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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혼자 있어?"

"응! 왜?"

"바람 쐬러 가자고, 다른 약속 없지?"

"응."

"지금 출발하니까, 20분쯤 후에 도착하겠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어 언냐!"

"그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넷째 동생의 전화를 받고 외출 준비를 했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짧은 여행길을 나섰다. 모처럼 동생과 바람 쐬러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약속대로 20분 후에 동생은 집 앞에 나타났다. 막상 차에 올라보니 제부와 함께였다. 우린 함께 경주로 향했다. 경주는 양산에서 약 40분쯤 걸린다.

 

오늘의 보디가드인 제부가 운전대를 잡았고 우린 차 안에서도 밖에서도 참새들처럼 끊임없이 속닥속닥 이야기 나누었다. 밤새 차가웠던 공기가 햇볕이 나면서 아침 안개를 만들었나보다. 먼 산 빛과 들녘이 안개로 뽀얗게 피어오르다가 점점 햇살이 넓게 퍼지면서 맑게 갰다.

 

역시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보니 금방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 보문단지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파라솔 아래 의자에 잠시 앉았다. 파라솔 옆엔 공중전화 세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떨어진 낙엽이 뒹굴고 있는 곳에 서있는 공중전화를 보며 새삼스럽게 요즘도 공중전화가 있었나 생각했다.

 

모처럼 동생과 함께 외출하니 기분이 좋았다. 날씨 또한 포근하고 상쾌했다. 자매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남한테 하지 못하는 얘기도 자매니까, 형제니까 허물없이 터놓을 수 있어서 좋고 그 어떤 허물도 허물이 되지 않아 마음 편한 것이 자매사이다. 그래서 그 어떤 친구보다도 자매들은 가깝다.

 

서울에 뚝 떨어져 있는 언니도 가까이서 만나진 못해도 서로 힘들 때, 의논할 일 있을 때 전화로 마음 터놓을 수 있어 좋다. 자매들이 있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앉아 있다가 감포로 향했다. 감포라는 곳을 목적하고 가는 것은 처음이다.

 

경주. 넓디넓은 평원과 나지막한 먼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지나자 곧 바다가 나왔다. 푸르른 하늘 아래 쪽빛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해감내가 확 끼쳐왔다. 친근하고 익숙한 냄새, 비릿한 바다의 냄새였다. 소금기 섞인 이 냄새, 고향의 냄새이기도 했다.

 

거침없이 파랗게 펼쳐진 동해바다가 춤추는 곳, 감포 바다에 섰다. 모든 근심 걱정, 어두움일랑 날려 버려~! 위로하듯 바다는 마냥 푸르게, 짙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끊임없이 너울대며 말없이 말을 걸어오는 바다, 그 바다 앞에 함께 섰다. 나는 이 해감내 맡으며 이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고 해감내 맡으며 생각과 마음과 키가 자랐다.

 

바다는 모천이었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나는 바닷가에서 바다의 자장가 들으며 자랐다. 고향의 냄새 소금 냄새, 아, 바다 냄새다. 끊임없이 바다는 무늬를 그리며 꿈틀대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동해바다로 온 것은.

 

우린 바닷가에 면해 있는 길을 걸었다.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바닷가 몽돌 위로 푸드덕 날아올라 비상하고 있고 저만치 한쪽에는 갈매기들의 집회라도 열고 있는 것일까. 몽돌 밭 가득 모여 있는 갈매기 떼가 보였다. 우선 점심부터 먹자하고 횟집으로 들어갔다. 봉길 해수욕장에 면해 있는 부산회식당은 마침 손님이 없어 조용했다.

 

우린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횟집 바로 앞바다에는 '문무대왕릉'이 잘 보였다.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은 삼국통일이라는 위업을 완성한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재위:661-681)의 바다무덤이라 한다. 바닷가에서 약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왕암은 길이 약 20미터의 바위섬으로 되어있으며 그 가운데 조그마한 수중 못이 있고 그 안에 길이 3.6미터, 두께 2.9미터, 두께 0.9미터 크기의 화강암이 놓여 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는 대왕의 유언에 따라 불교식 장례법으로 화장하였고 이곳에 유골을 모셨다 한다. 문무대왕릉, 즉 '대왕암' 위에는 갈매기 떼가 여기저기 모여 바위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바닷가에는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며 끊임없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하늘과 바다 사이로 나는 갈매기, 그 아래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도 이따금 보였다.

 

횟집 아주머니는 생선회를 내오기 전에 먼저 반 건조오징어를 한 개 구워 접시에 내왔다. 고소한 오징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적당히 굽굽한 싱싱한 오징어 구운 맛이 아주 좋았다. 곧 생선회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상추 대신 요즘 배추가 달고 맛있다며 내왔고, 무엇보다도 제철 회가 맛있다면서며 '방어회' 먹는 방법을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아주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방어회를 배추김치 잎에 싸서 먹어보니 아주 맛있었다. 조금 지나가 또 '골회'라며 생선뼈 다진 것을 내와서 먹기도 했다. 일식집에선 '다대기'라고 하는 '골회'는 아주 고소했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우리끼리 할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아주머니의 살아온 인생담을 풀어놓기도 했다.

 

횟집은 깔끔하고 회 맛이 좋았다. 생선회에 이어서 매운탕을 공기밥과 함께 먹고 밖으로 나오면서 반건조 오징어도 좀 샀다. 바다에 면한 길가에는 파라솔 아래서 오징어와 김, 미역, 다시마, 쥐포 등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우린 바닷가 몽돌 밭으로 내려가 파도소리 들으며 거닐었다. 더 가까이서 바다 냄새가 났다.

 

몽돌밭 거닐다 우린 앉았고 앉아서 파도소리를 듣다가 길게 누워버렸다. 햇살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자갈돌 위에 누우니 아주 좋았다. 모처럼 동생과 함께 하며 얘기 나누고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웃었다. 함박웃음 웃는 우리들 얼굴 위로 갈매기 높이 날고 있었다. '갈매기 똥 떨어질라~'하면서 또 한바탕 웃었다.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 파도소리에 우리들의 웃음소리도 묻혀버렸다. 하늘과 바다 사이를 나는 갈매기들과 상쾌한 바닷바람... 내내 누워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파도소리 들으며 바닷가 몽돌 밭에 누워 있다보니 오래된 노래 하나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다가왔다.

 

겨울 바다로 가자

메워진 가슴을 열어보자

스치는 바람 보며

너의 슬픔 같이 하자

너에게 있던 모드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라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

겨울바다로 그대와 달려가고파

파도가 숨쉬는 곳에

끝없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

넘치는 기쁨을 안고...

 

이제 우린 천천히 일어났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바다를 뒤로 하고 걸었다. 오랜만에 감포에서 짙푸른 바다 앞에 서 보았다. 동해 바다의 맑고 짙푸른 빛과 파도소리를 가슴에 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모처럼 낸 시간, 헤어짐이 아쉬워 남편까지 합세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야 제각기 헤어져 돌아갔다. 동해의 푸른 바다를 안고 온 예정에 없었던 짧은 여행, 예상보다 멋진 여행이었다.


태그:#감포바다, #겨울바다,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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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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