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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콩 농사를 짓는데 그 아내가 시장에서 콩을 사 왔다. 밥 지을 때 별미로 넣고 싶어서, 남편이 콩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사 왔다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기막혀서 허허, 하다가 "잘했네, 잘했어"하고는 그 밥을 두 그릇이나 먹어치운다.

 

그는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한 시간 전에 트랙터로 땅을 갈던 사람이 어느새 동물들 먹이를 주고 있는가 하면, 또 어느새 차로 한가득 배추를 뽑아 싣고 와서 절이고 있기도 하고, 방에서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열심히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또 어느새 농장을 돌아보며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기도 하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 모든 자리에는 거의 언제나 아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깡패라고 말한다. 면전에서는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가 없는 곳에서 그를 얘기할 때 "그런 순 깡패 같은..."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댄다.

 

금년 나이 54세 강대동. 고창군 무장면 소재지의 고향으로 이를테면 귀향을 한 그는 입이 바르고, 또한 빠르다. 자기 자신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사람들의 것을 사술로써 함부로 취하고자 하지 않고, 행정관서의 허술한 점을 이용해서 부당이득을 취하고자 하지 않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사술을 부리려 한다거나 공익자금을 사사로이 유용하려 하는 낌새를 발견하면 모르는 채 그냥 넘어가지를 않는다. 상대가 누구건 따지고 덤빈다. 토호들의 눈으로 보자면 그런 깡패가 없는 셈이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가 욕심쟁이라고 말한다. 면전에서는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깡패 같은 그가 어떤 무기를 휘두를지 모르기 때문에 없는 곳에서만 "그 욕심쟁이, 욕심쟁이"하면서 입맛을 쩍쩍 다신다.

 

사실로 그는 욕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논도 밭도 자기 소유는 얼마 안 되면서 매년 적어도 삼사만 평씩의 남의 땅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는다. 동물에 대한 욕심은 어찌나 많은지 값도 비싼 희귀종 가금류가 수십 종 수백 마리에 이르고 당나귀니 산양이니 토끼 같은 초식동물은 물론이고 온갖 종류의 개들로 농장이 넘쳐난다.

 

그 많은 동물들을 그는 사료값은 거의 들이지 않고 먹여 살린다. 육식이나 잡식성 동물은 양계장에서 압사당한 닭들을 얻어다가 삶아 먹이기도 하고 각종 식당을 돌며 잔밥을 거둬다가 먹인다. 채식성 동물들은 팔리지 못해 밭에 남아 있는 배추나 무를 뽑아다가 먹인다. 그래서 그는 어떤 날은 쓰레기 처리 전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많은 일로도 그는 만족하지 않고 남의 일을 맡아서 처리해낸다. 수학기에는 콤바인을 몰고 이 논 저 논을 누비고, 논갈이 철에는 트랙터를 몰고 다니며 밤을 샌다. 한창 바쁠 때는 트랙터 위에서 잠깐씩 토막잠을 자면서 사흘 나흘씩 철야작업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를 욕심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일 년 수입은 아마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매년 손익계산은 적자요 빚의 증가일 뿐이다. 그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백 퍼센트 영세 농민들이다. 잘해야 열댓 마지기, 아니며 대여섯 마지기씩의 농사를 짓는다.

 

그런 궁핍한 살림살이의 정도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때문에 차마 단가를 올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콤바인이나 트랙터나 기름을 먹어야지만 움직이는데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매년 기름값으로 지불하는 돈이 기천 만원인데 남의 일을 해주고 들어오는 수입은 그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렇다고 아니한다고 거절을 할 수도 없다. 농사꾼이래 봐야 태반이 노인들인데 그 앞에서 '아니오' 소리를 어찌 한단 말인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은 그를 가리켜 '봉'이라고 한다. 술자리 같은 데서 당당하게 대놓고 말한다. 너 같은 봉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그는 낄낄거리며 웃어댄다. 사실로 그는 봉 같기도 하다. 그가 봉이라는 근거를 들자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농사를 많이 짓기도 하지만 손이 커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농장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온갖 종류의 비료나 농자재 같은 것들을 말없이 가져가는 손이 있다. 심지어는 차를 대놓고 기름 탱크에서 기름을 넣어가기도 한다. 물건이 워낙 많으니까 주인도 모르겠거니 하는 짓이겠지만 주인은 다 안다. 그것도 모르면 농사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차마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 짓 그만하라고,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가 봉인 결정적인 근거는 남의 보증을 많이 서 주었다는 것일 게다. 대부분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이 먹고 살겠다고, 뭐든 해보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수 없어 그러자, 하고 찍어준 도장들의 개수만큼이나 그는 무거운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자기가 쓰지도 않은 돈의 이자를 갚은 것만도 수백, 수천 만원이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이자는 이자를 낳고, 원금은 또 계속 이자를 불려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지난해 그의 모든 논과 밭과 그리고 집이 경매에 부쳐졌다. 그는 이제 태어날 때 그러했던 것처럼 빈털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밤낮을 모르고 일에 몰입한다.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당나귀나 개를 끌어안고 뽀뽀하고 얼굴을 비벼대고 귀때기 같은 특정 부위를 입에 넣어 잘근잘근 깨물어대기도 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는 그러한 행위 그 자체를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는 동안에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을, 저절로 나오는 웃음소리를, 눈물을 수집에서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불쑥 한 번씩 내놓는 그의 이런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나는 아마 천 년은 살 거요. 이렇게 새빠지게 일하고도 재산보다는 빚이 훨씬 많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천 살도 못 산다면 어쩔 것이요."

 

너무나도 억지스러운 그의 이런 말이 하나도 억지스럽지 않게 사뭇 당연하게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튼지 그렇다. 아무래도 그는 죽을 날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시작만 있고 결과가 없는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어서 죽을 것인가. 그렇다. 죽는 사람은 죽어야 할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직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에게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하긴 꿈 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렇다 해도, 꿈의 종류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내가 말이요. 돈 좀 벌어서 불쌍한 사람들 구제하고 싶다는, 허허, 참, 뭐 그런 생각으로 일을 크게 벌였던 것인데 말이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됩디다."

 

도시생활 그만두고 농촌 내려와서 소를 사육할 당시만 해도 동물에 대한 그의 입장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그야말로 사육 개념이었다. 소를 사육해서 팔고 남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자는 꿈, 그런 소박한 꿈은 소 파동을 거치면서 산산히 부서지는 파도처럼 날아가 버렸다.

 

꿈은 그렇게 날아가 버렸지만, 하지만 그는 보다 소중한 것을 얻었다. 살아 있는 존재들의 숨소리와 그 체온을, 기쁠 때는 기쁨을 나타내고 슬플 때는 슬픔을 드러내는 그 눈동자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텃밭에 오이가 주렁주렁 열렸고 가지가 미처 따먹지 못해 늙어가는데도 시장에서 오이를 사 오고 가지를 사 오는 아내의 장보기를 재미있다고 웃어줄 수 있는 여유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그러한 앎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논이며 밭이며 사는 집까지 죄다 경매로 잃어 버릴 입장이 되었다. 이제 머지않아 그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 농장도 내주어야 한다.

 

이쯤 되면 심약한 사람이라면 술로 인생을 달래거나 나도 한때는 이러이러했다고 큰소리나 치는 패배자로 떨어지겠지만, 그는 약하지가 않다. 약해질래야 약해질 수도 없다. 멀리서 배추를 싣고 달려오는 그의 자동차 소리만 들려도 반가워서 노래를 불러대며 바빠지는 거위와 당나귀와 개들과 산양과 칠면조와 공작들이 있는 한, 그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고 세상의 주인이기를 포기할 수가 없다.

 

살아 있는 수많은 존재들의 숨소리 속에 살면서도 여전히 숨소리가 그립고 더 많은 숨소리를 가까이 하지 못해 마음이 바쁜 사람, 그는 분명 과거에 그 어떤 사람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야말로 천 년은 살아야지만 그 개념이 잡힐 그 어떤 삶을.

 

그렇다. 그는 그 어떤 틀에도 규정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신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지금은 딱히 이렇다 할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돈 벌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꿈같은 신념이 있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신념이 한낱 우스개로 치부되는 이 시대에 들어서는 머릿속의 생각을 다 털어내 버리고 몸이 원하는 바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 어떤 행동도 후회는 남지 않는다. 후회 같은 것은 들어설 틈이 없다. 하나의 일을 끝내기도 전에 다른 일이 기다리는데, 눈에 보이는데 후회 같은 일로 소모할 시간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도, 팔자고 심었지만 하나도 팔지 못한 채로 눈 속에 파묻혀 있는 배추를 뽑아다가 일부는 초식동물들에게 주고 일부는 소금에 절인다. 아직 김장을 못했거나, 또는 이런저런 이유로 부득이 김장을 늦춰야만 할 입장이었던 그 어떤 사람의 이름자를 달고 그 절인 배추는 내일이나 모레쯤 택배회사의 분류대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태그:#강대동, #자유인, #당당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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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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