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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직원들의 제지로 농성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날씨에 밖에서 농성 중인 한양대 청소용역 업체 아주머니들. 대부분이 50~60대 안팎의 연령이다.
 경비직원들의 제지로 농성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날씨에 밖에서 농성 중인 한양대 청소용역 업체 아주머니들. 대부분이 50~60대 안팎의 연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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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7~8년, 길게는 10년 넘게 대학교 내에서 청소를 해 오던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여성 직원 31명이 새해를 이틀 앞두고 사실상의 해고조치를 당했다.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이들의 고용 승계를 거부해 일자리에서 밀려난 것. 대학 측은 용역업체의 일이라 떠넘기고 있지만,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은 대학 측이 책임을 회피하는 처사이자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일 오후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대학본부. 경비 직원들에 의해 통제된 건물 로비에서 15명의 청소용역업체 노동자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전날인 12월 31일 오후, 맹추위 속에 대학교 본관 로비 찬바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대부분 50~60대 여성들이었다.

전날 밤 몸이 약해 농성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중 일부는 출입통제 탓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청소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새해 벽두부터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10년 넘게 일한 곳에서 농성으로 맞은 새해 아침

농성 중인 이들은 지난달 30일 한양대 측과 새로 청소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로부터 전화나 문자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개별적으로 통보받았다. 새로 청소 용역을 맡게 된 업체들이 이들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한마디로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한양대 청소용역업체는 지난해 2개였으나, 모두 계약이 해지되고 이번에 새로 3개의 업체가 선정됐다.   

지금껏 용역업체가 3번 정도 바뀌었지만 이들에게는 소속된 업체만 바뀌는 것일 뿐 일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늘 새로 용역을 맡게 되는 업체가 고용을 승계했고, 지난 10년간 한 번도 문제 된 일이 없었던지라 계속 일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일자리를 잃게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이가 일자리를 잃은 것은 아니다. 일부는 새 업체로 고용이 승계됐다. 청소 용역 직원은 모두 64명이었는데, 정원이 55명으로 줄어들면서 구조 조정을 통해 정년이 가까운 사람들과 31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에 대한 고용 승계는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외된 31명은 대부분이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로, 노조 지부장을 비롯한 대의원 등이 모두 고용 승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노조 측은 노조 활동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조치라고 말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업체들이 노조 활동에 거리를 두겠다는 사람만 따로 고용했다"고 주장했다.

10년간 일해왔다는 최병을(60)씨는 "간혹 용역업체가 바뀌었지만 학교가 계약하는 업체만 변경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늘 학교와 새로 계약하는 업체에서 재고용을 했고 하던 일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용 승계가 안 돼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는 일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노조 활동 핵심들은 고용 승계에서 제외돼

한양대 안산캠퍼스 대학본부 1층 로비에서 농성 중인 청소 용역 노동자들.
 한양대 안산캠퍼스 대학본부 1층 로비에서 농성 중인 청소 용역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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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소속된 전국여성노조 경기지부 박성옥 조직국장은 "학교 측과 새로 계약된 용역업체들이 노조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한 적이 있고, 노조를 탈퇴하는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고용한 정황이 보인다"고 말했다. 탈퇴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조합비가 나가는 통장을 없앤 사람들도 여럿 된다는 것이다.

박 국장은 "업체들 일부가 기존 인원의 고용을 위해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외부 사람 끼는 것 싫다. 외부인 없이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여성노조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또 "업체 중 한 곳은 '조합비가 빠져나가는 통장을 해지하고 확인서를 갖고 오라'고 했고 이 지침에 따른 직원들은 재고용된 것으로 안다"면서 "노조 활동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여성노조 측은 선별적 고용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채용 기준이나 원칙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고용이 안 된 사람들에게는 이력서를 성의 없게 썼다거나 인상이 안 좋다는 이유를 들며 10년 넘게 일한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력서에 결혼기념일을 쓴 사람은 '성의 있게 썼다'며 채용됐다"고 말했다. 수긍할 수 있는 어떤 기준도, 원칙도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 청소 용역 직원들이 가입돼 있는 '전국여성노조 경기지부 한양대미화원 분회'는 지난 2004년 결성됐다고 한다. 한 조합원은 "당시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가 노조 활동이 활성화되며 최저임금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8년에는 월급이 고작 2000원 인상되는 데 격분해 노조 가입자 수가 대폭 늘었는데, 현재는 청소 용역업체 직원 거의 대부분이 가입돼 있다"는 것이 노조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재 이들은 9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대학 측이 이런 활동을 불편하게 생각한 것 같다"며 "청소업체들이 학교 측과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고용 승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학 측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

굳게 닫혀 있는 한양대 안산캠퍼스 본관 건물 출입구. 농성이 시작되면서 경비 직원들이 일반인과 취재진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굳게 닫혀 있는 한양대 안산캠퍼스 본관 건물 출입구. 농성이 시작되면서 경비 직원들이 일반인과 취재진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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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학교 측은 "용역업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학교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다"라는 방침이다. 한양대 측 실무 관계자는 "기존에 일하시던 분들이 새로운 계약업체에 고용 승계가 안 된 부분에 대해 학교 측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가 전혀 없다"면서 "도리어 (학교 측이) 계약서상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농성으로 인해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이 '조치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계약된 용역업체가 학교 청소만 잘하면 될 뿐 학교로서는 누구를 써라 말라 지시할 권한이 없고 고용 승계는 새로 선정된 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지 개입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럴 경우 용역업체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 돼 법적으로 문제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용역업체 측도 '이전 업체에 소속된 사람들이지 새로 학교 측과 청소 계약을 한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전 업체 직원들을 승계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용역업체 관계자는 "해고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입사가 안 되었을 뿐"이라며 "같이 일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인원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그렇게 하지 못해 안타까움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용 기준의 모호성 및 노조 활동에 열심인 분들만 선별적으로 채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 "안타깝지만 농성하시는 분들의 주장에 억지가 많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반론할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추운데 고생하지 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규직 전환 않기 위한 학교와 용역업체의 야비한 술책"

대학 측과 용역업체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안산 비정규직센터 정연철 이사는 "비정규직에 대한 권력과 자본의 결탁과 같은 모습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일은 학교 측과 용역업체의 야비함이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분들은 90만 원 수준의 최저임금을 겨우 받고 10년 이상 한 사업장에서 일한 어머님들입니다. 연 예산 수천억에 달하는 대학 측이 10만 원 정도 더 주면서 직고용할 수도 있는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용역으로 돌려서는 모른 체하며 방치하는 것은 비열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강변할지는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법규상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돼 있는 것을 2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업체가 바뀌며 다시 고용하는 형태로 가는 것은 법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술책일 뿐"이라며 "기존 2개였던 용역업체를 3개로 늘린 것은 이런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정규직으로 전환을 꺼리는 학교와 용역업체의 술책이 엄동설한에 초로의 여성들을 거리의 찬 바닥으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이다.

청소 용역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한양대 안산캠퍼스 대학 본관 건물.
 청소 용역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한양대 안산캠퍼스 대학 본관 건물.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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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비정규직, #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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