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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오랜만에 단둘이 있게 되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시는 날이고 친정아버지의 입원으로 친정엄마까지도 애를 봐줄 여건이 안 되어 결국 휴가를 냈던 것이다. 물론 오전에만 휴가를 썼다.

주말은 늘 가족들과 보내 단둘이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터라 조금은 긴장되었다.  더군다나 최근 아이가 점점 나보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만 따르는 것 같아 이번 기회에 만회해 보자는 각오까지 세웠던 터라 단 둘의 시간을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20개월 된 딸은 엄마가 출근해야 할 시간인데도 자기랑 같이 있는게 어색한지 계속 눈치를 살폈다. 딸도 나랑 단둘의 시간이 어색했던 모양이다.

아이야, 엄마랑 있으니 어색하니?

아빠랑 함께 즐거워하는 아이
 아빠랑 함께 즐거워하는 아이
ⓒ 조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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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적인 성향이라 '잡기 놀이'와 '숨바꼭질'을 좋아하는데 일단 아침밥을 먹이고 점수도 딸 겸 딸이 좋아하는 놀이를 시도했다. 할머니랑 할 때는 그렇게 넘어갈듯 웃어대고 폴짝폴짝 뛰어가며 좋아하더니, 나랑의 놀이는 그렇게 흥미가 없나 보다. 그냥 살~짝 웃으며 이내 할머니를 찾는다. '함모니~함모니' 불러도 반응이 없으니 이내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일단 책에서 배운대로 눈을 맞추고 할머니가 어디 가셨는지 그래서 오늘은 나랑 있어야 됨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나 울먹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딸을 달랠 수 있었던 건 나의 부드러운 말투도 따뜻한 포옹도 아닌 '귤'이었다.

일단, 놀이를 통한 유혹은 포기하고 시어머니와 남편이 잘하는 '이상한 표정짓기'를 시도해 보았다. 약간 어눌한 말투와 얼굴 표정을 일그러뜨려 보여주면 뭐가 그리 웃긴지 넘어가듯이 웃어댄다. 나 또한 최대한 나를 망가뜨려 보았다. 결과는 음~ 역시 미지근했다. 

책 읽어줬더니 던져 버리고... 결국 터져버린 울음보

역시, 이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동화책 읽어주기다. 딸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가져와 무릎에 앉혀 읽어주기 시작했다. 동화책은 주로 아빠랑 읽는데 아빠는 항상 동화책에 나오는 물건들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또 '이게 뭐야'라고 질문을 자주하는데 이름을 맞출 때마다 넘치게 칭찬한다. 약간의 쇼맨십을 가진 남편은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편이다.

나 또한 남편이 했던 것처럼 조금은 과장스럽게 읽었내려갔다. 그런데 딸은 책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고 '과자'를 외치며 '주세요, 주세요'라며 떼를 썼다. 그래서 또 책에서 배운대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과자는 안 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역시 통하지 않았다. 딸은 화가 났는지 책을 집어 던져 버렸다.

이런 모습에 나도 화가 났다. 하지만, 내가 읽은 육아책에서는 화가 났을 경우 아이는 어떤 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기다리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참을 그렇게 아이가 화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랬더니 딸은 이내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를 찾았다.

우는 아이를 꼭 안아줬는데, 이 아이는 나에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온 이야기는 '약~~'이다. 이 말은 혹시 약 줄려고 안았냐는 질문이다. 그래서 '약 없다' 하니 두번째 확인에 들어간다. '코딱지'이다. 코딱지 뺄 거냐는 질문인데 딸아이 코에 코딱지가 있으면 난 잠시 정신을 잃고 이를 빼내기 위해 용을 쓰는데 이 과정이 아이에게는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니'라고 얘기하니 마지막으로 '치카치카'라고 묻는다. 딸은 나의 과도한 양치 시도로 상처를 입은 적 있어 그때 이후로 양치할 때마다 울음바다가 된다. 이것도 아니라고 하니 딸은 그제서야 품에 안긴다. 

짧은 단 둘의 시간은 이렇게 끝났다. 오전의 경험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육아에 약간은 '반발짝' 물러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나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내가 주로 악역을 맡아서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었다. 딸이 싫어하는 약 먹이기, 코딱지 빼기, 양치 시키기는 물론이고 문제 행동에 대한 수정도 내가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악역만 맡아온 직장맘, 엄마는 어렵다

그런데 단순히 그 문제는 아니었다. 딸이 좋아하는 놀이는 할머니랑 주로 하고 동화책 읽기는 아빠랑 주로 한다. 결국 내가 하는 건 먹을 것 챙겨주기, 옷 입히기나 씻기기, 잠 재우기 정도라고나 할까. 딸아이와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없어던 것이다. 수유할 때는 수유하는 동안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노래도 불러줬는데, 수유를 끊은 후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니 딸이 나에게 오는 게 달갑겠는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참으로 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따로 메모도 해두며 열심히 공부했다. 물론 그 책들이 도움이 전혀되지 않았던 건 아닌데,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 아이에 대한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책에 나온 기술적인 부분은 우선 마음에 충분한 사랑이 있어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책에서 나온 대로만 시도했다. 다시 말해 기술적인 부분을 흉내만 낸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에 대해 늘 마음을 걸려 했었다. 그런데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해주고 놀아주시는 어머니의 육아법이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건강하게 하는지 또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확인했다.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그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난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빠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가 아이에게 잘 못하는 부분을 잘 채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반성하며 아이와의 소통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 물론 나의 악역은 계속되겠지만...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올립니다.



태그:#육아, #직장맘, #놀이, # 동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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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에서 시민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소통을 위해 여러방면으로..노력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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