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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미당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말하고 있었다. 가을이 저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바람 속에 배어 있는 찬 기운이 그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바다에서 불어오고 있는 바람이 겨울을 부르고 있었다. 겨울에 밀리고 있는 가을은 무심하게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순리라는 듯이, 담담하게 수용하고 있었다.

 

 

미당 시문학관.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생가가 있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위치하고 있다. 독일의 건축가가 설계하였다는 문학관 벽에는 담쟁이덩굴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학관이 건립된 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점을 덩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미당이 시심을 간직하고 있는 문학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2009 질마재 문화 축제(2009. 11. 6 - 11. 30).

질마재는 미당이 걸어 다니던 고갯길이다. 소요산에 있는 고개는 미당에 의해 전해진 수많은 이야기들이 신화로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가 이제는 우리들 가슴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소록소록 샘솟는 어머니의 사랑이 신화가 되어서 우리들 마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가는 가을이 아쉬워서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중앙일보와 질마재 문화재단이 중심이 되어 한 달여 동안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이름 하여 2009 질마재 문화 축제 및 미당 문학제이다. 미당의 시심을 재음미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에 가을을 다시 한 번 노래해보자는 의미이다. 가을을 떠나보내면서 겨울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기쁨을 나누자는 축제이다.

 

 

질마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흥덕에서 새로 난 도로를 타고 선운사가 갔다가 해안 쪽으로 돌아서 오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흥덕에서 구 도로를 이용하여 부안면소재지를 지나서 질마재로 들어오는 길이다. 선운사로 돌아서 오는 길이 훨씬 편하고 좋지만, 구 도로를 이용하여 시골 정경을 감상하면서 오는 길도 정취가 있어서 좋다.

 

미당의 대표 시는 '선운사 동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애창하는 '국화 옆에서'이다. 그래서 질마재 문화 축제의 키포인트도 바로 국화이다. 축제장을 비롯한 주변에는 국화가 노랗게  피어 있다. 화분에 피어난 대국을 비롯하여 산국 그리고 노란 국화들이 화려하게 피어나 있다. 축제장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국화 향에 취할 수 있게 해준다.

 

 

질마제 문화 축제는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분위기가 들떠 있지 않다. 축제를 찾은 사람들의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에서는 사랑이 진하게 묻어난다. 가을 시심에 젖은 사람들의 태도에서 삶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시심은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 안에서 샘솟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축제장에 날리는 낙엽들마저도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낙엽을 통해 가는 가을이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보석처럼 빛나는 계절이 멀어지고 있음을 아쉬워하게 된다. 그렇지만 가야하는 것이 순리이고 인생이란 점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노랗게 물들여져 있는 은행나무에 마지막 가을이 걸려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축제가 벌어지는 미당 시문학관에 서서 나를 들여다본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걸어왔고 또 가야만 하는 인생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한번 뿐인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다.

 

 

노란 국화를 바라보면서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불안해하거나 의심하게 된다면 절대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미당의 국화꽃을 바라보면서 내 삶의 국화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나만의 국화를 가꾸어오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본다. 축제의 젖어 시심을 키웠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질마재, #문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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