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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는 12월 중순에 들어서도 날씨가 겨울답지않게 따듯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겨울다운 한파가 일주일째 전국을 몰아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꽁꽁 언 한강의 얼음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추위가 매서우니 밖에, 특히 한강엔 나오지 말라고 겁을 주기도 합니다. 하얗게 얼어버린 강변과 무심히 지나쳐가는 겨울 특유의 강바람 소리까지 TV가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자전거는 그래서 겨울이 오면 대부분 주인의 집을 지키며 곰이나 뱀처럼 동면을 하지요. 집이 비교적 한강에서 가까워도 기상청의 엄포성 날씨 뉴스에 한강 나들이는 물론 자출(자전거 출퇴근)도 못하고 움츠리던 중에 문득 한강에 얼음이 자주 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제 아버지는 겨울이면 한강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탔다고 하던데 제게는 그야말로 낭만적인 과거로만 생각했었지요. 지구 온난화로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한강에 얼었다는 하얀 얼음이 왠지 반갑고 직접 보고 싶어졌습니다.

강추위속 한강행에 온갖 보온장비(?)가 동원됩니다. 하지만 최고의 보온은 자전거 타면서 몸에 생기는 열에너지입니다.
 강추위속 한강행에 온갖 보온장비(?)가 동원됩니다. 하지만 최고의 보온은 자전거 타면서 몸에 생기는 열에너지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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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불광천에 찾아온 오리들이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힘차게 날개짓을 하고 있는걸보니 좀 춥다고 움츠리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겨울 불광천에 찾아온 오리들이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힘차게 날개짓을 하고 있는걸보니 좀 춥다고 움츠리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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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결심이 변덕스럽게 교차하는 겨울 한강행

다른 계절같았으면 간편한 운동복을 입고 애마와 함께 바로 집을 나섰을 텐데, 한낮인데도 기온이 영하 6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고 하니 각종 보온옷들이 총출동합니다. 두겹의 양말과 장갑은 기본이고 얇은 레깅스에 발토시까지 하고, 버프라고 하는 두건으로 목과 얼굴을 감싸고, 머리엔 멋진 헬맷대신 보통 벙거지 모자라고 불리는 것까지 눌러쓰고..날씨가 날씨인지라 몸의 보온을 위해 자전거족의 멋과 맵시를 잠시 유보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 한강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자 한강의 어린동생뻘인 불광천을 따라 달립니다. 정말 날씨는 매섭게 추워서 얼굴을 가린 버프속으로도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페달를 밟으면서 가쁜 숨을 쉬면 순식간에 안경에 뿌연 김이 서립니다. 저 위 한강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두겹의 양말과 장갑도 소용없이 손발이 시립니다.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후회가 밀려 옵니다. 하지만 겨울철의 달리기나 등산처럼 자전거도 처음엔 좀 힘들지만 참고 나아가면 곧 몸에서 열이나고 추위에 적응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꾹 참고 페달을 열심히 밟습니다.

겨울이 되니 불광천까지 찾아온 많은 오리들이 응원을 하듯 꽥꽥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합니다. 저 오리들은 저처럼 각종 보온옷들을 안 입고도 저렇게 잘들 노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엄살을 핀 제가 부끄러워져 페달을 더욱 힘차게 밟으며 한강을 향해 달려갑니다.

겨울추위에 생긴 새하얀 카펫길이 겨울 강변의 정취를 더욱 깊게 합니다.
 겨울추위에 생긴 새하얀 카펫길이 겨울 강변의 정취를 더욱 깊게 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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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겨울바다에 온듯 강물이 파도처럼 강변을 철썩이고 수면에 반사된 햇살이 눈부심니다.
 정말 겨울바다에 온듯 강물이 파도처럼 강변을 철썩이고 수면에 반사된 햇살이 눈부심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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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와 새하얀 카펫이 반겨주어 좋은 한강의 겨울

부는 바람을 가르며 들어선 한강은 뉴스에서 본 것과 같이 동토의 땅처럼 적막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물론 평소엔 그렇게 많던 낚시꾼들도 아예 안 보입니다. 그리고 정말 강변에는 한낮의 햇살에 비쳐 반짝거리는 하얗고 두툼한 얼음이 얼어 있습니다. 그런 보기드문 풍경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자전거길에서 벗어나 한강가로 내려갑니다.

한강은 어느 지역이든 정부의 끊임없는 개발로 흙과 나무와 모래톱이 있는 자연스러운 강변이나 둔치는 아쉽게도 거의 사라졌지요. 다행히 제가 달리고 있는 한강난지지구에는 작지만 강변같은 강변이 남아 있어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저런 강가를 콘크리트 둔치나 아스팔트길로 바르지 않은 서울시나 개발업체에게 고마움까지 느끼게 됩니다.

요즘 한강가는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개발사업' 이 마무리 되면서 둔치는 자전거와 보행인을 위한 아스팔트길로 채워지고 강변엔 고급스러운 카페나 편의점, 요트장들이 들어섰습니다. 시민들에게 한강을 보다 편하게 오가게 하고자 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한강고유의 자연스러운 정취는 사라지고 아스팔트길과 인공적인 조경물로만 채워진 강변이 과연 좋기만 한 걸까 하는 안타까움은 한강을 오가다보면 누구나 드는 생각일 것입니다.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개발사업'으로 한강변이 더욱 더 아스팔트화, 조경화되면서 강변만의 자연스러운 정취가 사라지니 안타깝습니다..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개발은 언제나 가능할까요.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개발사업'으로 한강변이 더욱 더 아스팔트화, 조경화되면서 강변만의 자연스러운 정취가 사라지니 안타깝습니다..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개발은 언제나 가능할까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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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나무와 갈대가 핀 흙길의 자연스러운 강변길은 이제 한강에서 희귀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강가의 나무와 갈대가 핀 흙길의 자연스러운 강변길은 이제 한강에서 희귀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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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부는 강바람에 저 건너편의 하늘공원위 풍력 발전기들의 날개가 힘차게 돌아 갑니다. 강바람속으로 문득 파도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라 자전거를 세우고 한강가를 쳐다보니 정말 한강물이 바다처럼 달의 인력을 증명이라고 하는 듯 철썩철썩 파도소리를 내며 강변을 치대고 있습니다. 겨울 바다가 좋은건 그 청명하고 속시원한 파도소리이기도 한데 한강가에서 그런 풍경과 마주하니 강추위도 그리 춥게 느껴지지가 않네요.

속은 얼음인 하얀 카펫으로 두른 강가를 따라 애마를 끌고 걸어가 봅니다. 인적없는 한강가에 저 같은 사람 몇 명이 천천히 걸으며 겨울강가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외롭고 황량한 겨울 강변의 느낌은 한강가의 얼음옆에 둥둥 떠있는 겨울철새 오리들을 만나니 기분이 전환됩니다. 얼마나 차가울지 상상도 안 되는 저 강물에 맨발을 담그고 겨울을 나는 오리들을 보니 한낱 날짐승이지만 자연의 신묘함이 느껴집니다.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보이는 행주산성을 향해 열심히 달리다보면 아직 한강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풋풋하고 너른 강변이 나타납니다. 도처에 자라난 갈대와 억새풀들 사이로 난 자전거길을 달리다보면 강가에 작은 어선들도 보이고, 지난 가을에는 어린 고라니가 휙 지나가기도해 놀랐던 강변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날씨 때문인지 평소에 강변 곳곳에 그 많던 낚시꾼들이 한 명도 안보이고 한강이 순연한 모습을 그대로 내보입니다.

저 차가운 얼음물에 맨발로 발을 담그고 겨울을 나는 오리들을 가까이에서 보니 강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저 차가운 얼음물에 맨발로 발을 담그고 겨울을 나는 오리들을 가까이에서 보니 강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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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연 싸움이 취미인 아저씨에게 한강의 겨울추위는 연날리기 좋은 바람을 주어 오히려 고마운것 같습니다.
 방패연 싸움이 취미인 아저씨에게 한강의 겨울추위는 연날리기 좋은 바람을 주어 오히려 고마운것 같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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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강력한 추위에도 몇 명의 나이 지긋한 분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열심히 낚시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낚시대는 명주실이 감긴 큼직한 물레로 방패연을 바람부는 하늘로 날리며 연싸움을 재미나게 하시고 있네요. 쓸데없는 장식은 최대한 생략한 전사처럼 네모 반듯하고 날렵하게 생긴 방패연은 정말 주인 아저씨의 조종대로 상승과 하강을 빠르고 자유자재로 하며 연싸움을 하는데 자전거를 멈추고 감탄을 하며 한참을 구경하게 합니다. 바람이 좋은 한강에서 주로 이렇게 연습을 하며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연싸움 대회에 나간다고 하시는 아저씨에게 이런 겨울추위는 연날리기 좋은 강한 바람을 주어 오히려 반가운 것 같습니다.

사실 겨울은 추워서 그렇지 한강의 입장에 서보면 휴식과 재충전의 계절입니다. 다른 계절엔 도시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걷고 달리고 먹고 마시느라 내내 한강을 힘들게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영하 10도라는 날씨의 한강은 고즈넉한 안정감이 느껴지고 스스로 편안하게 보입니다.

한강을 달려 행주산성까지 오가는 코스는 자전거 동호인들도 많이 애용하는 길이라 그런지 행주산성 밑에는 오래전부터 자전거족을 겨냥한 양이 무척 아니 엄청 많고 값이 저렴한 국수집이 여러곳 있습니다. 저도 오늘 이곳에 가서 뜨끈한 국물과 함께 국수를 후루룩 먹으며 겨울 강변길을 달리느라 언 손발을 녹였습니다. 대접에 배불리 먹은 잔치국수의 힘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보니 뉴스에 내일이나 모레부터 한파가 풀린다고 하네요. 영화제의 레드 카펫 못지않게 눈부신 화이트 카펫의 겨울 강변길이 다시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달린 영하의 한강길 코스는 불광천-한강-난지지구-행주산성 입니다.



태그:#자전거여행, #한강, #겨울, #난지한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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