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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좀 봐? 이거 게와 거북이 아냐?"

"정말 그러네, 분명히 게와 거북이야, 우와! 그러고 보니 이 절 대웅전 주춧돌엔 게와 거북이가 천년을 넘겨 살고 있었네."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을 살펴보고 있던 일행들이 주춧돌에 새겨져 있는 게와 거북이를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주춧돌엔 정말 놀랍게도 게와 거북이 형상이 선명하다. 주춧돌에 새겨진 이런 문양은 우리나라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주 특이한 일이었다.

 

지난 12월 8일 전남 해남에 있는 달마산에 올랐다. 서울 강동에서 아직 어둑어둑한 아침 7시에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6시간을 달려 오후 1시에 달마산 밑 송촌 마을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가끔씩 바다가 바라보이는 해남의 농촌 풍경은 남도 땅답게 아직도 겨울이 아닌 가을 모습이었다.

 

아직도 상추와 배추밭이 푸른 가을 같은 남도 땅 풍경

 

"우와! 여긴 배추밭들이 그대로 있잖아? 역시 따뜻한 남쪽나라네."

 

산악회원들이 놀라운 듯 감탄을 금치 못한다. 길가에 즐비한 배추밭들은 아직도 수확하지 않고 푸르고 싱싱한 모습 그대로였다. 날씨가 포근하여 배추들이 얼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어느 마늘 밭에는 싱싱한 상추가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내려 산으로 오르는 길가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황토밭과 돌담에 둘러싸인 마을 풍경은 이곳 남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매우 정감어린 모습이었다. 마을 안길에서 만난 노인에게 겨울철인데 배추와 상추가 얼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이곳은 아직 날씨가 포근하여 괜찮다고 한다.

 

등산로 초입은 길이 좋았다. 평탄한 임도를 따라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날씨가 따뜻하여 서울에서 추위에 대비하여 두껍게 입고 간 옷들을 벗어 배낭에 짊어지고 걸어도 전혀 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길은 아주 험해졌다.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이 불규칙하게 널브러져 있는 너덜바윗길은 여간 위험하고 힘든 길이 아니었다. 위쪽을 바라보니 산세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온통 험준한 바위산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남도지역의 밋밋하고 동그스름한 산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웅장하면서도 날카롭게 모난 바위봉우리들이 너무나 위압적이었다. 산길은 그런 바위봉우리들이 무너져 흘러내린 듯 길이라기보다 바위들을 밟고 건너가는 아슬아슬한 모험이었다. 바윗길을 걸어 올라갈 때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어 주변 경치를 둘러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앗!  조심해? 큰일 날 뻔했네!"

 

그렇게 조심조심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앞쪽에서 놀라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사고가 났구나 싶어 잽싸게 다가가보니 바로 우리 일행들이었다. 앞서 걷던 일행 한 사람이 발밑의 작은 바윗돌을 밟는 순간 바윗돌이 기우뚱 엎어지면서 일행이 뒤로 넘어진 것이다.

 

너덜바윗길 오르다가 아차!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면 절대 무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각이 선 바윗돌들뿐인데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바위에 부딪쳤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뒤로 넘어져 바위에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바로 뒤따라 걷던 다른 일행의 허벅지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아이쿠, 죽을 뻔했네."

 

넘어졌던 일행은 너무 놀랐는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 다친 곳이 없느냐고 물으니 엉덩이가 몹시 아프다고 한다. 바위에 주저앉으며 타박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래도 일행의 허벅지에 부딪쳐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오르막길을 다 오르자 능선이 나타났다. 능선 바로 아래 덤불지대에는 빨간 열매들이 지천으로 열려 있어 황량함 속에 화려한 꽃처럼 곱고 예쁜 모습이었다. 능선에 오르자 시야가 시원하게 열린다. 산 아래 바닷가의 작은 마을과 논밭 그리고 해협 건너 완도와 작은 섬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경이 환상적인 풍경으로 펼쳐져 있었다.

 

달마산 줄기는 땅 끝 바다와 완도해협을 뚫고 바다 속으로 깊숙이 뻗어 있었다. 능선에서 잠깐 쉬며 간식을 먹고 너덜바윗길에서 넘어져 위험했던 일행의 상태도 살펴보았다. 일행은 엉덩이가 아프다고 했지만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들 후미그룹이 앉아 쉬고 있을 때 무전기가 삐리리~~ 선두대장에게서 왜 빨리 오지 않고 그렇게 오랫동안 쉬고 있느냐고 성화를 댄다. 능선 앞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달마산 정상인 달마봉에서 몇 사람이 우리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정상인 달마봉으로 가는 길도 아슬아슬한 바윗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완도해협과 땅 끝, 바다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 달마산 능선길

 

바윗길에 유난히 약한 일행이 바위 능선길을 걸으며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아차! 한 발자국 헛딛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끝장인 길이었다. 그렇게 위험한 난코스를 통과하고 작은 바위봉우리를 지나자 억새밭 능선 너머로 정상이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정상인 달마봉은 해발 489미터,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해수면과 별 차이가 없는 지점에서 올랐으니 등산시점이 높은 다른 산과는 단순 비교가 안 되는 산이었다. 정상에 오르자 둥글고 뾰족하게 쌓아 올린 돌탑 하나가 덩그렇다.

 

그래도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바다를 향하여 일망무제로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푸른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 구름 사이로 붉게 비치는 햇살 아래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서울까지 다시 올라가려면 이곳에서 저 아래 바라보이는 미황사로 곧장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후미대장이 하산을 권한다. 달마산은 정상에서도 바다 쪽으로 길게 바위능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른편 산 아래 쪽에는 상당히 크고 웅장한 사찰이 바라보인다. 미황사였다. 옅은 구름이 낀 하늘에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태양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위험하긴 해도 아름다운 능선을 더 걷고 싶었지만 욕심을 접었다.

 

달마봉에서 미황사로 내려가는 길은 처음에는 급경사가 험했지만 곧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미황사에 이른 일행들이 여기저기 절 구경을 한다. 사찰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고색창연한 모습이었다.

 

경내를 둘러보다가 승려 한 사람을 만나 우리나라 불교의 해양 전래설에 대해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삼국시대 중국대륙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바다를 통해 직접 들어왔다는 해양전래설도 있기 때문이다. 이 미황사가 바로 그 해양전래설의 전설이 깃든 절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예, 저 대웅전 주춧돌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거북이와 게, 가재가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해양전래설을 뒷받침하는 흔적들이지요."

 

승려의 말을 듣고 대웅전으로 다가가 앞쪽에 있는 주춧돌을 살펴보니 거북이와 게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오랜 풍상으로 많이 마모되긴 했지만 게와 거북의 형상은 매우 뚜렷했다. 그러나 가재의 형상은 아무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불교의 해양 전래 전설이 깃든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의 바다생물 형상들

 

1692년(숙종 18)에 건립된 미황사 사적비에는 이 절이 신라 경덕와 8년인 서기 749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때는 신라 경덕왕 때, 어느 날 이곳 땅 끝에 있는 사자포 앞 바다에 돌로 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그런데 배는 곧바로 육지에 접안하지 않아 이곳 사람들을 궁금하게 했다.

 

배는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가오기를 반복했다. 의조화상은 백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배가 육지에 접안했다. 배 안에는 금으로 된 사람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항아리와 검은 바위가 있었다. 금항아리에는 각종 경전과 불상들이 들어 있었다.

 

검은 바위를 깨뜨리자 그 속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그런데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바로 금사람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왕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1만 불상들을 안치하기 위해 돌배를 몰고 머나먼 바다를 건너 금강산을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금강산엔 이미 다른 절들이 세워져 있어 돌아가는 길에 금강산과 비슷한 이곳 산 아래 이르렀으니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들을 안치하라고 말한 다음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의조화상이 달마산 아래 절을 세우게 되었고 절 이름을 미황사라 했다. 절 이름은 바위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아름다울 '미(美)' 자를 쓰고, 꿈에 나타난 금사람의 빛깔인 황금색 '황(黃)'자를 써서 '미황사'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불교의 해양전래 전설이 깃든 미황사는 병풍을 두른 듯 서있는 달마산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입구에는 일주문이 새로 세워지고 진입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미황사에서 내려오다가 뒤돌아보니 초겨울 짧은 해가 어느새 기울어 산마루 위에 희미하다. 산악회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서정마을로 내려가는 길가에 있는 작은 호수에 드리운 산그림자와 억새꽃이 쓸쓸한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달마산 , #미황사, #이승철, #불교 해양전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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