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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백근 여수 둔전마을 이장. 그는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첫닭'으로 통한다. 그만큼 부지런해서다.
 곽백근 여수 둔전마을 이장. 그는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첫닭'으로 통한다. 그만큼 부지런해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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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동네를 몇 바퀴씩 도는지 모르겄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잔심부름까지 해주고. 그렇게 낫낫한 이장이 없당께."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주민들이 입만 열면 칭찬을 해대는 이는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의 둔전마을 이장 곽백근(59)씨. 그는 오늘도 집에 없다. 마을회관에도 없다. 할머니들의 말에 의하면 "저-기 상수도가 터져서" 거기 갔단다.

곽 이장의 별명은 '첫닭'.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마을일을 돌본다고 주민들이 붙여주었다. 실제 그는 새벽 4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을회관으로 나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보금자리인 방과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쓰레기도 분리해 내놓는다.

그는 회관 청소가 끝나면 마을순찰에 나선다. 밤새 별 일 없었는지, 혼자 사는 노인들은 무탈한지, 추운 날씨에 상수도가 터진 곳은 없는지를 살핀다. 날이 밝았는데도 쓸데없이 불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은 없는지도 관심거리다. 고샅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도 일상이다.

둔전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마을회관에 보건진료소의 이동진료반이 나왔기 때문이다.
 둔전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마을회관에 보건진료소의 이동진료반이 나왔기 때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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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백근 둔전마을 이장과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에 섰다. 오른쪽에서 두번 째가 곽 이장이다.
 곽백근 둔전마을 이장과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에 섰다. 오른쪽에서 두번 째가 곽 이장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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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주인 없이 냄비를 끓이고 있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꺼준 적도 있었다. 주민이 집을 비우면서 가스레인지의 불이 켜져 있는 걸 깜박 잊고 나가버린 것이었다. 하마터면 화재로 연결될 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의 이런 일상이 하루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마을을 돌며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이장이라고 다 같은 이장이 아녀. 그 양반은 특별한 사람이야." 마을주민 오점용(65) 씨의 얘기다.

밭에서 갓을 손질하는 오점용씨. 그는 "이장이라고 다 같은 이장이 아니다"며 곽백근 이장은 다르다고 했다.
 밭에서 갓을 손질하는 오점용씨. 그는 "이장이라고 다 같은 이장이 아니다"며 곽백근 이장은 다르다고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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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전마을 전경. 밭에는 지역 특산물인 갓이 가득 자라고 있다.
 둔전마을 전경. 밭에는 지역 특산물인 갓이 가득 자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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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이장의 진가는 마을길 넓히는 일에서 발휘됐다. 지난 1월 마을주민들의 강권으로 이장이 된 그는 논두렁길 넓히기에 관심을 가졌다.

대상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행정기관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는 길이었다. 마땅한 길이 없어 트럭은커녕 경운기도 들어갈 수 없어 지게를 짊어지고 다니는 주민들의 농사편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길을 넓히겠다고 나서자 농지 소유자들이 반발했다. 길도 좋지만 농지 한 귀퉁이를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곽 이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땅 주인들을 찾아다니며 이해를 구하고 설득을 시켰다. 마지막 남은 한 농가에 대해선 집으로 열대여섯 번을 찾아다니며 결국 동의를 얻어냈다.

새로 길을 놓든 안놓든 상관없는 농로변 농지에 대해서는 현금 보상을 주선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사정을 한다고 해서 '사정 이장'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 때다.

그 결과 두 군데서 논두렁길 270m와 170m가 새로 뚫렸다. 지게를 지고 다니던 길에 경운기와 트럭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 일하기 수월해지고 농작업의 능률도 오른다며 마을주민들이 모두 반겼다.

넓어진 논두렁 길. 곽백근 이장이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넓혀놓은 길이다.
 넓어진 논두렁 길. 곽백근 이장이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넓혀놓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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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전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보건진료소 이동진료팀의 진료를 받고 있다.
 둔전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보건진료소 이동진료팀의 진료를 받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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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이장의 진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지어 수확한 친환경 명품쌀 20여 포대를 각급 기관·단체에 보내 밥맛의 우수성을 체험토록 했다. 마을에서 생산한 쌀의 판로 확대를 위해서다.

마을에 사는 장애인 가정에 쌀을 보내준 것도 그였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잔심부름도 그의 몫이 된 지 오래다. 쌈짓돈을 털어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도 일상사다. 주민들의 대소사는 물론 하찮은 집안일까지도 의논상대가 돼 준다. 그러면서도 싫은 기색이라곤 전혀 내비치지 않는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우리 같은 할망구들한테는 말 한마디 걸어주는 것도 큰 부조여." 김권심(72) 할머니의 얘기다. 하여 할머니들은 이장한테 마음속의 말까지도 다 내어놓는다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곽 이장은 뉘 집 가족사며 숟가락 개수까지도 헤아릴 정도가 됐다.

마을이 유난히 깔끔하고 주민들끼리 다정다감하게 사는 것도 그의 공력이라는 게 주민들의 하나된 목소리다.

곽백근 둔전마을 이장이 골목길에서 마을주민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곽백근 둔전마을 이장이 골목길에서 마을주민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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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이장은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안사람이 이해해주지 못하면 안되는 일"이라며 "안사람이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가능했다"며 부인 박문자(56·마을부녀회장)씨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또 "내가 원래 잠이 없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며 겸손해하고 "앞으로도 마을 어르신들을 보필하면서 논두렁길도 더 넓히고 마을경관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둔전마을 풍경.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다가 잠시 쉬고 있다.
 둔전마을 풍경.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다가 잠시 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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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전마을 전경. 둔전마을은 여수 돌산대교에서 향일암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둔전마을 전경. 둔전마을은 여수 돌산대교에서 향일암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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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둔전마을, #곽백근, #마을이장, #돌산도,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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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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