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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예인은 길거리에서 캐스팅 되어 일약 대스타가 된다. 어떤 이는 뜻하지 않게 삶의 현장에서 대통령을 만나 스타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가락동 농수산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소위 '목도리 할머니' 박부자(74)씨는 대표격이 되는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는 올해 초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도 언급될 정도였다. 이 대통령은 "가락동 시장에서 만난 노점상 박부자 할머니가 버스비가 아까워 한 시간 거리를 매일 걸어 다니고, 매일 밤을 꼬박 새워가며 시장에서 일해 하루 2만원 남짓 번다고 했습니다"라며, 대통령을 위해 기도한다는 그의 소식을 전했었다.

 

지난 4일자 <국민일보>에는 박 할머니 이야기가 인터뷰 형식으로 실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4일에 목도리를 주고 간 사건을 기념하여 특별히 마련한 기사란 걸 대뜸 알 수 있다. 1주년을 기념한 인터뷰라 그런지 비교적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다뤘다. 밤 10시에 시작하는 출근길에서부터 노점상으로서 그의 하루를 소상히도 그리고 있다.

 

대통령 만난 게 특권인 나라?

 

기사 내용은 이렇다. 기자와 할머니의 대화내용이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벌써 1년 됐네요."

"뭐가?"

"이명박 대통령이 목도리 주고 간 게 지난해 12월 4일이잖아요. 그때 대통령 붙들고 많이 우시던데."

 

여기서 박부자 할머니와 기자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본다. 기자는 대통령 만난 날을 기념하여 그를 찾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날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뭐가?"라는 말이 이를 반증한다. 하긴 그렇게 바쁘고 지난한 삶을 사는데 대통령 만난 날까지 기억하며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뭐, 그러나 신문사에서 좋은 의도로 '목도리 할머니'를 찾아 간 것이려니 생각하고, 그간의 동정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계속 기사를 보는데, 내 속에서 절로 '이건 아닌데!?' 싶은 구절이 들어  온다.

 

"전에는 시장서 노점 단속한다고 몇 번씩 손수레를 갖고 갔는디, 대통령 왔다 가신 뒤론 내 건 줄 알고 안 가져가, 하하하."

 

이건 아니다. 정말 이건 아니다. 다른 노점상은 단속하면서 대통령 만난 박 할머니 노점은 봐준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건 아니다.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른 노점상을 단속할 때 박 할머니도 예외여선 안 된다. 아니면 다른 노점상의 손수레도 그냥 놔둬야 한다.

 

박 할머니의 말은 노점상을 단속하는 이들(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자신에게는 특혜를 준다는 말이다. 그가 대통령을 만났던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자신도 모르게 특혜를 누린다는 이야기다. 실은 우리 주변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관습들이 버젓이 존재한다.

 

아직도 줄 대는 사회?

 

더 가관인 것은, 박부자 할머니의 다음 말이다.

 

"대통령헌티 말 좀 넣어달라는 거여."

 

허, 이것이 대통령 만나 유명인사 된 박 할머니의 일상 중 한 모퉁이인 것이다. 비록 가락시장에서 노점상을 하지만 그가 대통령을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타가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그에게 대통령에게 말 좀 넣어달라는 농담(?, 정말 농담이기만을 바란다)까지 하는 정도라면 이건 아니다 싶다.

 

대통령이 다녀간 뒤로 '시래기 할매가 임대 아파트를 한 채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관광지나 된 듯 찾아와 '대통령이 어디쯤 서 계셨어요?'라고 묻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찾아와 청탁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벨 사람이 다 오더라고. 한번은 부산서 돈 좀 있어 뵈는 여자가 왔는디, 한 오십 됐을랑가, 자기 재산 문제가 좀 있으니 청와대에 말 좀 넣어달라는 거여."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은 그를 특별 대우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좋게 해석해 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줄을 대는 구실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서글프다.

 

어려운 이웃의 목에 따듯한 목도리 둘러주는 대통령, 얼마나 정다운가. 당시 이 대통령과 매스컴의 오버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서 끝이었어야 한다. 삶이 고단한 한 노파를 스타로 만들고, 이 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그를 통하여 드러내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치부일 뿐이다.

 

더 이상 정치적 스타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예외적인 인물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게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촌부이든,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평등해야 하고, 사회정의는 그 평등 속에서 나온다. 법위에 사람도 없고 법아래 사람도 없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종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박부자, #목도리 할머니,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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