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1월 15일 오후, 늦가을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아니, 그 풍광에 의지하여 시름이라도 잊고 싶었다. 지난 11월 6일, 장모님께서 이승과 결별하셨다. 장모님을 끝으로 내 부모님, 아내 부모님 네 분 모두 먼 길로 떠나셨다. 졸지에 고아 혹은 미아가 된 느낌이다.

 

장모님은 5년 넘게 치매로 고생하시다 갑자기 쓰러져 119로 실려가 병원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까지 진행했으나 아무 말 없이 떠나셨다. 그것도 요양 시설에서 지내시다 응급실에서 가셨으니 자식들의 슬픔은 깊기만 했다.

 

막내딸 아내는 엄마의 허무한 객사에 죄인 심정으로 장례식 내내 식음을 전폐했다. 생로병사 중에 가장 어렵고 귀중한 일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 세상으로 가는 죽음이라면 차라리 축복일지도 모를 일이다.

 

2남 6녀 중 막내딸인 아내는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큰가 보다.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해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고 한다. 평소에 잘해 드리지 못한 자신의 불효막심이 용서가 안 된다고 한다. 

 

장모님은 내 아내가 세 살 때 남편을 잃고 8남매를 키웠다. 8남매 중 큰딸은 5년 전에 지병으로 먼저 눈을 감았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 한을 풀지도 못한 채 중증 치매가 찾아왔다. 이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식들의 따뜻한 간병도 받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셨다.

 

장모님은 치매가 찾아오기 전 막내 사위네 집을 자주 찾아오셨다. 손자손녀들과 각별했고, 막내딸 막내 사위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치매 진단을 받은 장모님의 가출 소식이 들려왔다.

 

장모님을 모시던 처남 내외는 어떻게든 집에서 모시려고 애를 썼으나 산다는 일을 이유로 어렵게어렵게 요양 시설로 자리를 옮겼다. 시설에 문병을 갈 때마다 우리 가족은 눈물로만 장모님께 말씀을 전했다. 그토록 즐거워하던 손자손녀들의 재롱도,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도 장모님은 다 잊고 계셨다.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장모님의 장례식 때는 전날까지 퍼붓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 장모님은 43년 동안 홀로 지내시다 먼저 떠났던 장인 어른 곁에 안장됐다. 아내는 양지 바른 언덕에 곱게 단장된 묘소를 보며 '차라리 저 곳이 더 편안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내년이면 50줄에 들어서는 내게 양가 부모님이 모두 멀리 떠나시고 안 계신다. 이제 나의 형이나 처남이 부모님과 동격이다. 내가 어른이 될 준비도 단단히 해둬야겠다. 부모님이 계실 때와 안 계실 때 형제자매간 정분에 차이가 난다는 염려들이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막내 딸 아내의 눈물이 마르려면 상당히 많은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슬픔 누르고 힘 합쳐 잘 사는 일이 가신 분들을 편안하게 하는 자식된 도리이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장례 기간 중 먼 길 달려와 조문해주시고, 위로의 말씀 주신 분들께 삼가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주신 마음 아로새겨 반드시 은혜 갚겠습니다.


태그:#장모님, #장례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