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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말, 우리나라는 원조의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며 세계 원조의 90% 이상을 제공한다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했다. 비서구권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이고, 도움을 받던 수혜국에서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변신한 세계 최초의 유일무이한 나라가 되었다.

지난 해 제공한 원조규모는 국민총소득의 0.09%였다. 하지만, 오는 2015년까지 0.25%로 끌어올리려 한다. 나라는 이제 돕는 나라가 되었다는데, 우리 나라에는 남을 돕는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잡았을까?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현주소는 어디쯤 와 있을까?

누가 더 많이 할까? 기업 vs 개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에 참여한 이민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에 참여한 이민호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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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월 공동모금회가 집계한 개인 기부금액은 총 769억원으로 전체 금액(1353억원)의 56.9%였다고 한다. 개인 기부가 전체의 95%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이 수치로 보자면 개인 규모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발표한 '2008 유니세프 연차보고서'의 수입내역을 살펴보면, 전체 282억원 중에서 후원회원을 통한 기부금은 222억이었고, 기업모금액은 15억이었다. 공동모금회의 자료를 보면 개인기부금이 현저히 낮은 비율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유니세프의 자료를 보면 개인기부의 규모가 오히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업은 공동모금회의 기부를 선호한다. 유니세프와 같은 단체들은 일반기부금으로 분류되어 5%의 한도 내에서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지만, 공동모금회는 법정기부금으로 분류되어 전액을 공제받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모금회를 통하여 단체들을 지정하여 후원할 경우, 이중의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실, 기부를 기업이 많이 하느냐, 혹은 개인이 많이 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기부금은 1조 6044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0.16%에 불과했다. 미국의 지난해 전체 기부금은 3076억 달러(약 376조8000억원)로 GDP 대비 2.2%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금액으로는 234배,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로는 14배나 높다. 개인과 기업이 기부를 어느 정도 하는지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의 기부문화의 저변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기부천사? 미국은 기업인, 한국은 연예인

가수 김장훈과 션 정혜영 부부는 기부천사로 유명한 연예인이다.
 가수 김장훈과 션 정혜영 부부는 기부천사로 유명한 연예인이다.

지난 달,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교원평가, 트레이닝과 멘토링 등 교사 혁신을 위한 프로그램에 3억3500만달러(약 388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몇 년 간 개인 스폰서 기부액 중 최대 규모라 한다. 9년 전 이 재단이 설립된 이래 소아마비 퇴치, 에이즈·말라리아 백신 개발 등 의료·복지 분야와 함께 빈민지역 학교 짓기, 공공도서관 시설 지원, 장학금 지급 등 주로 교육환경 개선에 많은 기부를 해왔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빌 게이츠를 마이크로소프트사만으로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기업인들의 기부문화는 매우 견고하며 또한 뿌리 깊다. 조지 소로스의 기부가 테드 터너에게, 테드 터너의 기부가 빌 게이츠에게 그리고 빌 게이츠의 기부가 워렌 버핏의 기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주로 기업인들의 기부가 주목을 받는 반면, 우리나라에서 기부천사는 기업인의 몫이 아니다. 가수 김장훈과 션·정혜영 부부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김장훈은 독도 사업을 위해 최근 광고 출연료로 받은 3억 원을 추가로 기부한 데 이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 광고를 위해 10억 원을 모금할 계획을 세웠다. 션·정혜영 부부는 지난 11월, 부부동반 CF 수익금 중 1억 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농구선수 출신의 루게릭 환자 박승일씨에게 1억 원을 기부한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이 주로 연예인들의 선행을 바라보며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다.

기부 활동에도 음모론이 있다? 

기부와 관련된 모든 활동이 해피앤딩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개인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인물로 한 익명의 여배우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곧 누리꾼들의 추적에 의해 이 여배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녀의 가정사를 들어 좌파 음모 논란에 빠지고 말았다.

기부자뿐 아니라 기부를 받는 단체도 구설수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최근에 국내의 몇몇 공익단체에 연쇄적인 후원자 탈퇴 현상이 있었다. 그 단체와 관련된 인물이 뉴라이트와 연관되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상에 돌자, 그 단체의 후원 철회가 가속화 된 것이다.

오늘날은 기부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부를 받는 단체들도 그들이 지닌 진짜 의도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는 시대이다. 정말로 그들이 하는 선행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나 혹은 음모가 숨겨져 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뒤틀려 버린 것일까?

사람들이 바라는 진정한 선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껏 많은 이들이 기부와 선행을 자신의 마케팅 방법으로 사용해 왔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은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기부금을 제의하거나 봉사활동을 했다. 고아원이나 보육원에 가서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면, 언론은 이 사진을 찍어 대서특필했다. 그 동안 우리는 조작된 천사들을 양산해 왔다.

아무도 그들이 정말 선한 의도로 선행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가식과 이벤트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의 쇼에서 감동을 받지 않는다. 이제는 선행을 한다는 그들의 의도를 의심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한 일'들은 '선한 사람'에 의해 '선한 의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지닌 듯하다.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사회적 물의 무마용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부와 선행을 바란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진정한 선행으로 인정하기 거부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진정성은 누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선행과 기부의 진정성은 단발성 행사가 아닌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야 자연스럽게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선한 사람의 선한 의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리고, 선행과 그것을 행하는 이가 동일하게 여겨질 때가 오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기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하기에 칭찬받는 선행들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 된다.


태그:#기부, #기부문화, #기부천사, #김장훈, #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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