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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8일 오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여의도공원 천막농성장앞에서 국회에서 논의중인 노동관계법 관련해서 '복수노조, 전임자임금 노사 자율로!'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 오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여의도공원 천막농성장앞에서 국회에서 논의중인 노동관계법 관련해서 '복수노조, 전임자임금 노사 자율로!'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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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소엔 한해 1천여 건의 상담이 접수됩니다. 절반은 전화상담이고 나머지 절반은 내방상담입니다. 노조 설립관련 상담은 지난해 기준으로 3%, 총 30건이고 이중 10건 정도가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하게 됩니다. 노조 설립은 거의 권유하지 않는 편이고 주로는 산별노조나 지역노조 가입을 권유합니다. 주로 건설, 공공, 금속, 일반노조가 대부분.

상담들을 하다보면 난감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용자나 관리자들의 방문입니다. 하루는 인근 건물의 관리소장을 맡으신 분이 상담소를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부산본부 3개 상담소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무료노동법시민강좌'를 각 5강씩 총 3회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평균 30~40명의 시민들이 강좌에 참석했는데, 회사 경리, 인사과 직원 등이 강좌를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그만 회사의 경우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도 어렵고 관청을 이용하기도 어렵다보니, 민주노총을 찾는 것입니다.

소문 듣고 찾아오신 이 관리소장께서 한참을 우물쭈물 하더니 한 10분간 건물 재정 상황과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더니 "정리해고를 하려는데 어떻게 해야합니까?"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참 난감합니다. 건물운영위원회의 대표가 관리소장에게 "2명을 정리해고 하라"고 했답니다.

어떻게 하면 노동자 자를 수 있는지 물으러 온 관리소장

명색이 노동자 권리회복을 위해 싸우는 집단에 노동자 잘라내는 법을 물으러 오다니, 용기인지 무지인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정확히 하나하나 다 설명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쯤은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법전을 보여드리며 꼼꼼히 근로기준법 24조의 내용을 설명드렸습니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의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란 어떤 것인지, 해고회피노력은 무엇인지, 공정하고 합리적이 대상자 선정과 근로자대표와의 협의는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절차와 해고무효확인소송 절차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건물 관리소장께서는 매우 난처한 얼굴이었습니다. 이쯤 설명을 들었으면, 포기하시고 해고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다른 재정 절감 방안을 찾거나, 아니면 교대근무라도 실시할 수 있을 터인데도 어쨌든 해고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표정입니다. 설명을 모두 듣고는 더욱 난처한 질문을 해옵니다. "그래도 어떻게 자를 방법 없습니까?" 저는 그제서야 하고 싶었던 말을 한마디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생계를 잘라내는 일은 살인 내지 가정파괴에 다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하자면 최소한의 자구책을 하셔야 합니다. 한국노동자의 근로조건은 세계적으로 매우 나쁜 상황입니다. 최소한의 법적인 절차도 외면하시려 한다는 것은 과하지 않으십니까? 먼저, 일하시는 분들과 대화는 한번 나누어 보셨습니까?"

이야기 나누다보니 재정 적자가 얼마고, 해고 하면 얼마를 아끼게 되는지 계산조차 해보지 않은게 드러납니다. 그냥 좀 어려운 것 같고, 그냥 잘라내어 버리려 했던 것이죠. 어쨌든 관리소장은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는데, 이후 건물에는 결국 경비원 2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답니다. 일하는 분들과 대화는 나누어 보셨냐는 충고에 대화를 나누었는데, 직원들이 아무 저항도 없이 알아서 나가버렸던 겁니다. 씁쓸한 결과죠.

수상한 노조설립 문의

금속노조 경기지부 인지컨트롤스 안산공장 노동자들이 지난 해 10월31일 노조설립총회를 열고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인지컨트롤스 안산공장 노동자들이 지난 해 10월31일 노조설립총회를 열고 있다.
ⓒ 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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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또 한분의 관리자가 찾아오셨습니다. 노조법 개정통과 바로 다음주였습니다. 한국노총 상담소를 들러 이곳으로 왔다는 이분은 무턱대고 노조 설립 절차에 대해 물으십니다. 몇 년간 경험으로 느끼는 바이지만, 노조설립의 방법과 절차를 중심으로 묻는 상담자들은 대개 노동조합 설립에 실패합니다. 그보다는 회사의 문제가 무엇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상담자들이 대부분 노동조합 설립에 성공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여하튼 저는 이런 경우 노조 설립절차에 대해 잘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음…그거요 간단히 서류 몇 장 작성하면 끝입니다, 쉽습니다"라고 어물쩍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런데 노조를 만드시려는 결심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사업장에 어떤 문제 있습니까?"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회사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면 아무래도 노동조합이 있어야 하니까"라고 모범답안처럼 답변하고는 "근데, 기업별노조 지역별노조 산별노조가 어떻게 다른 것이죠?"라고 되묻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간에 질문만 서 너 번 오고 갑니다.

어쩔 수 없이, 노동조합에 대해 설명을 시작합니다.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 단체협약의 차이, 교섭의 과정과 쟁의행위의 필요성 등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사용자들이 노동조합을 괴롭히는 여러 방식들에 대해 예를 들어 몇 가지 설명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임금체불 구조조정 계획 등 사업장의 문제점에 대해선 결국 한 가지도 듣지 못합니다. 진지하게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 노동조합 왜 만들려고 하시는 거죠?" 그제서야 답을 듣습니다. 전국에 흩어진 네트워크 관련 회사인데, 전체 직원이 100여명 정도 되고 자신은 부산지역 책임자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윗 상사가 노동조합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관리자가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한다고 해서 모두 어용노조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복수노조의 통과와 맞추어 특별한 회사 내 사정이 없고, 동료들과 소통 한번 없이 윗사람의 권유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의도가 너무 의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삼십분 가량 대화를 나누며 오직 노조설립 절차만을 집요하게 묻는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이건 좀.

만약 이러한 것이 저의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개악된 노조법 이후 어용노조들의 생성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일 테지요. 복수노조 시대 민주노조는 어떤 준비들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하여간 상담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만들어질 노동조합이 어용노조일지 민주노조일지 가려가며 상담해야 할 판국이니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양성민 기자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법규부장입니다.

이 기사는 ilabor.org에 게재했습니다.



태그:#정리해고, #관리자, #노조설립, #임금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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