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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행정중심도시는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일"
 
"대통령께서는 '분할된 수도'를 꿈꾸고 계시지만, 저는 '통합된 수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행정중심도시는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일입니다."

 

2005년 3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수도 분할을 중지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합니다'란 제목의 글을 서울시 홈페이지에 올려 시선을 모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글이다. 이 시장은 노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서신에 대한 반박의 형식을 띤 장문의 성명을 냈다.

 

A4 용지 10장 분량의 글에서 그는 '행정수도 계획은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이 강했다'는 노 대통령의 글에 대해, "지도자의 결단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며 "대통령께서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수도분할을 재고해 주시기를 바라다"고 주문했다. "만약 생각을 바꾸신다면, 우리 국민들은 은퇴 후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장면 2] "대통령 되면 행정도시 건설 꼭 추진할 것"

 

"대통령이 되면 행정도시 건설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11월 28일. 충남 연기군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이 되면 행정도시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년 전과는 분명 달랐다. '이명박 표 세종시', '명품 첨단도시'가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도 이 무렵 나왔다.

 

나아가 "세종시의 자족능력 강화를 위해 세계적 국제과학기업도시 기능을 더해 제대로 된 도시를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충청권 민심이 그에게 쏠렸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삼았던 이회창 무소속 후보도 가장 분전했던 곳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장면 3] "세종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세종시는 충분히 숙고해서 논의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2년이 흐른 2009년 11월 2일.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및 여권 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충분한 숙고'를 공개 주문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세종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당 대변인이 전했다.

 

여야 간 극한 대치 속에 한나라당의 세종시 내홍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간 계파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나온 발언이다. 게다가 정국의 불안정성이 가중된 상황에서 위력은 커져만 갔다. 

 

[장면 4] "세종시 원안 수정 불가피... 내년 1월까지 서둘러 달라"

 

"세종시 대안의 기준은 첫째 국가경쟁력, 둘째 통일 이후의 국가미래, 셋째 해당지역의 발전이다. 늦어도 내년 1월 중에 최종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서둘러 달라."

 

이틀 후인 11월 4일. 이 대통령은 "세종시의 대안은 원안보다 실효적 측면에서 더 발전적이고 유익해야 한다"며 "그 대안의 기준은 첫째 국가경쟁력, 둘째 통일 이후의 국가 미래, 셋째 해당 지역의 발전"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시 원안 수정 불가피'라는 의중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향후 세종시 관련 추진 계획과 일정 등 정운찬 국무총리의 주례보고를 듣고 이같이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늦어도 내년 1월 중에 국민과 국회에게 최종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측은 전했다.

 

[장면 5] "약속대로 이행하라, 무책임하다...정권퇴진" 뿔난 민심 

 

"MB 후보시절 세종시 공약은 '원안 플러스 알파'였다. 약속대로 이행하라. 7년 2개월의 공든 탑이 무너지다니… 너무 무책임하다. 정권퇴진운동 벌이겠다."

 

충청권 출신인 정운찬 국무총리가 4일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세종시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다" 며 "가급적 내년 1월까지 세종시 최종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자 충청권 민심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국토균형발전의 일환으로 꼭 추진될 것으로 믿었던 '세종시 꿈'이 멀어지고 말았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암운이 곳곳에 짙게 드리웠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주민과의 약속으로 내걸었던 세종시 공약이 뿌리 채 흔들리면서 민심도 바닥까지 요동치는 형국이 됐다. 정권퇴진'이라는 극한 소리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4대강 속으로 빠진 세종시와 지역균형발전... 또 정치적 포석용?

 

정리하자. 세종시가 정국 또는 전국의 뇌관으로 부상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과 국민의 약속 이행이 불투명한데서 기인한 문제다. 지역마다 균형발전의 꿈과 희망이 담긴 문제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뇌관을 충청권 출신 총리에게 맡긴 점도 공분의 대상에 포함됐다. 더구나 충청권 출신 총리가 총대를 짊어진 순간, 뇌관의 초침은 충청권에서부터 작동하기 시작했다.

 

배신감과 자괴감까지 뒤섞여 충청권 민심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만큼이나 울긋불긋 달아올랐다. 그러나 정치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좌불안석이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 온 지역이다. '충청권 민심=당선 또는 승리'를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는 그들이다. 

 

일각에선 '차기 대선용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도 분분하다. 그러나 당장 여권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친이·친박간 세종시 수정 내홍이 격화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에 언론은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가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α)'로 원안고수 입장을 정리했지만 당내에서는 '박근혜 책임론'과 더불어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에 대한 의원총회 의결 과정이 부적절했다는 목소리까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게는 부담스러운 난국일 수도 있지만 대선을 향한 포석이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단 그는 엿새째 말을 아끼고 있다.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입장을 언급하지만 이후에는 이를 진전시키거나 뒤집는 추가 발언을 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 때문인지 더욱 언론은 그의 입에 스포트라이트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종시가 과연 정치적 포석일까? 이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과 세간의 시각들이 엇갈리고 있지만 결코 녹록한 문제가 아니다. 충청권뿐만 아니라 '혁신도시'에 기대를 걸어 온 대부분 지역에서도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의 등불'이 '4대강'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다. 내년 지방선거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욱 주목된다. 정치는 변화무쌍한 생물이기 때문에 예단은 이르다고 하지만, 민심이반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를 정치적 포석으로 이용하기에는 민심이반이 광범위하게, 그것도 매우 빠르게 퍼지고 있다. 공식 명칭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 건설은 근본적으로 '국가균형발전' 전략에서 시작된 것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래도 '충청권 민심=대통령 당선' 성립할까?

 

여기서 한 가지 되짚어 볼 대목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1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발표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국가균형발전 전략'이다. 그 전략의 핵심엔 '세종시 건설은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을 선도하기 위한 21세기 발전전략'이라고 명시돼 있다.

 

2005년 당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세종시법도 '균형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정권이 바뀐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은 세종시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표현으로 지역 민심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말았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세종시를 둘러싼 정치권, 특히 여권 내부의 편싸움이 정치권 밖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복잡하다. 그러나 정치가 제아무리 철저한 계산 속이라고 하지만, 민심이반은 충청권뿐만 아니라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 부글부글 끓는 민심의 소리를 각 지역 언론들은 연일 톱뉴스로 뿜어내고 있다. 세종시 사태를 보면 새만금 명품복합도시의 미래를 연상케 한다. 우선 계획은 현 정부에서, 실제 추진은 다음 정부 이후로 짜여져 있는 프로그램 자체가 닮았다.

 

새만금 명품복합도시도 투자규모(22조 원), 건설기간(20-30년), 인구수(70만 명) 모두 세종시 계획과 엇비슷하다. 고군산 국제해양관광단지 조성사업에 3700억 원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미국 패더럴사가 이행보증금 예치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다. 혹시 그들도 지금 우리나라 세종시 논란을 지켜보면서 새만금 명품복합도시의 앞날을 점쳐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정치적 포석으로 곧잘 활용돼 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시작돼 무려 19년 동안 계속돼 왔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정권이 다섯 번 바뀌면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새만금사업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역민들도 선거철만 되면 찾아드는 정치인들을 향해 "이제 정말 신물이 날 지경"이라고 내뱉기 일쑤다.      

 

세종시는 그러나 새만금과는 다른 점이 있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를 쥐어 왔던 지역이라는 점에서 뇌관의 폭발력이 훨씬 강하다. 세종시 논란은 캐스팅보트일 때와 그렇지 않은 때의 차이를 실감케 해준다. 이래도 '충청권 민심=대통령 당선'이라는 등식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성립될까?


태그:#세종시, #이명박,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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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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