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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연합 및 행정도시무산음모저지 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행정도시·혁신도시 무산음모저지 범국민행동 출범식 및 궐기대회'에서 정운찬 후보자의 총리 지명 철회와 세종시 설치법 국회 통과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충청권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연합 및 행정도시무산음모저지 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행정도시·혁신도시 무산음모저지 범국민행동 출범식 및 궐기대회'에서 정운찬 후보자의 총리 지명 철회와 세종시 설치법 국회 통과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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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연기군 일대에 건설 중인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준말, 정식명칭은 세종특별자치시)가 연기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행복도시는 두 차례의 헌재 판결과 여야 합의에 의한 법안 통과를 거쳤고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확인된 사안인 만큼 국가의 입법·사법·행정 3부 합작에 의해 성안된 것이다.

게다가 이미 법에 근거한 주민 이주와 토지 보상이 이루어졌고 기반공사를 거쳐 일부 청사의 건축도 시작된 상태다. 이 지역으로 통하는 광역 도로망도 일부 완성되었거나 또는 건설 중에 있다. 고속도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행정중심복합도시' 표지판이 이 사업의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을 분명히 '표지'하고 있다.

충청도민이 행복도시에 큰 기대를 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 중에는 자기 고장이 수도권과 영호남 사이에 끼어 소외되어 왔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행복도시는 충청도민들에게 하나의 '꿈'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꿈에 분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산이 삭감되고 정부기관 공사들의 착공이 속속 지연되었다. 이에 따라 민간아파트의 분양도 불투명해졌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지난 5월에 12개 건설회사의 아파트 분양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분양에 나선 건설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최근 국무총리와 한나라당 간부 그리고 청와대 수석 비서진들의 비밀 회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행복도시가 백지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키웠다. 여기에다 지난 17일 이명박 대통령이 행한 발언은 행복도시가 아예 증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권에는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한때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략적 계산 없이,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정책을 고민하고 추진하고 있는 만큼 당당하게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장차관워크숍)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행복도시 원안 수정에 대한 견해거나 4대강 사업 강행 추진 의지를 피력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말했을 수도 있다.
 
그동안 정부와 한나라당은 말로는 충청도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교육과학도시'라느니 '녹색첨단도시' 등의 언술을 구사해 왔다. 행복도시의 핵심인 '행정중심'이라는 말이 슬그머니 사라진 것이다. 말이 그럴듯할 뿐 따지고 보면 이것은 평범한 '지방 신도시'하나를 만들겠다는 속셈이나 진배없다.

지난 9월 3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운찬씨가 세종시의 '자족기능강화'를 내세우며 원안 수정을 암시했을 때 사태는 이미 결정 나 있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차기 총리로 충남 도지사 출신이자 공주·연기 지역 국회의원인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 이미 세종시 문제는 결판이 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대평 총리안이 무산된 것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심대평 총리를 내주는 대신 세종시의 원안 추진을 조건으로 제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9월 1일 한나라당 여성의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이 총재가 강소국 연방제 채택을 요구했기 때문에 심 총리안이 무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이 대통령은 충청 출신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지명한 것이다. 이로 보아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무마의 불쏘시개 감으로 선택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예산안에서 8769억으로 책정된 세종시 예산을 4119억 원으로 삭감한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보아 '이명박표 행복도시'를 만들겠다는 이 대통령의 공약은 오로지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위장공약이었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먼저 자기의 무리수와 실책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면서 사과부터 구했어야 옳다.

인정과 사과는커녕 '국가의 백년대계'를 거론하며 말을 추상적으로 에둘러치면서 자기가 마치 외롭게 고투하는 지도자인 양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이자 위선적인 처신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가 없다. 특히 충청도민이 느끼는 배신감과 허탈감은 자못 심각하리라고 짐작된다.

행복도시 백지화의 본질은 철벽 수도권기득권주의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9월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세종시 수정 논란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9월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세종시 수정 논란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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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국은 수도권 집중 현상이 기형적으로 심각한 나라이다. 서울은 조선왕조 517년과 식민지 36년, 그리고 대한민국 60년을 합쳐 무려 600년 이상이나 수도로서의 기득권을 누릴 대로 다 누린 지역이다. 이에 따라 경과 향(京· 鄕)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가윗날처럼 벌어지고 있다. 과거 박정희, 노무현 정부에서 수도 이전을 기획한 것은 바로 이런 문제를 직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정희가 수도 이전을 하려 했을 때는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들이 민주화 이후 노무현이 수도 이전을 하려 하자 봉기 수준으로 일어나 반대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행정수도 이전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수도이전 헌법소원단을 구성하여 저항했다. 그러자 헌법재판관들은 해괴한 '관습헌법론'으로 서울 기득권을 방어했다. 심지어 우리는 <경국대전> 운운하며 서울이 영원한 수도라고 말하는 시대착오적인 재판관을 구경하기도 했다.

당시 도올 김용옥은 수도 이전에 위헌 판결을 내린 7명의 재판관을 '갑신7적'으로 규정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곧 위헌이므로 이에 불응하는 국민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물론 충청도민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행정수도 대신 행복도시안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수도권 기득권자들은 이 행복도시에마저 시비를 걸었다. 서울시의회는 반대결의안을 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 등도 행복도시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또다시 헌법소원을 냈지만 2006년 11월 각하되었다.(얼마 전 김문수 경기 지사는 '세종시는 노무현이 박은 가장 잘못된 말뚝'이라는 험한 말을 쓰기도 했다.)

아무튼 행복도시는 특별법에 의거'세종특별자치시'라는 새 이름과 함께 정식 착공될 수 있었다. 특별법에 따르면 청와대와 6부를 제외한 9부 2처 2청이 2015년까지 행복도시로 이주해 오도록 되어 있었다. 민간 기업은 바로 내년인 2010년부터 입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계획들은 대책 없이 방기되거나 지연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전면 수정 또는 백지화가 거론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충청인들의 꿈은 행정수도에서 행복도시로 그리고 행복도시에서 평범한 신도시로 두 단계나 격하를 강요받은 셈이다. 그리고 이런 굴욕적인 격하 작업의 첨병으로 총청 출신 총리가 기용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사태를 지켜보며 도올의 '갑신7적론'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수도 분할', '행정 비능률' 논리는 안이한 궤변에 불과

행복도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도가 분할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행정의 비능률을 초래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먼저 그들은 이런 주장을 초기에 내 놓았어야 한다. 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고 한나라당 후보가 선거공약으로 확인할 때는 조용히 있다가 이제 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처사라고 본다.

또한 그들이 내세우는 수도 분할론이나 이에 따른 행정 비능률론은 근시안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서울과 연기 지역까지는 120km밖에는 되지 않는다. 만약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시(市)라면 모두가 도시 반경 내에 있는 지역이다. 당연히 철도건 자동차건 1시간 정도면 오고 갈 수 있는 지근거리이다. 게다가 전화는 물론 화상회의라는 것도 있다. 또 직접 만나 회의를 하거나 서로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서울 내의 왕래보다 관리들이 몇 십 분만 더 시간을 쓰면 되는 것이다. 설마 이 정도를 하기가 싫어 행복도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충남 연기지역에 행복도시가 완성되면 이곳은 '준 수도권'의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형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 과밀을 아래로 분산함은 물론 영남과 호남에까지 두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다. 미국의 한 개 주(州)나 중국의 한 개 성(省)의 면적보다 작다. 이 조그만 땅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누면서 두 지역의 격차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추세에도 어긋날 뿐더러 전국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서울· 경기 주민들부터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수도권 기득권주의에 함몰된 수구 정치인들의 발언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중플레이, 병살타로 끝날 수도 있어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9월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서며 세종시 수정 발언과 관련, 김창수 자유선진당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9월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서며 세종시 수정 발언과 관련, 김창수 자유선진당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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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세종시 문제에 임하는 정부와 여당의 방법과 태도가 비열한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대통령은 모르는 체하고 있는 가운데 충청 출신 총리에게 총대를 메게 하는 수법이 너무 얄팍해 보인다.

청와대 참모들은 계속 연기를 피우면서 세종시 수정론이나 백지화론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16일 자 <중앙일보>를 보니, "고작 부처 이전 숫자 몇 개 줄이려고 이 난리 치며 세종시 수정 작업 하겠느냐?"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 기사화되어 있다. 이것은 행정도시의 전면 백지화를 의미하는 발언처럼 들린다. 

한편 보궐선거를 앞에 두고 있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약간 다르다.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는 틈나는 대로 "원안 추진이 당론"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장광근 사무총장은 "장관고시 변경을 통한 이전 부처 축소"를 대안으로 제시했고,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 진수희 의원은 "세종시 변경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바람을 잡고 있다.

청와대는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국무총리실이 중심이 돼서 충분히 의견을 수렴할 때가 되면 입장을 정리해 밝히겠다"는 식의 다분히 의도성 있어 보이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가 어제 이 대통령의 과천 발언이 공개된 것이다.

이처럼 정부와 한나라당은 행복도시 문제에 속 보이는 이중플레이를 해왔다. 이미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에 언변에 속아 주었고 이명박 후보에게 또 넘어가 주었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은 그들의 이중플레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중플레이가 병살타로 끝장 날 수도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런 모든 일들의 배경에는 4대강 사업이 있다고 본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정부가 세종시 예산을 4대강 사업에 전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법을 14번씩이나 어겼어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따라서 행복도시 정도의 약속을 어겨도 4대강만 성공하면 된다는 이상한 가치관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4대강을 포기하고 행복도시를 원안대로 건설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장편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행복도시, #수도이전, #이명박표, #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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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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