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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침마다 전화를 합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께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하는 참 희한한 집입니다. 어제도 아침 일찍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하면 아침을 먹었는지, 춥지는 않는지 묻는데 우시면서 막내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난해 추석때 찾아 뵐 때도 건강하셨고, 2주 전에는 마흔여덟 살 먹은 외사촌 누나 결혼식에 참석한 분이 갑자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애미야! 니 막내 외삼촌이 세상을 떴다."

"예!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구요. 언제 돌아가셨는데요."

"어젯밤에 화장실 갔다가 고마 쓰러졌다고 한다."

"여보 막내 외삼촌이 돌아가셨대요."
"아니 지난 번 추석 때 뵈었는데, 그리고 2 주 전에 외사촌 누나 결혼식에도 오셨는데."

 

알고보니 고혈압을 지병으로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올해 예순아홉 살인 외삼촌은 서부경남 최고 명문이었던 진주고등학교에 다녔을 만큼 머리가 명석하셨고 공부도 굉장히 잘하셨습니다. 어릴 때 외삼촌께 공부 못한다고 꾸지람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장례식장에 갔는데 어머니는 벌써부터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외삼촌이 네 분 계셨는데 세 분은 회갑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막내 외삼촌이 유일하게 예순 아홉까지 사셨습니다. 외가쪽을 보면 그래도 오래 사신 것입니다. 어머니와 열 살이 차이납니다.

 

어머니 연세가 다 그렇듯이 어머니는 열 살 아래 막내동생을 만날 업고 다녔습니다. 외할머니가 고기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막내 동생에게는 누나이면서 엄마 역할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막내 외삼촌 공부시킨다고 어머니는 학교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업어 키운 동생이 자기 보다 먼저 갔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니가 먼저 가면 어떻게 하노. 애비야. 니 외삼촌이 내보다 먼저 갔다."
"사람 생명을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나요."
"내가 애비 너 외삼촌을 업어 안 키웠나. 외할머니가 만날 고기 장사 한다고 밥을 했나, 아기를 돌보나. 내가 다 했다 아이가. 특히 막내 외삼촌은 내가 옴마(엄마)였다. 옴마."

"나도 갑자가 돌아가셔서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어요."
"외삼촌이 화장실에 갔는데 하도 안 와서 외숙모가 가보니까.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병원에 실려갔는데 이미 돌아가셨던 모양이다. 내가 몸을 만져 보니 뼈만 남아 있더라."

 

외삼촌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는 이제 눈물마저 멈췄습니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열 살 아래 동생을 업어 키운 누나도 동생을 먼저 보내면서 가슴에 묻는 것 같습니다.

 

 

외삼촌을 마지막 보내는 날, 날씨 마저 춥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싱크대 개수구가 얼었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내가 말했는데 우리동네 기온을 보니 영하 12.5℃였습니다. 바깥날씨는 영하 12.5℃였지만 외삼촌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1시간 30분만에 한 줌 재가 되어 훨훨 떠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슬퍼하지 말고, 마음을 추스려 몸과 마음을 하루 빨리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태그:#외삼촌, #어머니,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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