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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다닌 시간이 벌써 20년이 흘렀다. 나름대로 지니고 다니는 장비도 세월에 따라 많은 변화를 했다. 처음에는 그저 글 하나 쓰기 위해 다니고, 부탁받은 책을 쓰기 위해 다녔으나, 어느 순간엔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사명감이 생겼나 보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간 답사 길이, 어느새 20년이란 세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남들은 '저 좋아서 하는 일'로 평가를 해버린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누가 돈을 줄 테니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일이다. 그만큼 답사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천후와 싸워야 하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깨지고 찢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녀온 자료들이 부지기수이지만, 내 생각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다녀야 한다는 욕심이다.

 

눈이 쌓여 갈 수가 없네

 

 

답사를 하는 날은 꼭 일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 멀리 나갈 때는 보통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 일정을 잡는다. 그래보았자 세세하게 조사를 하면, 겨우 10여개 자료를 들고 올 뿐이다. 그렇지만 그 소중한 문화재를 사진으로나마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그 사진들이 작가들이 찍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답사를 하는 것은 우리 문화재가 잘 보존이 되어있는지를 먼저 보기 때문에, 자료로써 충실하면 되기 때문이다.

 

답사를 나가면 힘이든 것은 둘 째 치고, 그 경비 또한 만만치가 않다. 한번 나가면 적지 않은 경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날 때면 짐을 싸들고 나가는 것은, 나이가 먹으면서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라도 더 많은 자료를 남겨야겠다는 나만의 욕심이다. 답사는 어느 계절이나 편하지가 않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눈 속에 얼음이 얼어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발 하나 잘못 디디면 그대로 미끄러지기 일쑤다. 깨어지고 멍이 드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겨울에 강원도 지방을 답사하는데, 눈이 쌓여 길이 열리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두 시간 넘게 걸어왔는데, 여기서 포기를 할 수는 없다. 쌓인 눈을 헤치고 걸어가는데 숨이 턱에 찬다. 무릎이 빠지도록 쌓인 눈이다. 마음속으로는 딱 그만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발은 제 멋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답사를 다니면서, 내 몸이 제 각각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눈을 헤치고 한 시간여를 걸어 찾아간 곳. 그러나 정작 문화재가 있다는 곳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이럴 때는 정말 눈물이 난다. 몇 시간을 눈길을 헤치고 찾아 왔는데.

 

빗속에서 날이 저물고, 상여막에서 하루 밤을

 

 

비가 오는 날은 답사를 하기에 좋은 날이다. 남들은 비가 오는데 무슨 답사를 하느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내가 비가 오는 날 답사를 좋아하는 것은, 석재에 조각을 한 형상이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늘 비가 오는 날 나가는 것은 아니다. 답사 길을 나섰는데 비를 만나면 돌아 올 수가 없다. 빗속에서 답사를 계속한다. 이렇게 문화재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보면 날이 저문다. 그때가 제일 답답하다. 길도 잘 안보이고, 사진을 찍어도 제대로 찍히지도 않는다. 평지에 있는 문화재라면 다음에 찾아간다고 하지만, 산 속에 들어가 있는 문화재를 찾다가 비를 만나고 날까지 저물면 대책이 없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몇 시간씩 산속을 헤매다가 만나게 되는 집들이 있다. 바로 상여막이다. 상여막을 만나면 안심이 되는 것은, 근처에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을로 들어갈 수는 없다. 비를 맞아 초췌해진 모습 때문이다. 상여막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 여기저기 찢긴 곳에 연고를 바른다. 답사 길에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이 바로 붕대와 연고다. 그렇게 비를 피한 상여막. 남들은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물론 무섭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상여막이 정말 행복한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더위를 먹고 허기도 지고

 

 

문화재가 평지에만 있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문화재가 있는 곳까지 차가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문화재는 논두렁에도 있고, 길이 미끄러운 계곡에도 있다. 물을 건너야 할 때도 있고, 산을 올라야 할 때도 있다. 여름 철 산길 2km를 걸어 오르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산위에 있는 고찰이나 문화재를 찾아가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을 해야 한다. 자칫 날이 저물거나, 길을 잃으면 낭패를 당하기 때문이다. 해발 1000m 가까이 있다는 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장마가 끝난 뒤 더위가 시작하는 철이라, 물 한 병을 들고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오르기 시작한 산길. 산을 올라 겨우 문화재를 찾아 사진 몇 장을 찍고 돌아서 내려오는데, 해가 넘어간다. 이때가 가장 두렵다. 오르는 길이 오솔길이라 자칫 길을 잘못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 산을 오르면서 속도를 낸 것이 화근인지.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더위를 먹은 것이다. 거기다가 오랜 시간을 산을 올랐으니 허기도 졌다. 이럴 때는 정말로 눈앞이 캄캄하다. 늘 혼자 떠나는 답사 길이라 일행도 없다. 산을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굴러 내려왔다. 겨우 마을을 찾아 약방으로 들어갔더니 더위를 먹었다고 한다. 이럴 때는 다음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돌아와야만 한다.

 

참 모두를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며칠 낮밤을 새워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힘들게 돌아다니면서 답사를 한다. "문화재 답사 그거 재미있지 않아?"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글쎄 재미로 봐야하는 것일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만큼 힘든 일이 현장답사다. 요즈음 날이 무척이나 추웠다. 그럼에도 답사를 나가는 것은, 내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보지 않아도 그곳에 문화재가 서 있기 때문이다.


태그:#문화재답사, #20년, #되돌아보다, #눈,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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