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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날 수 있다면 어디든지 자유로이 갈 수 있을까?
▲ 항공기 날개 새처럼 날 수 있다면 어디든지 자유로이 갈 수 있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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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미뤄지던 제주여행, 출장을 겸해 동장군의 기세가 누그러든 날 비행기표를 끊었다.
공항서점에서 최인호의 에세이집 <인연>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책을 두어권씩은 꼭 넣고 다니는데 수하물을 부칠 때 그만 여행용가방에 들어있는 책을 꺼내질 못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별들은 저마다 신에 의해서 규정된 궤도를 따라 서로 만나고 또 헤어져야만 하는 존재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최인호는 밀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신의 섭리를 인연이라 하고,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 이야기, 안성기, 황순원 선생 등등과 관련된 인연들을 읽으며 나도 '인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자리를 찾아가니 창가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신다. 할머니에게 눈인사를 하고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제주에는 무슨 일로 감수꽈?" 할머니가 묻는다. 건성으로 "아, 예 그냥 여행 좀 하려고요"대답을 했다. 나는 최인호의 에시이집 <인연>을 더 읽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을 하자 할머니는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간혹 농으로 젊은 아가씨들보다는 할머니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맨날 친하게 지내는 면면을 보면 할머니들이 많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낚이는 것일까(?)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것도 '인연'인데 하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거의 30분 이상을 할머니가 이야기 했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자 곧 제주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기내방송이 나온다.

오랜만에 나선 제주여행... 빨강색 애마를 타고 달리다

할머니는 제주에서 나서, 자랐고, 시집을 갔으며 3남매를 명문대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손주들도 이번에 일류대학에 원서를 넣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고, 작은 손주는 과학고에 다니고 있단다. 강남에 있는 아들 집에서 일주일 있다가 제주도에 가는 중인데 서울을 살 곳이 못된다고, 귤농사만 지어도 일년에 이삼천은 족히 되니 늙은이 혼자 쓰기는 넘친다고 하신다. 그냥, 자랑치레하기 위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할머니의 인상을 보니 알 것 같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것 같았다. 딱히 갈 곳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까 했더니 사위가 마중을 나오니 걱정하지 말라시며, 집주소를 일려주면 귤을 보내주신다고 하신다. 이것도 인연일까?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로 사양을 하고, 50여 분간 옆자리에 앉았던 인연을 털어버리고 제주공항으로 나섰다.

2박 3일 제주여행의 동반자가 될 빨간 애마
▲ 렌트카 2박 3일 제주여행의 동반자가 될 빨간 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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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지인들이 많다. 민폐를 끼치려 마음만 먹으면 전화 몇 통이면 잠자리며 차량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민폐도 민폐려니와 받은 만큼 뱉어내야 하는 법이다. 이번 여행은 출장겸 온 것이고 오랜만에 카메라도 제대로 챙겨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꼭 담고 싶은 곳들을 정해 놓았는데 대중교통편이 닿지 않는 곳이고, 필요할 때마다 택시를 타면 요금이 더 나올 터이다. 소형차를 렌트했는데 받고 보니 빨강색이다. 서울이었으면 기겁을 했을 텐데, 제주라서 그런지 오히려 맘에 든다. 늙으면 빨간색이 좋아진다고 하더니만, 너도 이젠 늙어서 주책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제주에 도착했습니다. 내일 약속시간까지 모슬포에 도착하겠습니다. 차량은 렌트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무슨 차로 했어요?"
"소형차예요. 받고 보니 빨강색이네요."
"에이. 좀 큰 차로 하시지 그랬어요."

'글쎄, 혼자 여행하는데 큰 차가 필요할까, 이 정도도 사치히는 거지'하며, 렌트카를 수령했다. 아,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금 바뀐 게 있다. 연료가 꽉 채워진 게 아니라 조금밖에 없다.

"연료가 15% 남았습니다. 오실 때 이만큼만 채워오시면 됩니다. 남으면 환불 안 되고요. 모자라는 것은 돈으로 내셔도 됩니다."
"아따, 어렵네. 차라리 만땅이면 공항 가까운 주유소에서 넣고 오면 되는데, 이건 맞추기가 보통 어렵지 않겠는데요?"

장삿속이 보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렌트카를 반납할 때 25%가 남았으니 10% 정도, 대략 5천 원정도 손해를 봤다.

제주의 날씨는 완연한 봄날 같았다. 도두동 바닷가에 가서 제주에 온 기념으로 첫 샷을 날렸다. 제주의 바다배경에 빨간 애마를 새겼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 맑은 바다를 보여주었다.
▲ 도두동 바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 맑은 바다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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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내음이 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스쳐오자 제주에 왔음이 실감난다.
▲ 내도바다 바다내음이 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스쳐오자 제주에 왔음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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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맡아보는 제주바다의 향기다. 최근 몇년간 제주를 떠난 후 올 때마다 제주도는 정을 떼려는지 태풍이 오고, 비가 오곤 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제주를 담을 기회를 주질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날씨가 정말 '베리 굿!'이다.

고내리어촌계 공동어장 포구에 있는 등대
▲ 등대 고내리어촌계 공동어장 포구에 있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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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내리 어촌계 공동어장 근처의 작은 방파제, 그리고 붉은 등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 그것은 어쩌면 상대적인 것이어서 늘 멀리 있을 때 더 그리워지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백설의 눈에 덮혀있는 한라산
▲ 한라산 백설의 눈에 덮혀있는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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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103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는데, 제주도도 이번 겨울 만만치 않게 눈이 내렸다고 한다. 눈 덮힌 한라산, 백록담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해안가에서 바라보아도 백록담이 이렇게 한 눈에 들어오는 날씨니 참으로 좋은 날씨다.

그런데 카메라에 전원부족 표시가 들어온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생각해 보니 카메라 충전기를 챙기질 않았다. 이런 낭패가, 카메라 배터리 여분도 없는데 충전기가 없으니 어쩐다. 몇몇 지인을 생각해 보아도 나와 같은 기종의 카메라를 가진 지인은 없는 것 같다. 이제 일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충전기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고민을 하다 제주시 탑동에 있는 카메라 가게로 가기로 했다. 조금 급하게 갔다오면 일몰을 볼 수 있는 시간대에 바다에 올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가는 길에 '혹시라도 충전기가 없으면 어쩐다, 충전기를 사도 충전을 할 곳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어쩐다….' 이런저런 고민에 마음만 급해지고, 핸드폰 충전기만 챙겨준 아내가 괜시리 미워진다. 일단 충전기를 구하면 급한 대로 공중화장실 같은 곳에서 충전을 시키거나, 음식점에서 충전을 시키고 저녁을 먹자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탑동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아저씨, 카메라 충전기 있나요?"
"예, 어떤 걸로 드릴까요?"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사용하는 충전기와 다른 것이다. 범용충전긴데 박스를 열어보니 차량용 잭까지 들어있다. 순간, 배터리충전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몇 번 배터리가 충분치 못해 먼 곳에 갔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는데, 차량용 잭이 딸린 충전기니 이런 충전기는 하나쯤 더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서둘러 차를 몰았다. 원래는 한림에서 비양도를 바라보며 일몰을 볼 생각이었으나 거기는 너무 멀다. 일몰의 붉은 빛은 이제 20분 정도면 시작될 것이다. 탑동은 좀 그렇고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보자 생각하고, 차량용 충전기에 배터리를 충전시키며 바다로 향했다. 배터리 충전기를 껴야하니 내비게이션을 포기해야 한다. 제주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 망정이지, 제주지리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면 낭패를 볼 뻔했다.

아, 그런데… 아직 포인트가 될만한 바다가 나오질 않았는데 하루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제주도에 매일 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점점 급해지니 제주의 멋진 풍광들이 그냥 스쳐지나가 버린다. 과연 제주의 첫날, 일몰을 담을 수는 있을까?

(기사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2박 3일간 제주여행을 하며 담은 사진들과 느낌을 단기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태그:#제주도, #이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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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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