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특히나 대도시 서울 속에 살다보면 오고가는 계절을 잊고 살기 십상입니다. 도시인들의 삶의 속도가 유난히 빠르게 느껴지는 건 이런 계절감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며 살아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요즘 도시의 가을은 매우 짧기까지 하니까요.
이년 전 지금 동네(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에 이사올 때만 해도 그동안 살았던 여느 동네와 뭐 다를게 있을까 하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도 그렇고 지방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도시들은 어디에 있어도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게, 한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한 예쁘지만 개성없는 여인들을 보는듯 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던 것이 계절이 이맘 때 가을로 바뀌면서 평범했던 동네는 저의 선입견을 비웃기나 하듯이 점점 가을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고운 주황빛의 예쁜 색깔과 아기 주먹처럼 생긴 귀여운 감들이 온동네 담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큰사진보기
|
▲ 색깔도 곱고 작고 아담한 모양의 감은 참 예쁘고 귀여운 열매입니다.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감나무는 전기가 흐르는 전봇대도 무섭지 않은지 나무 줄기마냥 감들을 기대어 놓았네요.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
아직은 아파트들보다 작은 주택들과 골목이 많이 남아 있는 동네를 가을햇살이 따듯한 날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정말 동네 옛날 이름이 감나무골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감나무들이 작으나마 마당이나 안뜰에서 데롱데롱 거리는 감들을 이고 서 있네요. 작은 공동주택과 일반주택들 앞 작은 공간의 여유가 무척 크게 느껴집니다.
제주도에서 보았던 어느 동네를 가득 메우고 있던 귤나무가 참 생생하고 인상적이었는데, 이 동네에는 흡사 귤나무같은 감나무들이 동네 골목대장입니다. 특히나 담장이 낮은 집에 열린 감나무들은 감이 달린 가지가 낮게까지 나있어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니 한 개 따고 싶은 마음에 손이 근질근질 했지만 꾹 참으며 눈요기만 합니다.
큰사진보기
|
▲ 동네 골목길 사이 양쪽으로 감나무가 치렁치렁한 가지를 뻗어 그늘이 다 생깁니다.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어느집 옥상위에까지 뻗은 감나무 잎들과 감들이 생기있고 풍성하기만 합니다.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
큰사진보기
|
▲ 손에 닿을듯 낮게 내려와 열린 감들이 한개 따보라고 유혹하네요.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
남의 집 부근을 기웃거리며 감나무 사진을 찍다가 문득 뒤를 쳐다보니 집주인인 듯한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뭐 하나 저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감들이 참 예쁘게 열렸네요, 하면 웃으시면서 그제야 안심하고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저를 의심(?)한 것이 미안하셨던지 따서 창문에 매달아 놓았던 감 몇 개를 먹어보라고 건네 주시네요.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동네지만 여느 농촌처럼 가을이 오면 더욱 풍요로워지고 들녘의 벼들처럼 감들이 가을색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팍팍한 도시살이에도 동네 사람들 표정이 조금은 환하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저 감나무와 감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골목 어귀에서 때아닌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소리 크기로 보아 작은 종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신기하게도 골목골목길을 타고 멀리까지 퍼지는 것 같네요. 종소리 주인공은 1963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는 초로의 두부장수 아저씨입니다. 일요일에도 나와 일을 하시는 부지런함 덕분에 저도 만났습니다. 한모에 1200원 하는 따듯한 두부와 통통한 감 너덧개를 양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자니 발걸음이 가볍기만 합니다.
큰사진보기
|
▲ 일요일에도 나와 동네 골목골목에 낭랑한 종소리를 울리며 고소한 두부를 파시는 부지런한 두부장수 아저씨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