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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종로 중구 걷기 모임'은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에서 지난 22일(일) 오전 9시 30분에 집결했다. 정동을 거쳐 사직단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덕수궁의 정문 앞에 집결한 것은 최근 광장공포증에 시달리는 MB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철학 없는 디자인 중심의 닫힌 행정 때문에, 대한문이 민주화의 성지처럼 된 곳이라 찾기 쉽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세조 임금의 큰 손자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다. 왕족의 사가가 왕궁이 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선조가 의주로 몽진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경복궁 등 모든 궁궐이 불타 한성 내에 거처할 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이곳에 행궁을 정하고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이라 한 것에서 유리한다.
               
이곳이 정동여행의 출발지인 것 같다
▲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이곳이 정동여행의 출발지인 것 같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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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현재의 정동을 정릉동이라고도 부르고 있었다.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현재의 영국대사관 자리에서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가기 전에 있었던 곳이라 정릉동이라 불리다가 정릉이 옮겨간 이후에는 정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을 복원하여 이거하면서 경운궁이라 칭하였다. 나중에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다음 30년 간 궁역에 속해 있던 여러 가옥과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 경운궁은 한적한 별궁으로 축소되었다.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을 한 직후, 태후와 태자비 등을 경운궁으로 옮겨와 살게 하였고, 자신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 당한 후 경운궁에 머물렀다. 일제는 경운궁을 퇴위한 고종이 사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덕수궁이라고 부르게 된다.

일행들이 집결한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우진각 지붕 집으로, 궁궐의 정전인 중화전 정면에 있었던 것을 동쪽으로 옮긴 것이다.

언제부터 인가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나 부부가 함께 걸으면 헤어지거나 이혼을 한다고 터부시 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면 이혼심판을 하는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수궁의 돌담길을 따라 정동으로 들어서면 배재학당과 이화여고, 서울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유관순기념관, 정동극장, 경향신문 등이 있고, 구한말 정치인과 구미 외교관들의 사교장으로 이용되던 손탁 호텔, 러시아 공사관, 문화체육관, MBC방송국 등의 터가 있다.

정동 길 왼쪽에 서울시청이 임시로 이전해 와서 쓰고 있는 건물과 시의원회관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청사 앞에는 지난 봄 용산참사 이후 아직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주민들 몇 명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연좌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에게 주려는지 목도리를 뜨고 있는 아주머님의 모습이 오늘 따라 더 처량하게 보이지만, 살아남은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내 생각에는 서울성곽의 옛 석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 서울시청사 아래의 석축 내 생각에는 서울성곽의 옛 석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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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시청 청사 아래의 석축을 보고 있자면, 옛 서울성곽의 흔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돌의 모양이 그런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
               
정확한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없는 것이 아쉽다
▲ ‘사람의 키를 낮추어 눌러 놓은 모양의 가족상’ 정확한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없는 것이 아쉽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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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길가에 작가의 이름이나 제목이 없는 '사람의 키를 낮추어 눌러 놓은 모양의 가족상'이 보인다. 어쩌면 저렇게 정확한 비율로 키를 낮추어 조각을 만들어 놓았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간혹 지나다니면 나를 늘 웃게 만드는 재미난 조각이다. 약간 더 가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미국대사관저가 나오는데 나는 별로 관심 없이 지나친다. 정동로타리 가운데 가수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연가'의 작곡가인 고 이영훈씨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너무 작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 ‘광화문연가’의 작곡가인 고 이영훈씨의 노래비 너무 작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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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노래비는 인물과 마이크를 연상하게 하는 표식과 노랫말이 써져 있다. 워낙 작은 노래비라 주목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다시 정면으로 길을 건너면 60~70년대 발간되던 장기봉이 창간한 독자 중심의 상업신문이었던 신아일보 사옥이다. 신아일보는 1980년 10월 언론기관통폐합 때 경향신문에 흡수 통합되었다.
             
앞은 초라하지만, 옆의 담쟁이가 좋은 곳이다.
▲ 옛 신아일보 사옥 앞은 초라하지만, 옆의 담쟁이가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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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일보 사옥은 앞에서 보면 별로 볼품이 없지만, 옆의 담쟁이는 초겨울에도 정취가 있다. 신문사 우측에는 러시아대사관이 들어와 있다. 원래 90년대 초반 러시아와 수교가 되면서 정동의 러시아공사관 자리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부지 일부가 개인 땅이라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정동에 있는 러시아대사관
▲ 러시아대사관 정동에 있는 러시아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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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는 1885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H.G.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 터와 박물관이 보인다. 고종 임금이 이 학교를 '배재학당'이라 이름 지어 간판을 써 주었다고 전한다.
               
배재학당 터와 남궁억 선생의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
▲ 배재학당 배재학당 터와 남궁억 선생의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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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당 터에는 터를 알리는 표식과 배재학당의 교사를 지냈고, 언론인이었던 남궁억 선생의 집터를 알리는 표식이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배재학원의 120년 역사를 담은 다양한 자료가 역사별로 전시되어 있고, 김소월, 주시경, 이승만 등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동문 소개가 되어 있다.
               
배재학당 박물관
▲ 배재학당 배재학당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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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텬로력뎡>이라고 하는 국내 최초의 영문소설 번역서가 1895년 배재학당에서 운영하던 삼문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배재학당은 당시 미국의 선진교육과 출판을 국내에 적용함과 함께 일제 때는 기독교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옛 학당의 교실 모습
▲ 배재학당 옛 학당의 교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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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의 정동제일교회와 이화학당 등과 함께 기독교 선교, 교육, 독립운동의 큰 획을 그은 의미 있는 곳을 둘러보니 기분이 좋다.
               
배재학당은 출판 사업도 했다고 한다
▲ <텬로력뎡>이라고 하는 국내 최초의 영문소설 번역서 배재학당은 출판 사업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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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옆에는 구한말 한성재판소 자리에 일본이 만들었던 대법원 청사를 이용하여 만든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다. 1920년대 서양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을 전면부의 파사드(Facade)만 그대로 보존한 채 좌우측을 신축한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제의 대법원을 해방 이후에도 우리정부가 40년 가까운 시간동안 그대로 쓰다가 새롭게 강남에 신축을 하여 이전을 한 것은 올바른 일이지만, 이곳을 일제의 침략이나 잘못을 알리는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지 않고 미술관으로 만든 이유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일본이 만든 대법원 청사를 해방이 된 다음에도 우리 정부는 40년 간 대법원으로 쓰다가, 미술관으로 바꾸었다. 일제의 침략을 다루는 역사박물관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곳이다
▲ 서울시립미술관 일본이 만든 대법원 청사를 해방이 된 다음에도 우리 정부는 40년 간 대법원으로 쓰다가, 미술관으로 바꾸었다. 일제의 침략을 다루는 역사박물관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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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찬반의견을 보면서, 올바른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든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정동의 찬바람이 오늘은 더 스산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시 종로/중구 걷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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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동,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 #정동교회,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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