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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웨이 열풍이 부산을 휩쓸고 있다. 부산은 강, 바다, 산을 동시에 갖춘 천혜의 도시이다. 게다가 해안가 옆에는 그림 같은 그린웨이가 바다를 따라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냥 경치만 구경하면서 길을 걷기엔 뭔가 밋밋하다. 이 길 따라 애틋한 전설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을까? 있다. 그것도 많이. 이제부터 해안길을 따라 아름다운 전설을 만나보자.

시랑대로 가는 길
 시랑대로 가는 길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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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해수욕장을 지나 대변항으로 진입하는 해안도로의 오른쪽에 슬며시 나타나는 작은 길 하나. 해안도로의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이 길을 지나면 새색시처럼 곱게 숨어 있는 작은 마을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작은 해안가 마을, 바로 공수마을이다.

공수마을 해변
 공수마을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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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둘러싼 해안길은 오밀조밀하다. 눈앞에 파랗게 펼쳐지는 송정 앞바다의 장쾌한 경치는 또 어떠한가. 그 경치를 바라보다가 어느새 만나게 되는 작고 귀여운 모래사장.  오종종한 흰 모래를 살짝 밟으면 작은 울림이 전해져 온다. 몸을 휘감아 도는 신선한 향훈. 그 향훈을 슬며시 완상하며 모래사장 끝으로 가면 작은 숲길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길은 시랑대로 가는 자드락길이다.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솔숲의 향연으로 천천히 나아가면 푸른색과 녹색의 앙상블이 내는 화음을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바람은 어찌 그리 시원하며 동해를 날아다니는 비오리의 날개짓은 또 어찌 저리 아름다운가.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이 있고, 급경사가 있는가 하면 편편한 길도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길. 가다가 지치면 길 옆 바위에 걸터앉아 가지고 온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며 잔잔히 시를 읊조려도 좋은 길.

시랑대 해안길
 시랑대 해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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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대까지는 불과 20분 정도. 해안 길이 끝나는 지점에 갑자기 시야를 확 트이게 하는 넓은 평지 하나가 나타난다. 넓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천년의 바람을 오달지게 맞이할 수 있는 시랑대. 한때는 동해남부 제일의 명승지로 불리기도 했다는 시랑대에 마침내 온 것이다. 넓은 평지를 지나 해동 용궁사 뒷담 쪽으로 가면 깍아 지른 절벽 하나가 나타나고, 그 절벽 옆의 입석에는 '侍郞臺'란 글자가 각자되어 있다. 그 입석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일품.

시랑대 바위
 시랑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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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랑대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파도가 칼 같은 바위에 부딪히는데, 그때 오색무지개 색깔을 띤 비오리가 춤추듯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니 그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 또한 노송 우거진 절벽과 고요한 바다를 비추는 달빛을 보면 이곳이 과연 인간세상인가 절로 의심이 들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이 시랑대에는 어느 스님과 용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하나 전해져 온다고 한다.

예전 젊은 스님이 있었다. 마을에는 가뭄이 찾아와 사람들이 스님에게 기우제를 지내달라고 성화였다. 스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도 보시라 생각하여 기우제를 지내주었다. 기우제를 지낸 어느 날 밤, 스님은 달빛에 어우러진 원앙대의 절경을 무연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원앙대 밑의 동굴에서 선녀 같은 여인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시랑대 표지석
 시랑대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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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 또한 스님의 훤칠한 풍모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그날 밤 합궁의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후 스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늘 용녀를 찾았고, 두 사람은 옥같이 반짝이는 파도를 보며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마침내, 용녀는 스님의 아이를 가졌다. 용녀는 시랑대 바위 위에 몸을 풀 장소를 맞이했고, 스님은 그런 용녀의 모습을 바위 뒤에서 몰래 지켜보아야 했다.

진통이 점차 시작되면서 용녀의 신음소리도 커져만 갔다. 그러나 신음소리가 너무 컸는지 동해 심연에 있던 용왕이 그 소리를 듣고 말았다. 자신의 딸이 인간의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에 용왕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말았다. 그래서 용왕은 엄청나게 큰 파도를 일으켜 용녀와 아이를 휩쓸고 가버렸다.

스님은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서 용녀와 아기를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용왕의 진노가 잔뜩 실린 바다는 사나운 파도를 일으켜 스님마저 집어 삼키고 말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에 하늘이 감동하였는가. 옥황상제께서는 천마를 바다로 내려 보내 용녀와 아기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그곳에서 살게 해주었다. 그러나 스님은 여전히 바다에 남아 구천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는데, 지금도 보름달이 뜬 밤이면 스님이 용녀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파도 속에서 들린다고 한다. 

시랑대 칼바위
 시랑대 칼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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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전설과 빼어난 풍광을 지닌 시랑대는 지난 1960년대만 해도 수많은 한시 가 새겨진 절경의 바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무관심과 세월의 풍파에 못 이겨 이 절경의 바위들이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으니 그저 안타까울 수밖에. 

지금도 여전히 시랑대는 아름답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용궁사가 들어서면서 대변으로 나가는 해안길이 그만 막히고 만 것이다. 여기서 대변 해안길로 가자면 월장을 하거나 돌아서 가는 길밖에 없었다. 아쉽고 아쉽지만 용궁사를 돌아 다시 해안길로 갈 수밖에. 다음에 그린웨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면 이곳 시랑대의 해안길이 복원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국제신문에도 송고함



태그:#시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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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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