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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전 장관이 '한반도평화포럼'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회자인 백학순 박사.
 이종석 전 장관이 '한반도평화포럼'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회자인 백학순 박사.
ⓒ 황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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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 백낙청)이 13일 오전에 연 포럼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핵 정세하의 남북관계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습니다. 이번 '이종석의 한반도워치'는 이 발제문 전문과 포럼현장에서의 발언을 싣습니다. 제목처럼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원자바오 총리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해 북한과 대규모 경제협력을 약속한 것에 대해 "현 상황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킬 이유가 없어 보인다"면서 "이는 '중국의 노력 아래'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사실상 임박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향후 있을 북미대화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북한에게 '약속'으로 제시하는 수준 정도면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이 유엔제재에 굴복해서 대화에 나섰다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유엔이 대북제재결의안 1874호의 구체적인 시행안을 만들고 있던 7월에 이미 전반적인 대외관계 개선을 추구했다"면서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한미는 김정일이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그도 한미가 혼란스러울 것"

이 전 장관은 또 "미국과 한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행태가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김 위원장도 미국과 한국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혼자 계속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미국은 클린턴 정부에서 부시 정부로 교체되면서 정책이 확 바뀌고, 오바마 정부에서도 또 다르고, 한국도 정부에 따라 대북정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는 "우리가 북한이 예측 가능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는 "기회주의적인 상황편승 전략(Opportunistic tactics)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핵 포기에 대한 대가가 충분하면 핵을 포기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핵 보유를 시도하겠다는 기존의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전 장관은 또 북한이 구상하고 있는 발전전략을, '중국식 개방전략과 남한의 박정희식 발전 노하우를 결합한 제한적인 경제발전 전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공산당 독재를 보장하면서 우선 경제특구 개발을 중심으로 시장경제의 점진적 확대를 추구한 중국식 사회주의 개방모델과 우수한 노동력은 있으나 자원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국가가 권위주의적으로 전체경제를 계획하고 발전을 주도해 나간 박정희식 방식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북핵 상황이 개선돼 대외여건이 호전된다면, 북한은 이 구상을 본격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북한에게 그들이 핵보다는 경제를 택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나 미국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제안했습니다.

"지금이 대북특사 파견 절호의 기회"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필요도 없는 용어인 '그랜드바겐'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함으로써 혼란을 자초했다"면서 "중국의 반대 등 국제정세의 흐름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정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미국의 북한 제재 담당 책임자인 골드버그 제재조정관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이 대북제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정부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미 행정부보다도 더 소극적인 남북경협관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부에게 "지금이 대북특사 파견의 절호의 기회"라고 조언했습니다. 북한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때 '특사조문단'의 명칭을 사용해 이 대통령까지 면담한 것은, 남측이 북측에 특사를 파견할 경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날 포럼에서는 '대북제재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많은 의견이 나왔습니다. 특히 임동원 공동대표는 "오바마 정부도 북한의 핵폭탄은 부시 전 대통령의 압박과 제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면서 "북한을 제재하고 압박하면 된다는 말은 미친 소리"라고 비판했습니다. 임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은 미북 양자대화를 통해 양국의 적대관계가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돼야 하며, 미북회담결과를 보고 6자회담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이는 그가 20년 동안 해온 말"이라면서 "핵무장화 과정을 5단계로 나눌 때, 북한이 '핵폭탄 제조 및 실험'의 3단계까지 도달하고 소형화·경량화와 미사일 개발 및 장착이라는 '핵무기화'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는 미국이 비핵화를 통한 관계정상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다음은 발제문 전문(정리: 황방열 기자).

1. 현 북핵 정세의 특징

- 북한과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직접대화에 합의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건강과 정권 장악 정도, 비핵화 의지 등 북한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클린턴의 방북결과를 검토한 결과 북한과의 대화를 결정하였다.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에 따른 대북제재 국면의 시작단계인 8월초 클린턴의 방북이 이루어지고 곧 이어 북미대화 재개가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미국 지도부가 현재의 북핵 위기를 제재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해소하고자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 북핵 실험으로 인한 유엔의 대북제제 국면이 사실상 종료단계로 접어들고 6자회담 재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번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 북중간의 각종 경제협력 협정 체결은 클린턴 방북으로 예고되었던 한반도 정세의 6자회담 국면으로의 전환을 한층 더 가시화시켰다. 특히 북한-중국 경제관계 발전을 위해 맺어진 '경제원조', '경제교류활성화', '관광교류 활성화'를 비롯한 제반 협정들은 사실상 유엔 제재 결의 1874호의 효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서, 현 시점에서 중국이 대북제제를 통한 북핵포기 노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제재를 통한 북한 굴복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이 아무런 전제없이 북한과 이런 합의를 했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격렬한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킬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는 중국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중국의 노력 아래'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사실상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원자바오와의 회담에서 '북미양자회담을 보고' 6자회담을 '진행할 용의를 표명'하고 비핵화의지를 천명한 것이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결국 김정일-클린턴 대화(8월, 북미대화 여건조성)→ 다이빙궈-김정일 면담(9월, 다자회담 수용 용의표명) → 김정일-원자바오회담(10월, 조건부 6자회담 참여 용의표명)의 계기별 상황진전으로 보아 향후 있을 북미대화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북한에게 '약속'으로 제시하는 수준 정도면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조건부이나 6자회담 복귀 의사를 천명함으로써 북미양자대화의 명분을 충분히 확보했다. 이제 북미대화를 통해 6자회담을 성사시키고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적극 나아가야 한다. 이번 대북협상에서는 상대방에게도 핵이 사활적인(crucial) 카드이니만큼 이 포기를 위해 필요한 약속을 명료하게 해주고 또 이를 반드시 지킴으로써 상대방이 구실을 붙일 수 있는 여지를 봉쇄하며 해결을 향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해 나가야 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월 5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 숙소를 방문해 원자바오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월 5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 숙소를 방문해 원자바오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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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대화보다는 대북제재를 통한 '북한 무릎 꿀리기'를 선호하는 한국 정부 중심의 대화회의론이 일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내 다수 전문가들과 중하위 정책담당자들, 그리고 일본 조야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정부는 2005년 9.19 공동성명 도출 과정에서 능동적,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지금은 상황진전에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 정부는 북핵문제를 북한 제제로 풀 수 있으며, 지금도 제재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역사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2006.7)와 1차 핵실험(2006.10)이 BDA 문제 발생을 계기로 2005년 가을부터 부시행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한 강력한 대북 제제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발생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최근 대북제제를 위한 유엔결의 1874호와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시행안(施行案)이 만들어지던 7월에 이미 북한이 대미관계 및 대남관계 개선 등 전반적인 대외관계 개선을 추구했다는 사실이'지금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여 북한이 대화로 나오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과 배치됨을 보여준다.

북한은 지난 5월말 2차 핵실험 이후 제재 이전에 준비된 자신의 프로그램에 따라 대외관계 개선에 나서고 스스로 협상국면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포기하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국제사회에 팽배했으나, 최근 북한의 태도를 보면 그들의 전략기조가 여전히 핵 포기에 대한 결정을 미룬 채, "이쪽 아니면 저쪽(either or)" 을 선택하고자 하는 "기회주의적인 상황편승전략(Opportunistic tactics)" 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북한은 핵 포기에 대한 대가가 충분하면 핵을 포기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핵 보유를 시도하겠다는 기존의 전략을 바꾸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추가 핵실험을 통해 '배가된 핵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핵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 북한-중국 간에 신경제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과정에서 맺어진 북중 간의 경제협력 합의는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탈냉전이 시작된 이후 가장 포괄적이라고 할 만큼 다방면에 걸쳐 있다. 특히 이러한 합의가 북한에 대한 제재 국면에서 맺어졌다는 점에서 향후 중국- 북한간의 경제협력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단둥(丹東)의 다둥(大東)항 세관에서만 올 상반기 북한과 중국의 무역량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81.9% 증가(무역액 268.4% 증가, 9617만 달러)했다는 사실(연합뉴스 2009.7.30)은 올해부터 북핵 위기 속에서도 양국경제관계가 이미 확장적으로 발전해왔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향후 북핵문제의 진로에 따라서 이러한 합의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중국의 전략적 기조는 기본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고 대외협력을 통한 경제발전을 도모하도록 지원하면서 동시에 북핵 포기를 유도해 가는 쪽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략의 전제는 북한의 비핵화의지와 6자회담 참여라고 할 수 있는 바,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중국의 이번 조치는 북한 핵문제를 본격적인 대화국면으로 이동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제재 지속론과 대북강경론을 고수할 경우 국제사회와 남북관계에서 모두 입지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아마 6자회담이 재가동되면 북한은 이번 북중 간의 경제 합의를 계기로 2000년 이후 지체되어온 그들 방식의 경제발전 전략구상을 다시 추진하여할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도 이를 적극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지도부는 내부자원의 고갈로 발생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중국식 개방전략과 남한의 박정희식 발전 노하우를 결합한 '제한적인 경제발전 전략'을 구상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즉, 북한은 공산당 독재를 보장하면서 우선 경제특구 개발을 중심으로 시장경제의 점진적 확대를 추구한 중국식 사회주의 개방모델과 우수한 노동력은 있으나 자원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국가가 권위주의적으로 전체경제를 계획하고 발전을 주도해 나간 박정희식 방식에 관심을 가져왔다. 북한의 이러한 관심과 구상은 김정일 위원장의 두 차례에 걸친 중국 개혁개방지구 방문(2001, 2006)과 장성택을 책임자로 한 경제시찰단의 방남(訪南 2002), 신의주 특별행정구역 설치(2002), 개성공단 개발(2003), 남한과 해주경제특구 합의(2007.10) 등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의 구상은 2002년 10월에 재발된 북핵 위기의 영향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채 표류해왔다. 특히 이 구상은 DMZ 근방, 국경 및 해안지역 등 접경지역의 개방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 지역들이 군사적 긴장고조에 가장 예민하게 영향을 받는 곳이라는 점에서 제재와 협상이 교차하는 상황에서는 사실상 추진이 어려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북핵 상황이 개선되어 대외여건이 호전된다면, 북한은 이 구상을 본격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전략의 성공은 북한이 시장경제로 이행한다는 뜻이며, 북한에게 그들이 핵보다는 경제를 택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나 미국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태그:#이종석, #원자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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