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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30일 한진중공업지회 100여명의 조합원이 서울 갈월동 본사 앞에 모여 ‘한진중공업 불법해고 규탄 및 09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지난 해 12월30일 한진중공업지회 100여명의 조합원이 서울 갈월동 본사 앞에 모여 ‘한진중공업 불법해고 규탄 및 09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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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선소 노동자들은 부산, 목포, 울산 앞바다에서 자신들이 만든 배가 선주에게 인도되지 않고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의 경기가 축소됨에 따라 이들 지역 수출이 위축되자 원자재를 운반하는, 기술력이 많이 필요 없는 중소형 벌크선의 계약 취소가 봇물처럼 몰아쳤다. 최근에는 대형화물선인 컨테이너선의 계약취소 및 인도연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조선소 노동자들을 노리고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 서막

지난해 초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났다. 한진중공업은 컨테이너선 주력업체인데 벌크선과 더불어 물동량이 축소되면서 신규 수주가 거의 없었다. 첫 희생양은 사내하청 노동자들. 회사는 이들의 성과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또 협력업체에 '최저입찰제'를 실시해 가장 낮은 가격을 매긴 업체와 계약을 맺겠다고 압박했다. 10% 안팎에서 최대 30%까지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결국 12개 업체가 폐업했다. 그 다음 희생자는 신입사원. 회사는 취업규칙을 바꿔 신입사원의 수습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12개월로 변경했다. 수습사원 월급도 급여의 90%에서 80%로 삭감하려 했다.

결국 지난달 11일 한진중공업은 23일까지 근속이나 연령과 관계없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나섰다. 회사는 한 술 더 떠 지난달 18일에는 희망퇴직자를 포함해 전체 정규직의 30% 이상을 인력 구조조정하고 기술본부를 분사하겠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2800여명이다. 1300여 조합원 중 절반이 공장에서 내쫓길 위기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무려 4277억 원 흑자였고, 지난해 3분기 이익잉여금이 무려 1686억 원, 누적 당기 순이익은 1056억 원이었다. 가동률도 신조선의 경우 86.6%, 특수선은 무려 110%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경기 축소 책임을 떠넘기겠다고 하고 있다.

SLS조선에서도 지난해 초부터 회사의 공격이 들어왔다. 회사는 구조조정, 임금삭감, 무분규를 요구했다. 이를 지회가 거절했다. 그 뒤 사장은 외주업체 공사대금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됐고, 회장은 부실회계 조작 혐의로 불구속 재판 중이다. 그러자 회사 채권단은 결국 지난달 18일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채권단과 회사가 지회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구조조정 동의서'다.

국내 조선소 모두 구조조정 가능성

지난 해 12월23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 모인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이 '졸속매각 반대'를 외치고 있다.
 지난 해 12월23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 모인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이 '졸속매각 반대'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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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1587억 원에 달해 전년 대비 48%나 증가한 대우조선 역시 사내하청업체 8~9개 이상을 계약해지 했고, 이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퇴직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2664억 원으로 전년 대비 87.1% 증가한 삼성중공업 역시 물량 축소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먼저 내보내고 있다. 영업이익이 55% 증가해 5317억 원을 챙긴 현대중공업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 사이에서 3000명 계약해지설이 떠돈다.

한편, 현대중공업과 달리 현대미포, 현대삼호중 등은 자체 영업망을 갖고 있지 않다. 현대중공업에서 수주해 온 것을 배분받는 구조다. 때문에 만약 수주가뭄이 계속된다면, 현대중공업은 현대중, 현대미포, 현대삼호중 중에 어딘가를 손보고 싶어할 가능성도 있다. STX조선의 공격적인 해외공장 확장이 대우그룹 김우중의 신화처럼 불꽃처럼 한순간에 꺼질지도 모른다. 변덕스런 시장과 경제 상황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대우조선에서는 매각을 노조의 영향력을 축소 및 분쇄할 기회로 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재작년 초까지만 해도 한국 조선업의 전망은 장밋빛이었다. 그런데 최근 왜 이럴까. 그것은 바로 장밋빛 조선호황 그자체가 배경이다. 2003~2007년까지 조선업은 최대 호황을 맞이했다. 지난해 7월 수주잔량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미포조선, STX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이 1위부터 6위까지 차지했다.

자본의 위기 노동자에게 전가... 투쟁 서막

국내 조선업체들은 2003∼2007년 중 수주량이 연평균 14.9% 증가했고 건조량은 연평균 11.8%, 수출액은 24.4%, 설비투자는 무려 36.7%나 증가했다. 조선소들은 넘치는 수주를 해결하기 위해 야드를 확대하고 해외공장을 마구 짓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선박수요는 3960만CGT로 예상되는데도 전 세계 조선업계의 건조능력은 2012년에 이미 5000만CGT를 넘어설 전망이다.

생산설비가 과잉생산 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태에서 2008년 9월 미국 발 경제위기는 큰 타격을 줬다. 재작년 11월 이후 선박 수주가 뚝 끊기면서 수주가뭄이 1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 선박과 이를 짓기 위한 생산설비가 과잉 생산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위기. 바로 자본의 과잉생산의 대가가 노동자에게까지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는 지난달 30일 조선업종분과 대표자회의가 열어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마련에 돌입한 상태다. 이날 참가자들은 구조조정 압박이 한층 심각해 질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에 노조는 분과차원의 공동요구를 만들어 공동교섭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해외공장 대응 사업, 건강권 확보 사업, 1사1조직 및 원하청 공동투쟁, 산별전환 지원 등도 함께 추진키로 했다. 당장에는 한진중공업과 SLS조선에 대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에 노조는 이날 <조선업종분과대표자회의>를 '조선구조조정 분쇄 공동투쟁본부'로 전환했다. 경제위기를 빌미로한 노동탄압에 대응키 위한 투쟁 서막이 오르고 있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어쩌면 87년 이래 가장 심각한 구조조정 투쟁 폭풍 앞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ilabor.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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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선산업, #금속노조, #구조조정, #대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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