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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남 해남 미황사를 소개하기 꺼려했던 것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많이 알려진 너무나 아름답고 유명한 절이어서 혹 변변치 못한 사진이나 글로 행여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 때문이었다.

 

많은 절이 뒤에 웅장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절 이름 앞에 산 이름을 붙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미황사의 달마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커다란 바위들이 솟아 아름다운 암릉을 이루고 있어, 마치 백두대간이 쉬임없이 달려오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음을 아쉬워하며 마지못해 느낌표를 찍은 것 같다.

 

보수하고 나서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대웅보전의 단아하고 고졸한 모습은 달마산과 어우러져 어느 하나라도 그 자리에 없었다면 얼마나 허전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또한 대웅보전 주춧돌에 새겨진 각종 물고기, 게, 연화문 등은 절을 찾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탈 수밖에 없는 부조가 돌의 강도가 너무 약해 몇 해가 지나면 흔적조차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응진전도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인데 절 마당에서 쳐다보면 대웅보전과 달리 크기는 작지만 화려하게 단청을 하고 돌계단으로 연결된 3단 석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 2개의 계단은 곧바로 연결되고 맨 윗계단은 옆으로 비껴서 있어 한숨을 쉬고 올라가게 함으로써 동선을 한번 끊어, 석축이 비교적 높은데도 불구하고 위압감을 주지 않고 여유와 소박한 맛을 낸다. 이 석축은 가을에 보면 담쟁이가 붉게 물들어 전혀 석축 같질 않고 꽃담 같아 응진전 단청과 잘 어울린다.

 

부도밭은 10여분 숲길을 따라 가는데 맑은 날보다는 비오는 날이 더 운치가 있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숲길은 비안개에 젖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갈 수 있다. 숲길을 걷다보면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달마산을 배경으로 얕은 기단 위에 꽃담을 'ㄷ'자로 아늑하게 두른 부도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갈 길이 바쁘더라도 그냥 휘 둘러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감상을 해보자.

 

미황사 부도밭은 부도 수가 많고 유난히 동물 부조가 많다는 점에서 대흥사 부도밭과 비슷하다. 물고기, 게, 자라, 오리 거기에다 도깨비 얼굴, 용머리, 불로초까지.

 

광화문의 해태와 인사동 상징물로 가져다 놓은 석장승까지 없애 버리겠다는 각박한 세상인데 불교와 별로 관계도 없는 상징물을 부도나 대웅전 주춧돌에까지 만들게 한 것을 보면 손주가 수염을 뽑는데도 허허 웃는 할아버지의 인자함이 연상된다. 그것은 나 혼자 살겠다고, 나와 맞는 사람하고만 사귀겠다고 악쓰는 냄새나는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면서 향기가 나는 그런 격조 높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다고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미황사, #미황사 부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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