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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무덤 속에서 잠드는 건 고역일까, 감격일까? 책을 손에 들고 잘 정도는 아니어도 책 한 장 안 넘기고 하루를 넘기는 일만큼은 절대 없기에 책무덤은 무덤치곤 나름 부담이 덜하다. 주체할 수 없는 감격까진 아니어도 따스한 감동은 꾸준히 책무덤 속에서 피어오른다.

 

"이 총각, 어젯밤 아주 늦게야 잠든 모양인데, 방금 무슨 꿈을 꿨는지 꿈 이야기나 한번 들어볼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기욤이 그랬을까? 지난밤에 읽은 책 향기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학교에서도 해맑은 웃음만 품에 안고 등교했던 걸까? 좌충우돌 10대 청소년인 만큼 어젯밤에 혼자서 돈키호테라도 된 듯이 누군가를 위해 애써 정의를 펼치다 온 것은 아닐까? 선생님의 얄궂은 호통에 잠이 깬 기욤은 정신이 채 돌아오기도 전에 꿈 이야기 아니 현실보다 더한 꿈 이야기를 서둘러 쏟아내야 할 판이다.

 

"밤 열두 시였는데, 잠이 오지 않았어요." 쉿! 꿈 많은 기욤의 책 여행이 막 열릴 참이다.

 

이다의 슬픈 꿈, 기욤의 잠자는 책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자주 생각에 잠기는 기욤. 그리고 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늘 잠자는 것만 같은 기욤을 깨워주는 래퍼 두두. 둘은 단짝 친구다. 서로 다른, 그래서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는 참 좋은 친구. 기욤의 고민은 두두의 노래를 타고 생기를 얻는다.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마법서'를 풀자면 두두~두 두두~ 흐름을 잡아주는 친구의 노래가 더더욱 필요하다.

 

"그걸로는 네가 꼭 소녀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이를테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 될 수도 있었잖아!"

"내가 도서관 사서였을 때 소홀히 한 책은 청소년을 위한 책뿐이거든. 그때는 그런 책이 재미있는지 몰랐어. 어른인 내겐 그 책들을 감상하는 데 필요한 순수한 영혼이 없었던 거지. 내 실수였는지도 몰라. 지금 와서 되돌리려고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실수...... 너무 늦기 전에 되돌리고 싶어!"

"너무 늦다니?"

"내가 말했잖아, 내겐 살 날이 그리 많지 않아......"

 

아직은 아니다, 절대! 기욤은 결코 '잠 들 때'가 아니다. 어려서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꿈 많은 기욤은 그럴 수 없다. 그런데, 기욤은 누군가를 깨워주고 싶어 한다. 기욤이 보기엔 제 또래 아이인 것 같은데 정작 "여든 넷"이라고 말하는 꿈 많은 '할머니'를. 제 집 창문 너머 보이는 옆 건물 집에서 밤마다 몰래 집을 빠져나오는 생기발랄한 '할머니'의 소원이 어느날 갑자기 기욤의 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러니까 여든 넷이기도 하고 기욤처럼 열다섯 정도일 수도 있는 소녀 이다는 꿈은 많지만 표현은 서툰 기욤에게 마법의 여행을 선물하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린다. 기욤이 이다를 만난 곳은 도서관. 도서관에서 기욤은, 뒤늦게 제 꿈을 깨닫고 이루기 위해 눈물 지으며 애를 쓰는 이다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느새 제 꿈이 될 이다의 이야기를.

 

"...... 그 시절 내겐 버릴 수 없는 열정적인 꿈이 있었어......"

"어떤 꿈?"

"글을 쓰겠다는 꿈."

 

오늘 당장이라도 목에 아무 천이나 두르고 마음껏 날아다니며 친구들을 돕고 싶어하는 꿈 많은 아이가 옆에 있다면, 아이에게 지금 바로 기욤을 만나자고 말해주고 싶다. 이다의 꿈을 안고 함께 마음껏 나는 기욤과 따라 책 속으로. 하늘 높이 날고 싶다면, 그렇다면 더더욱 아이는 책 속으로 뛰어들 일이다. 거기선 진짜 날 수 있다! 꿈도 아이도 마음껏 어디든 가고 얼마든 날 수 있다.

 

얄궂은 선생님 호통에 깨어나 갑자기 시작한 꿈 이야기. 어느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라며 말문을 열었지만 그건, 그건 사실 할머니 이야기가 아니었다. 할머니이지만, 늦게나마 알게 된 꿈을 안고 날아보기 전에는 결코 할머니로만 불릴 수 없는 '소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을 쓰는 사람,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던 이다는 밤마다 무언가를 쓰다 잠이 드는 할머니를 보는 기욤 눈에 갑자기 나타나곤 했던 소녀였다. 할머니가 불을 끄고 잠이 들면 늘 할머니 집이 있는 건물의 문을 열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그 소녀. 기욤은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살짝 공개한 할머니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어느 날 밤 소녀 뒤를 밟았다. 그리고 듣게 된 이다의 꿈.

 

기욤의 꿈, 우리 아이들의 책

 

이다, 그러니까 열 다섯 소녀의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어느새 여든 넷 할머니가 된 이다는 기욤에게 옛 노래 같은 어릴 적 꿈을 이야기해주고 어느 날 영원히 '잠이 들었다.' 소설가가 되는데 꼭 필요한 '마법서'를 찾지 못해 늘 다시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는 밤마다 소녀 이다가 되어 '마법서'를 찾아 길을 나섰던 것. 책과는 그다지 친구하고픈 생각이 없었던 기욤이 책, 그래!, 그 '마법서'를 찾아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다를 위해, 그리고 결국엔 자기 자신을 위해. 어디로? 도서관으로, 책 속으로...

 

랩퍼 두두는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는 것 같지만 기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며 어쩌면 꼭 필요한 선생님일 수도 있다! 두두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이다의 꿈을 살리려 글을 써보려는 (아니,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가 직접 글을 쓴다?) 기욤 옆에서 신나는 박자를 넣어가며 돕는다. 두두는, 이다를 통해 어느덧 제 꿈을 펼치는 기욤의 썩 좋은 동반자이다. 두두의 응원을 타고 기욤은 책을 쓴다, 꿈에 날개를 단다. 그리고 진짜 날아다닌다!

 

글이 서툰 기욤은 못난 글 솜씨 때문에 기괴한 모습의 이다를 만들어낸다. 밤에 만난, 이제는 영원히 잠든 이다의 환영이다. 장난기만 가득한 것 같지만 언제든 마음껏 흥얼거리는 노랫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님을 증명하는 두두는 제 성격을 닮은 듯한 아디를 만들어낸다. 어떤 이다도 아닌 새로운 이다라고나 할까. 하여튼, '소녀' 이다를 위해 쓰는 글을 타고 나타난 이다와 아디는 기욤과 두두의 새로운 친구들이 되어 정말 책 속으로 뛰어든다. 영원히 '잠든' 이다의 꿈을 통로 삼아 기욤과 두두는 마음껏 꿈의 날개를 펼친다. 책, 책 속에서.

 

"마법서? 무슨 마법서?" 기욤이 되물었다.

"문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마법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도 <어린 왕자>의 주인공도 만난다. 기욤과 두두는 이다와 아디의 도움을 받으며 깨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그래서 더더욱 꼭 잡고 싶은 꿈의 힘을 경험한다. 슬픈 꿈을 안고 '잠든' 할머니를 위해서였지만, 슬픈 꿈에 웃음을 되찾아준 건 바로 기욤과 그의 친구 두두였다.

 

다시 한 아이를 떠올려본다.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구나. 근데 말이야, 할머니의 꿈은 아직 살아있어! 기욤을 봐. 우리도 기욤처럼 책 여행을 해볼까? 책 읽기, 그건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인가 봐. 책 읽기 싫어하던 기욤이 어쩜 저렇게 달라졌을까? 더 읽어볼까? 기욤과 친구가 책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말이야. 우리도 꿈에 날개를 달아줄까? 근데, 네 꿈이 뭐였더라..."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이다는 살아 있다. 기욤의 꿈은 오래도록 잠자고 있었지만 책 여행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기욤은 이제 책 읽기와 글쓰기에 푹 빠졌다. 선생님이 놀랄 정도로. 물론 기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랍다. 책 읽기가, 글쓰기가 정말 그렇게 꿈에 날개를 달아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책은 정말 기욤을 날게 해주었다.

 

오늘, 아이들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지금, 이다의 꿈과 기욤의 책이 우릴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도서관에서 생긴 일> 귀딜 지음. 신선영 옮김. 문학동네, 2004.
La Bibliothécaire by Gudule


도서관에서 생긴 일

귀뒬 지음, 신선영 옮김, 문학동네(2004)


태그:#도서관에서 생긴 일, #귀딜, #외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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