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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산행을 금강암입구에서 시작했다.
 금전산산행을 금강암입구에서 시작했다.
ⓒ 송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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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전남 순천에 있는 금전산 산행 후에 낙안읍성민속마을관광 및 순천만갈대숲을 둘러본다'는 알림 탓인지, 아님 가을이란 계절이 여행을 생각나게끔 하였는지 오전 8시에 대전IC원두막에서 출발하는 한뫼사랑산악회의 산행버스는 참가인원이 꽉 찼다. 자리가 없어 몇 명은 되돌려보내야 했고, 아예 네-다섯 명은 간이의자에 앉아 3시간여를 가야만 했다.

3시간여를 달려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낙안온천 주자창에 도착했다. 우선 죽 둘러서 몸 풀기운동을 하고 단체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선 시간이 11시30분경으로 바로 도로 옆 '금강암'을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초입은 돌이 뒤섞인 단단한 경사길로 '금강암' 신도들이 자주 다녀선지 길이 뚜렷하고 넓어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극락문을 통해야 하늘을 오를 수 있다.
 극락문을 통해야 하늘을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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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문입구
 극락문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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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분을 올랐을까. 우뚝한 암봉이 길을 막고 철계단을 오르게끔 돼 있다. 암봉 사이로 하늘에 들어가게 돼 있다. 이른바 '극락문(極樂門)'이다. 여기를 통해야만 극락으로 간단다. 극락문을 통하고 나니 조그마한 암자인 '금강암'으로 통하는 길과 '원효대'로 통하는 쌍갈래길이 나온다. 우선 '금강암'을 둘러보았다. 송광사 말사인 '금강암'의 경우, 백제 27대 위덕왕때 검단선사(黔丹禪師)에 의해 창건되고 통일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난 1949년경 여순사건으로 완전 소실됐다가 최근 임시로 복원된 탓인지, 고고(考古)스러운 맛은 없었다.

또 그 위에 설치된 산신각도 그러했다. 다만 산식각 뒤 우뚝한 암봉에 무엇인가가 새겨졌음직한 형태가 신비로웠다. 나중에 '금전암'을 검색하면서 '원효대'를 지나쳤음을 후회했다. 당시는 철조망이 쳐 있었고 설명문도 없어 아래의 조경을 감상하는데 바빴다. 

금강암 '극락보전'
 금강암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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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에서 내려다본 낙안들녘
 금전산에서 내려다본 낙안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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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오르기를 쉬엄쉬엄하다 보니 싱겁게도 금전산 정상석이 바로 나온다. "산이 높지도 않고 아담하면서도 기암괴석들과 아래의 조망이 끝내주는 산이다." 이 말은 함께 산행했던 산우(山友)의 말이다. 또 누군가는 누렇게 익은 벼가 일렁이는 낙안들판을 보고 '금빛 돈을 보았다'고 했다. 그만큼 '금전산'정상에서 바라 본 '가을녘 낙안조망이 아름답다'는 말로 들렸다.

산신각 뒤의 암벽(무엇인가가 새겨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형태가 기이하다)
 산신각 뒤의 암벽(무엇인가가 새겨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형태가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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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 정상비
 금전산 정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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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667.9m)은 도립공원 조계산(884m)에서 뻗어 나온 한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철쭉으로 유명한 고동산(709m)을 거쳐 일으킨  바위산이다. 금전(金錢)산을 한자의 뜻대로 번역하면 '금(金)으로 된 돈(錢)'산이다. 그러나 실은 불가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인 오백비구 중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것.

또, 낙안읍성에서 보면 산의 바위들이 한쪽으로 쏠려있고, 다른 쪽은 바위가 흐트러져 있어, "마치 돈꿰미를 한쪽에 툭 던져놓았는데, 자루의 입이 풀려 속에 있던 엽전들이 좌르르 펼쳐진 모양새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는 설도 있다.

'구능수' 일명 '처사샘'
 '구능수' 일명 '처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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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점심을 하고 '불재'쪽으로 하산했다. 7부 능선 쯤 내려오자 '구능수'란 석굴이 보였다. 한사람은 거뜬히 비바람 피하고 누울 만한 공간이다. 일명 '처사샘'이다. 옆에 표시된 기록에 의하면 "예전에 처사 한 분이 득도를 위해 이곳에서 수도를 하는데 석굴 입구 뒤쪽에 있는 구멍에서 하루 세끼 분의 쌀이 나와 연명을 했다는 것.

하루를 손님이 와서 쌀이 더 나오도록 부지깽이로 이 구멍을 쑤시자 쌀은 나오지 않고 쌀뜨물만 나왔다고 한다. 또한 석굴 한 쪽 한 면에 물이 나오는 구멍이 있어 공을 들이지 않거나 상스런 행위를 하면 물이 안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세월 탓인지 아님 기자가 경건하지 못함인지 쌀뜨물도 물도 보지 못했다. 인간들의 욕심과 상스러움을 경계한 것으로 보여진다.

낙안읍성수문장교대식
 낙안읍성수문장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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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수문장교대식
 낙안읍성수문장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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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수문장교대식을 미치고 성문으로 교대하러가고 있다.
 낙안읍성수문장교대식을 미치고 성문으로 교대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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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갈대숲
 순천만갈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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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갈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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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갈대숲의 낙조
 순천만갈대숲의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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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낙안읍성(사적302호)민속마을로 이동하여 여타 민속마을과는 달리 사람들이 살면서 민박도 하고 장사도 하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에서  조선시대 동헌, 객사, 초가 그리고 수문장교대식을 흥미롭게 관람하고 순천만갈대숲을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순천만갈대숲을 거닐면서 아름다운 낙조를 못 보면 관광 안한 것과 같다"고 했는데 기자는 '순천만갈대숲 낙조'를 서툰 솜씨로나마 담을 수 있었다. 이만하면 '금(金)으로 된 돈(錢)'산 찾아서, "금빛 돈 보았다"고 할 만 한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10일에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제이비에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전산, #낙안읍성, #순천만갈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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