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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

키자베 마이마히유, 이 작은 마을에서 우리가 생활한 지도 2주가 넘었다. 그동안 이런 저런 분들의 도움으로 마을 체육대회, 옥수수 나눠주기, 벽화 그리기는 무사히 진행됐다. 탄자니아로 떠날 날도 며칠 남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까만땅콩과 흭, 그리고 니콜은 생각했다.

- 아직 풍선이 좀 남아 있어.
- 폴라로이드 사진을 아껴두었잖아.
- 그럼 마을 사람들 집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있는 곳엔 아트 풍선을 만들어주고, 가족사진을 찍어주자.

디지털 카메라가 생기고부터, 남의 사진을 찍는 일은 때론 이기적인 행동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나라 현지인들의 '사진'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처음에야 생소한 카메라에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찍히기를 원하지만, 그 사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더 이상 자신이 찍히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찍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하거나, 심지어 돈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것이 폴라로이드였다. 즉석에서 자신의 사진을 선물해준다면, 그것보다 더 기쁜 선물은 없을 것 같았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이번 우리의 여행의 목적 아니었던가. 한국에서 준비해온 즉석카메라와 필름, 그리고 풍선을 들고 조이홈스 큰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올드 키자베'라는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로 찾아갔다.

올드 키자베 마을로 인도해주는 멋진 조이홈스 큰형들
▲ 든든한 아이들 올드 키자베 마을로 인도해주는 멋진 조이홈스 큰형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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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홈스 뒤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에 가까운 산이 있는데,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은 그 절벽 바위를 염소나 소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 절벽 사이로 그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 쳐다보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그 가파른 절벽 사이로 사람들도 지나가고, 집을 지어 살기도 했다.

그냥 조이홈스 테라스에 앉아 있을 땐 이 넓고 황량한 땅엔 학교와 고아원, 교회 외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깊은 산 속으로 내가 찾아 들어가니, 신기하게도 집이 뿅뿅 튀어나왔다. 그래서 이곳에 꽁꽁 숨은 집에서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아침마다 학교로 등교를 하는구나, 내가 마을로 직접 찾아 들어가니 알 수 있게 된 사실이었다.

#2. 이 많고 많은 아이들을 어쩌지

아프리카는 결혼을 할 때, 남자 쪽에서 결혼 지참금을 줘야 한다. 아내를 데리고 오는 대가로 처가에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다들 가난하니,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동거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 남자는 책임질  생각은 않고 쉽게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찾아간다. 그러다보니 일부다처 문화가 팽배해 있고, 한 집 걸러 한 집이 미혼모일 정도이다. 교회 예배 드리러 갈 때도 15살 전후의 소녀들 태반이 애 하나 업고 나타난다.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그 모습이 가장 안타까웠다. 일부다처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거북함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랄 아이들이 이 땅에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팠다. 대부분이 편모 가정이고, 더한 경우 엄마에게마저 버림받은 아이들은 길거리 아이들로 전락하거나, 친척집에서 혹독한 일심부름을 해야 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을 넘긴 아이들이 자기보다 더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십 리를 다녀야 하는 광경을 볼 때마다 이 땅에 바른 가정을 정착시킬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설픈 칼풍선, 꽃풍선이지만, 풍선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선물이었다.
▲ 풍선 어설픈 칼풍선, 꽃풍선이지만, 풍선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선물이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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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 선물 사진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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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최첨단 태양열 라디오다. 밤에는 듣지 못하는 것과, 햇빛을 쬐고 있는 유리조각 앞에 알짱대면 라디오도 나왔다 꺼졌다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
▲ 태양열 라디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최첨단 태양열 라디오다. 밤에는 듣지 못하는 것과, 햇빛을 쬐고 있는 유리조각 앞에 알짱대면 라디오도 나왔다 꺼졌다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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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올드 키자베 마을에도 많은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색색의 풍선을 만들어주었고, 가족을 불러 모아 함께 사진도 찍어 방안에 놓을 수 있도록 해줬다. 사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변변치 않은 가족사진이지만 가끔 꺼내보면서 웃을 수 있다면, 그래서 당신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3, 신중한 레게머리를 부탁드립니다(번외편)

이쯤에서 한풀이하고 싶은 일이 있어 글로 살짝 남긴다. 까만땅콩과 흭은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기념으로 레게 머리를 했었다. 흭은 자그마치 두 번이나 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각 나라에 맞게끔 머리통과 머리결을 허락하셨음을 나는 절감했다. 보통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의 머릿결을 매우 거친 악성 곱슬머리로 생각한다. 너무 꼬불거려서 머리가 되려 살갗을 파고든다고들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고슬고슬하고 보슬보슬한 아프리카인의 머리는 아주 보드라운 스펀지같다. 그래서 한번 머리를 촘촘하게 땋으면 머리를 오랫동안 감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고, 물이 닿아도 잘 풀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결이다.

대부분이 직모이기 때문에 레게머리를 하면 3일 정도만 지나면 잔머리가 송송 삐져나온다. 그리고 말이 쉽지, 3일만 머리를 감지 않으면 간지러워서 못견디고 비듬도 엄청 생긴다. 까무잡잡한 머리에 길을 내면 별로 티가 나지 않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 밑은 하얗기 때문에, 레게머리를 하고 있으면 솔직히 흉하다. 3일이 고비다. 3일이 지나면 머리를 땋은 본인이 못참는다. 까만땅콩과 흭 역시 3일이 고비였다.

흭의 두번째 레게머리
▲ 문제의 레게머리 흭의 두번째 레게머리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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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머리를 혼자 못 푼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게머리를 하지 않았던 나는 세 번이나, 며칠을 안 감은 남의 머리, 비듬 많고 냄새나고 흉한 그 머리를 2시간 가까이 만지며 풀어야 했다. 그래서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고 있는 모든 여행자에게 조언 하나만 해주고 싶다.

1. 레게머리가 진정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신중하게 한 번 더 생각하라.
2. 최소한 한 달 이상 머리를 감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3.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땋을 머리를 풀 때, 욕하지 않고 2시간 이상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머리를 풀어줄 친구가 곁에 있는지 확인하라.

글. 니콜키드박

덧붙이는 글 | 2009년 여름, 케냐와 탄자니아 여행기



태그:#박진희박, #아프리카, #여행, #사랑,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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