소리 계'라는 이름을 쓰며 창작 판소리를 비판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권력이다. '판소리'라는 이름은 '판소리 하는 사람'이나 '판소리를 공부하는 학자'의 것이 아니다. '헌책방'도 '헌책방 주인의 것'이 아니며 '헌책방을 연구하는 사람의 것'도 아니다. 판소리는 소리를 듣는 민중의 것이고, 헌책방은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바닥소리 최용석님은 마지막으로 "오히려 이런 활동을 하는 게 더 편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주류 '판소리 계'에서는 조금 비판을 받을지 모르지만 판소리를 사람들과 함께 숨 쉬게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히려 사람들, 민중들이 좋아하는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창작 판소리에 있기에 더 기운이 난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늦은 밤까지 이어진 대화를 마무리 했다.

바닥소리는 이달 28일부터 2월 21일까지 25일동안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닭들의 꿈, 날다>라는 창작 판소리 무대를 연다. 작년에 이어 앙코르 공연이란다. 자세한 내용은 바닥소리 홈페이지(http://www.badaksori.com)에서 확인하면 된다. 그래, 나는 바닥소리가 '판소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든지 혹은 아니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그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고 싶다. '판소리 계'와 나는 별로 친하지도 않으니까.


태그:#바닥소리, #판소리, #최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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