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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말'은 '고개마을'이라는 뜻이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고개 너머를 잿말이라고 한다. 잿말은 충주군 감미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음성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아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이수일, 병조참판을 지낸 정우명 등이 이 잿말 출신이다.

특히 효자를 배출한 곳이어서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이 상당한 곳이기도 하다. 효자 김대환은 부친이 심부전증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자, 20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장기를 이식해 부친을 회생(回生)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잿말에 중요민속자료 제141호인 김주태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김주태 가옥이 유명한 이유는 이곳에서 이완 장군이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꿈을 키웠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완(1602∼1674)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인조 2년인 1624년 무과에 급제한 후 평안도 병마절도사, 함경도 병마절도사, 경기도 수군절도사 등의 자리를 역임하였다. 이완 장군은 48세인 1649년 효종이 북벌 정책을 계획할 때, 어영대장, 훈련대장을 시작으로 훈련대장과 병조판서를 지냈다.

당시 제주도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을 시켜 신무기를 만들기도 했다.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승하하자, 북벌 계획이 전면 중단되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현종 때에는 수어사로 임명되었으며, 포도대장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음성 김주태 가옥의 사랑채.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위엄을 느길만 하다.
▲ 사랑채 음성 김주태 가옥의 사랑채.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위엄을 느길만 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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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가의 위엄이 서린 사랑채

이완 장군이 어린 시절에 살았다는 김주태 가옥은 사대부가의 위엄을 그대로 지닌 고택이다. 김주태 가옥은 300여 년 전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 이완 장군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400년 가까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의 집이 현재의 김주태 가옥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안채는 19세기 중엽, 사랑채는 상량문에 고종 광무 5년인 1901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김주태 가옥의 사랑채는 솟을대문을 지나 석축으로 2단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ㅡ자로 사랑채를 앉혔다. 남향으로 지어진 사랑채는 지체 높은 사대부가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준다.

솟을대문에서 사랑채를 오르려면 계단을 올라 앞마당이 있고, 그 위에 축대를 올려 사랑채를 지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랑채는 솟을대문의 지붕과 같은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 사랑채를 마주하면 좌측으로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다. 아궁이는 앞에서는 벽으로 막혀 볼 수가 없다. 우측 끝에는 누마루를 한단 높여 누정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전면 모두 창호로 문을 냈으며, 뒤편에는 작은 문을 만들어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지어진 집이라는 느낌이다.

대문채의 비밀

김주태 가옥의 대문채에는 방이 없다. 대문의 양 편으로는 곳간을 들였다. 그런데 이 대문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대문을 마주하고 우측을 보면 작은 문이 하나 있다. 쪽문이라고 하는 이 문을 열면, 천정이 낮은 곳으로 허리를 굽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즉 대문을 열지 않고도, 이 문으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문은 언제 사용하였을까? 혹 사랑채에서 바라보면 대문으로 드나들기가 버거운 하인들이 이 문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택을 답사하면서 나름대로 생긴 질문과 답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재미를 느껴보기도 한다.

김주태 가옥의 솟을대문. 대문채에는 방이 없고 양편에 곳간이 드렸다. 문을 보면 우측에 쪽문이 보인다.
▲ 솟을대문 김주태 가옥의 솟을대문. 대문채에는 방이 없고 양편에 곳간이 드렸다. 문을 보면 우측에 쪽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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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우측 쪽문을 들어서면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다. 허리를 굽혀야 출입이 가능하다, 이것도 사대부가의 한 모습일까?
▲ 쪽문 통로 대문 우측 쪽문을 들어서면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다. 허리를 굽혀야 출입이 가능하다, 이것도 사대부가의 한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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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통제가 된 안채

사랑채 뒤편에 자리한 안채는 안 담장을 둘렀다. 그러나 사랑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가려면 좌측으로 난 문과 우측에 사랑채 그리고 안채와 연결된 담장의 일각문을 통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안채 담장에는 또 다시 중문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곳을 통하지 않고 안채를 출입하기는 어렵다. 결국 철저하게 통제가 되어있는 형태다.

사랑채의 좌측에 난 안채로 가는 문. 이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채로 출입이 불가능하다.
▲ 사랑채에 붙은 문 사랑채의 좌측에 난 안채로 가는 문. 이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채로 출입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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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는 안 담장을 둘렀다. 좌측의 문과 우측의 일각문을 통해서, 다시 안채 안 담장에 붙은 중문을 넘어야 안채로 갈 수가 있다. 좌측은 중문, 우측은 사랑채의 뒤편이다.
▲ 일각문 안채에는 안 담장을 둘렀다. 좌측의 문과 우측의 일각문을 통해서, 다시 안채 안 담장에 붙은 중문을 넘어야 안채로 갈 수가 있다. 좌측은 중문, 우측은 사랑채의 뒤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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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태 가옥의 안채는 T자 형태로 지어졌다. 이런 형태는 경기지방의 사대부 가옥에서나 볼 수 있다. 안 담장에 낸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ㄱ자형으로 자리해 있고, 좌측에는 광채가 있다. 안채에는 앞마루를 높인 건넌방과 두 칸 대청, 그리고 사랑방이 있다. 꺾인 부분에도 방과 부엌이 달려있다. 장대석으로 놓은 기단 위에 안채를 지었는데,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안채 모습을 그대로 지켜냈다.

김주태 가옥의 안채는 T자 모양이다. 하지만 중문을 넘어 안채를 보면 ㄱ 자 형으로 보인다.
▲ 안채 김주태 가옥의 안채는 T자 모양이다. 하지만 중문을 넘어 안채를 보면 ㄱ 자 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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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낸 까치구멍의 탁월한 선택

안채 우측 끝에 있는 부엌은 집안의 살림을 맡아하는 곳이다. 불을 때고 음식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주태 가옥의 안채 부엌에는 모두 세 개의 아궁이가 있고, 그 위에 솥이 걸려있다. 세 곳에 불을 때면 아무래도 많은 연기가 나게 된다.

그런데 이 부엌의 특징은 까치구멍이 밑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많은 불을 때면 연기가 많이 날 테니, 그 연기를 빨리 밖으로 배출하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반대편에도 똑 같은 높이에 까치구멍을 냈다. 맞바람이 불면 그만큼 빨리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다. 또 이렇게 아랫쪽에 까치구멍을 내면 습도조절이 가능하다. 맞바람을 이용해 물을 많이 사용하는 부엌이 늘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김주태 가옥의 뛰어난 건축미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주태 가옥의 안채 부엌에 난 까치구멍은 반대편 벽에도 나 있다. 마주 낸 까치구멍은 습도 조절은 물론, 연기가 빠르게 빠져나갈 수가 있다.
▲ 까치구멍 김주태 가옥의 안채 부엌에 난 까치구멍은 반대편 벽에도 나 있다. 마주 낸 까치구멍은 습도 조절은 물론, 연기가 빠르게 빠져나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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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뒤편, 무슨 용도로 보아야 할까?      
 
T자 형태로 지어진 김주태 가옥의 안채. 일각문을 통해서 드나들 수 있는 안채 뒤편에 또 다른 집이 있다. 안채에 붙어있어 전체적으로는 T자의 모습이지만, 이 뒤편 역시 독립된 구조로 만들어졌다.

안채의 사랑방 뒷문을 열면 한 칸 대청이 있고, 두 개의 방이 있다. 앞으로는 장독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뒤편으로 들어가려면 길은 두길 뿐이다. 첫째는 안채의 안방을 거쳐서 들어가는 방법과 부엌을 통해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안채의 뒤뜰을 돌아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뒤뜰을 돌아가거나, 부엌을 통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안방에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안채 뒤편에 붙은 대청과 방. 무슨 용도로 썼을까? 별당채의 기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 안채의 뒤편 안채 뒤편에 붙은 대청과 방. 무슨 용도로 썼을까? 별당채의 기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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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뒤편 공간은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뒤편은 대청과 방을 모두 툇마루로 연결을 했다.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가옥의 구조다. 이 공간은 어떤 형태로 사용이 되었을까? 가장 손쉽게 생각해 볼만한 것은 별당채다. 아니면 안사랑채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앞에 장독이 놓인 것으로 보아서는 중문채로 사용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방에서 출입을 하게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별당채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담장과 굴뚝의 멋스러움

김주태 가옥의 또 하나의 멋은 담장이다. 황토와 기와를 이용해 쌓은 담장의 문양, 수키와를 엎어놓고, 그 사이에 황토를 넣어 문양을 만들었다. 밑에는 돌을 다듬지도 않고, 그냥 황토와 섞어 쌓았다. 김주태 가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담장이다.

돌을 다듬지 않고 밑부분에 놓았고, 위에는 수키와를 엎어 문양을 만들었다. 독특한 담장 문양이 이 집의 특징이기도 하다.
▲ 담장 돌을 다듬지 않고 밑부분에 놓았고, 위에는 수키와를 엎어 문양을 만들었다. 독특한 담장 문양이 이 집의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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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작은 굴뚝. 굴뚝의 형태도 특이하다.
▲ 굴뚝 낮고 작은 굴뚝. 굴뚝의 형태도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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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멋을 찾으라 한다면 굴뚝이다. 기와와 백회를 이용해 조성한 굴뚝은 낮고 작다. 전체적인 집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거의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굴뚝은 중간에 네모난 작은 창을 내고, 위는 사각형의 낮은 피라미드처럼 만들었다. 이런 작은 것 하나까지도 주의 깊게 꾸민 집이다. 이러한 담장과 굴뚝이 있어,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멋스럽게 만들었다. 김주태 가옥만이 갖고 있는 공간 구성은 그래서 뛰어나다.


태그:#김주태 가옥, #중요민속자료, #음성, #이완장군, #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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