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뮤지컬 <영웅>
 뮤지컬 <영웅>
ⓒ 에이콤인터내셔날

관련사진보기


러시아 연해주 연추하리 측백나무 숲. 12인의 조선 청년들이 서 있다. 뮤지컬 <영웅>의 시작은 이들 12인의 청년들이 단지동맹을 통해 대한 독립을 결의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측백나무 높다란 키만큼이나 아득해 보이는 조국의 독립. 안중근은 이들과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혈서로써 대한독립을 다짐하고 만세삼창을 한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 후반부를 그린 뮤지컬 <영웅>이 배우들의 호연과 완벽한 무대미술의 조화 속에 상연되고 있다.

1909년 9월 2일 단지동맹부터 1910년 3월 26일까지 270여 일의 행적을 빠르고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관객과 가장 먼저 만나는 측백나무 숲 짧은 1장(章) 만으로도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껏 데우기 충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빚은 술 한잔 마신 기분이다. 취기는 가셨지만 향이 오래도록 남는. 그러나 뒤 끝이 없는 건 아니다.

세 발의 총성과 순식간의 페이드아웃... 이토 저격 장면의 미학

이토 저격장면
▲ 뮤지컬 <영웅> 이토 저격장면
ⓒ 에이콤인터네셔날

관련사진보기


인상 깊었던 장면이 여럿 있지만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부분 연출이 백미로 느껴졌다. 잘 익은 술의 청주를 걷어 마신 느낌이랄까. 관객들이 가장 기대를 했던 부분이리라.

서로 첫 술을 걷어 마시기 위해 술독 앞에 줄지어 선 긴 행렬. 그러나 술독은 눈 깜짝하는 사이 총성 세 발에 박살나면서 행렬은 얼음처럼 굳어 버리고. 절제의 미학이 연출의 힘으로 느껴진 장면, 이토는 사라지고 박수만 남았다.

<영웅>의 영웅적인 행동을 왜 이처럼 가혹하게 절제했을까. 이토를 향한 세 발의 총성과 그리고 7연발 권총의 나머지 탄실을 다 비운 것을 설명하는 게 사족으로 느껴진 것일까. 이토의 죽음, 우리의 시각이 너무 원수의 죽음에만 얽매여 있는 건 아니었는지.

무대미술의 진화, 극을 떠받다

<영웅>의 또 하나의 영웅은 무대미술이다. 역동적이면서 짜임새 있고 웅장하면서 색채미가 풍성한 비주얼. 한정된 공간을 파괴하면서 배우의 동선을 평면에서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놀라운 배경의 변화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수평보다는 고저의 연출을 통해 일제하 계급적 이데올로기와 지배, 피지배 계층, 권력의 유무를 표현한 무대는 색채까지 적절히 덧입힘으로써 세밀하게 극을 표현했다.

특히 일제는 붉은색, 러시아를 유리방황하는 조선 청년들의 삶은 차고 건조한 회색조,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실의 쇠잔한 푸름, 그리고 신앙을 향한 부르짖음에는 눈부신 밝은 빛. 조명과 무대가 제대로 훈련된 군대의 열병분열처럼 한 치 틀림없이 맞아 떨어졌다. <영웅>이 호평을 받는 이유엔 무대 미술이 한 축에 있다.

안중근 의사 재판 장면
▲ 뮤지컬 <영웅> 안중근 의사 재판 장면
ⓒ 에이콤인터네셔날

관련사진보기


죽음 앞에 두려운 인간 안중근... 신앙의 힘을 담담히 그리다

도마 안중근의 집안은 천주교를 받아 들였다. 안 의사도 19세(1897년) 때 토마스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군인이었지만 한 집안의 아들이고 가장이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한 인간이었다.

두려움을 덜어내는 데는 어머니와 천주(天主)의 힘이 작용했다. 초기 이미지로 등장했던 어머니가 실제로 등장하면서 절정에 달했던 그의 두려움이 진정된다. 그리고 마지막 천주에게 신앙고백을 통해 그는 화평을 찾고 교수형틀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극에서 어머니는 신앙의 원천이고 천주와 동격이다. 우리네 정서에서 어머니는 신앙이고 절대적인 것이다. 안 의사에게 어머니는 조국이요 모국이었다. 비록 힘없이 고꾸라지는 나라였지만 그에게는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다. 조국은 어머니요 신앙이었다.

의거 100년, 조국은 그를 기억하는가?

안 의사 의거 100주년에 맞춰 상연되는 뮤지컬 <영웅>. 구상기간만 5년, 제작기간은 3년이 걸렸다. 공연이 무대에 오른 날은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 응징한 10월 26일.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자 노력한 뮤지컬이다.

한편으론 씁쓸한 100주년이다. 하얼빈에서 가져 온 안 의사 동상이 제자리를 못 찾고 국회 등지로 전전하는 몹쓸 수모를 겪게 했다. 또 그의 시신은 아직도 유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독립된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타국 생활과 장부의 뜻을 담은 안 의사 피맺힌 노랫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뮤지컬 <영웅>
 뮤지컬 <영웅>
ⓒ 에이콤인터네셔날

관련사진보기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 우린 어디에 있나
잊어야 하나 잊을 수 있나 꿈에 그리던 고향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라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두려운 앞날 용기를 내어 우리 걸어가리라
눈물을 삼켜 한숨을 지워 다시 걸어가리라
어머니 어머니 서글피 우시던 모습
날이 새면 만나질까 멀고 먼 고향 너무 그리워
기적소리가 우리의 심장 고동치게 하리니
조국을 향한 그리운 마음 눈시울이 뜨겁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 우리가 반드시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 <영웅> OST 메인 테마곡 -

몇 잔 더 마셔 취해도 좋은 잘 빚은 술 같은 작품

평론가들은 내면의 연기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더블캐스팅 주인공 2명의 섬세함의 차이를 따지기도 한다. 평론가가 극을 자의적 잣대로 해석하듯 연기자도 배역을 재해석한다.

섬세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극의 질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보석 같은 조연들이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으니 무슨 걱정이랴.

극은 관객의 볼에 적어도 두 번의 뜨거운 물길을 냈다. 관객들은 애써 물길을 막지 않았다. 구태여 물길의 흔적을 닦아내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고 멎게 할 이유도 없었다. 사나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가슴에 품어 봤을 역사에 대한 웅혼한 꿈. 그 꿈에 대한 경외이리라.

더욱이 조국을 잃고 타국을 전전하는 젊은 혈기, 피 끓는 애통함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함께 한 큰 아이(11세)가 정성화씨(안중근 역 더블캐스팅) 작품을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영웅은 스러졌어도 역사는 남아있었다. 세대의 가슴을 넘어.  

덧붙이는 글 | 장 소 : LG아트센터
공 연 일 : 12월 31까지
공연시간 :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 2시, 6시
관람시간 : 160분(인터미션 20분 포함)
관람연령 : 만 7세 이상 관람 (미취학아동 관람불가)
티켓가격 : 12.13까지 VIP 11만원 / R 9만원 / OP 8만원 / S 7만원 / A 4만원
12.31까지 VIP 12만원 / R 10만원 / OP 9만원 / S 8만원 / A 5만원



태그:#안중근, #뮤지컬 영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