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전 등교를 미룬 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을 찾은 한 초등학생이 검진을 받고 있다.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전 등교를 미룬 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을 찾은 한 초등학생이 검진을 받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나는 이상하게 영화를 보면 주연보다는 조연들을 좋아한다. 배우 이광기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오래 전 '왕건'이라는 드라마에서 견훤의 아들 신검으로 나와 아비를 배신하는 연기를 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며칠 전 그 아들이 아비를 '배신'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아픈 지 단 2∼3일만에 생긴 일이다.

전염병 경보 최고 수준 '심각' 단계의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신종플루의 위기단계를 지난 5월 1일 '주의'에서 두 달 뒤인 7월 21일 '경계'로 격상한 뒤 이번 11월 3일에 최고 단계인 '심각'까지 올리면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설치하였다. 동시에 전국 지역마다 '지역 재난안전대책본부'도 구성되고 공무원들과 관련 종사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정부의 대응 방침도 ▲ 정부대응체계 강화 ▲ 중증환자 진료체계 강화 ▲ 학교예방접종 조기 완료 ▲ 항바이러스제 적극 투약하도록 할 것으로 구체화하면서 적극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전쟁이 터지고 적들은 외부에서 쳐들어오는데 전방의 경계를 강화하고, 예비군까지 동원령을 내렸지만 정작 총알을 지급 안 했던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열심히 상황을 점검하고, 무언가 준비하기에 부산한데 '심각' 단계에 해당하는 총알이 없다. 조직표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지난 5월의 '주의' 단계, 7월의 '경계' 단계, 지금의 '심각' 단계에 이르기까지 대책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그저 예방접종만 목 놓아 기다리고, 타미플루 열심히 처방해라, 손 열심히 씻어라 등 봄부터 지금까지 줄곧 똑같은 대책뿐이다. (일선에서 열심히 애쓰시는 공무원들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도대체 비상시기에, 전염병 최고 단계까지 공포했으면 뭔가 획기적인 조치나 대책들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장을 둘러보자. 일선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전화만으로도 고열이 나거나 병원에서 신종플루가 의심된다고 하면 1주일 정도 학교에 나오지 말도록 격리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상당수 선생님들이 의사 진단서(소견서)를 떼 오지 않으면 결석 처리된다고 하지를 않나, 열 떨어졌으면 나와서 수업 받으라고 하지를 않나… 이건 비상시국의 행동들이 아니다. 그 분들은 지금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말이다.

밀린 환자를 진료하면서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주의사항에 소견서까지 쓰다 보면 죽을 맛이다. 이미 지역 교육청에서 서류 제출을 하지 말도록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학교 현장에선 씨알도 안 먹히고 있다.

학부모들도 아이가 조금 좋아졌다고 금세 학교에 보내 버린다. 수업 빼먹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또한 서울도 그렇지만 전국 학교에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이번 신종플루 사태를 겪으면서 자료조사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전염병 '심각' 단계를 선포를 했으면 나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 감염 확산이 급속도로 증가할 때면 일시적인 휴교 조치를 한다. 비행장이나 항구에는 지역 공무원과 자원 봉사자들이 나와서 입가리개(마스크) 하나씩, 주의사항을 적은 유인물도 한 장씩 만들어서 여행객들 손에 쥐어 주겠다.

공포감을 조성해서 관광객이 줄어든다고? 오히려 믿음이 가기 때문에 안심하고 그 지역 관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라. 꼭꼭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데를 가겠나, 이렇게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면 안심입니다, 하는 곳을 가겠나?

또 이런 비상 상황에서는 의사나 의료 관계자들을 총동원해서 학교나 유치원, 각 단체 생활을 하는 곳에 보건 교육 및 시범을 위해 조직을 꾸려서 보내겠다. 보건소 인력으로는 부족해서 못하고, 의사들은 민간 의사라서 협조가 안 될 거라고? 그러니까 진작 동네의사들과 공적 유대관계를 잘 맺어둬야 이럴 때 써먹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지금 같은 때 각 지역마다 동네의원 의사들의 협조를 구해서 일선 학교를 돌며 교육이나 보건 상담을 할 수도 있잖은가?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에는 자매결연 맺은 의사를 조금씩 시간 날 때 보낸다든지.

평소에 티격태격하거나 공공의료는 정부가 알아서 다 한다고 큰소리만 치다가 정말 필요할 때는 옷소매 한번 붙잡지도 못하는 꼴이다. 아니, 대운하 사업에 매진하다 보니 국민들이 좀 아픈 것쯤은 꾹 참고 넘길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건지, 아니면 말만 비상이고 실제로 비상시국에 투여할 재정이 없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도 지금이 손 씻기만 강조할 때가 아니지 않는가? 언제까지 이것만 강조할 건가? 미국 어느 교수는 손 씻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도 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독감은 비말(droplet)이란 형태로 옮기기 때문에 접촉보다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튀어서 옮기는 게 대부분이므로 오히려 다른 위생을 더 강조해야 하는데 항상 정부의 대국민 수칙 제 1번은 손 씻기이다. 비상대책기구까지 마련했는데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타미플루가 충분하다, 손 잘 씻어라 밖에는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다시 써본 '신종플루 대국민 수칙'

사실 요즘 신종플루라는 놈이 다소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특징으로 볼 때 한두 차례 정점을 이루면서 반복된다. 절대 안심할 단계는 아니며, 이런 경우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포에 떨 것은 없지만 철저하게 방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나 지역 자지단체도 안 하니까 이제는 우리 국민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대국민 수칙을 만들어 봤다. 이대로만 하면 이젠 시골 할아버지도 다 아는 '신종'이라는 놈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1. 고열이 나거나, 병원에서 신종플루 의심이라고 하면 증상이 가라앉아도 학교, 학원, 어린이집(유치원 포함)에는 1주일간 보내지 말자.  
- 증상이 없어져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계속 독감 바이러스를 배출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키기 때문이다.

2. 집에서 환자 관리도 잘 하자.
- 밥상에 같이 앉아서 밥 먹는다고 독감 바이러스가 쉽게 옮아가지는 않는다. '비말'이라는 것은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튀는 액체인데 그것이 날아가서 상대방 코 안이나 목 점막에 붙어서 살게 될 때 병이 전염되는 것이다. 이와는 좀 다르게 결핵은 '비말핵'이라는 것인데, 그 놈은 정말 미세하기 때문에 공기 중에 떠다닌다. 그래서 가족 중에 잘 전염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독감 바이러스는 대개 2m 안에만 접근하지 않으면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가족인데 그래도 가까이에서 돌봐야 한다고? 물론 주의만 잘 하면 껴안아도 괜찮다. 그렇지만 최소한 지킬 것은 제대로 알고 지키는 게 낫지 않을까?
- 자면서 기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잠자리를 따로 한다든지, 2m 이상 떨어져서 자도록 하자. 사랑하더라도 일주일만 참아라. 사랑하는 임을 독감으로 떠나보내는 것보다 일주일 참는 게 더 낫다.

3. 타미플루를 맹신하지는 말자.
- 의사인 나도 의심 환자 열 명이면 두세 명에게만 독감 치료제를 처방한다. 감기약 정도 먹고, 잘 쉬면서 회복하면 된다. 물론 의사가 여러 가지 정황을 보고 타미플루나 다른 독감 치료제를 처방했을 때는 잘 복용하면 된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응급환자에게 처방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응급환자에게 처방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4. 타미플루를 처방 받았으면 5일 동안 반드시 다 복용하고, 제발 끊지 말자.
- 그다지 부작용은 없다. 처음 하루, 이틀 속이 불편할 수 있는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 죽느냐, 사느냐인데 그까짓 불편함을 못 참겠는가? 정히 불편하면 의사나 약사에게     전화를 해서 상담을 받아라.
- 타미플루와 같은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의 증식 및 확산을 억제하면서 사그라지게 하므로 충분히 복용하지 않을 경우 독감의 특성상 갑자기 폐렴이나 심각한 상태로 가서 위험할 수도 있다. 천사 같은 이광기씨의 아들이 처방된 타미플루를 잘 먹었더라면 이런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5. 입가리개(마스크)를 충분히 활용하자.
- 기침이나 재채기를 한다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 입가리개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당신이 입은 속내의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되도록 제대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도록 하며, 코 위쪽과 입 아래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6. 자기도 모르게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게 될 때는 손으로 막으면서 하지 말고, 휴지나 손수건으로 가리면서 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고개를 돌려서 팔뚝이나 옷에다가 하도록 한다.
- 손에서는 바이러스가 오래 생존할 수 있는데 옷이나 물건에서는 일찍 죽는다고 한다. 옷에 묻은 독감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기란 개미가 태평양을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7. 손 씻기는 모든 전염병의 기본이니까 잘 지키자.
- 그래도 손 타고 옮기는 가능성과 전염병 예방의 제1 수칙이니까 지켜야 한다.
- 손 씻는 것도 물로 씻는다든지, 대충 씻는 척 하면 안 된다. 비누로 손을 골고루 문지르면서 빡빡 씻어줘야 한다.
- 세정제, 비싼 돈 주고 살 필요 절대 없다. 그거 알코올 효과일 뿐이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비누나 수건, 대야를 준비할 수 없다면 편리하게 세정제를 갖다 놓을 수도 있으나 비누로 씻는 것이 효율적이다.

알아야 할 것들이 더 있겠지만 정부와 지자체를 대신해서 대국민 수칙을 적어보았다. 인류가 전염병을 정복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언제나 돌아올 태세가 되어 있다. 주의에 주의를 더해도 모자란 게 전염병이다.

이번 이광기씨의 아들을 바라보면서도 모두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겠느냐만은 그래도 우리 곁에서 항상 웃던 배우였기에 관심도 더 가고, 사람들이 더 가슴 아파하는 것이다. 그의 아들 이석규군의 갑작스런 죽음이 혹시 우리의 무지 때문은 아니었는지 돌이켜 보게 되니 마음이 아픈 것을 넘어 답답해진다.

덧붙이는 글 | 고병수 기자는 새사연 이사이자 제주 '365일의원' 원장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종플루, #신종플루 대국민 수칙, #이광기 아들, #신종플루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